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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보니 Oct 10. 2022

단풍나무로 만든 명함

옹이가 좀 있으면 어때? 상처난 게 무슨 대수야. 괜찮다, 괜찮아. 너는 지금 그대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학교를 갓 졸업하고 6개월여 직장 생활을 할 때를 빼곤 명함이란 걸 가져본 적이 없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차도에서 튕겨져 나와 인도와 차도 사이의 좁은 갓길을 걷는 신세가 된 탓이다. 때론 서글픈 일도 있었지만 갓길도 걸어볼 만하다. 


  무서운 속도로 내달리는 차들이 옆으로 지나갈 때의 그 스릴과, 어딘가를 향해 잰걸음을 놀리는 사람들의 경쾌한 걸음걸이가 무색하게 느릿느릿 팔도 유람하듯 걸을 수 있는 여유... 위험을 무릅쓰고 갓길을 택한 사람들을 위해 신이 남겨준 위안거리도 꽤나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명함이란 걸 가져볼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갓길을 걷는 사람에겐 명함 같은 걸 주고받을 일이라곤 없었으니까. 먼저 다가와 명함을 건네는 이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그렇지만 이미 명함으로 매개되는 관계에서 멀찍이 떨어져 버린 탓에 명함을 새로 팔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구태여 나를 알릴 필요도 없었고, 또 누군가에게 명함 한 장으로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이쪽과 저쪽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즐겼던 것 같다. 스릴 넘치는 생활이었지만 덕분에 내게는 뿌리가 없다. 조그만 바람에도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나를 얻었으니 하나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지만 두고두고 가슴 아플 일이다. 


  줄타기는 이제 그만하고 싶다. 그동안 많이도 어지러웠다. 그만 뿌리를 내리고 싶다. 




  뿌리내리고 싶은 내 바람이 이걸 만들게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부족하고 모자랄지언정 부끄럽지는 않은 나의 새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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