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기 구멍'이라는 제목에서 뭔가를 떠올렸다면 통했다. '우리 서로 자신을 보여 주기로 해요'라는 좀 더 구체적인 대사가 떠오른다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제재하다가 남은 먹감 동가리가 크기도 두께도 뭘 만들기엔 애매해서 작업장 한편에서 먼지만 뒤집어쓴 채 몇 년의 세월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쓸모도 없는 게 괜히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아 난로 앞까지 오기도 수 차례였다, 그러나 그때마다 먹감이라는 소재가 너무 아까워서 차마 난롯불 속에 집어넣진 못했다. 언젠간 저도 쓸 데가 있겠지, 무슨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겠지 하며 먹감 동가리가 제값을 할 날이 오기만 기다렸다. 물론 그사이에 오며 가며 먹감 동가리에게 눈총을 주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놈을 한번 뒤집어서 보면 어떨까 하고 작업대 위에 올린 것이 일의 시작이었다. 뒤집어놓은 목감 동가리의 자태는 묘한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살짝 벌린 두 다리와 탄탄한 둔덕 그리고...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사실 '엿보기 구멍'이 머릿속에 떠오른 순간 이미 작업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먹감 동가리의 형태를 다듬고, 월넛을 덧붙이고, 다리를 달고... 이 모든 것이 테이블 중앙에 자리 잡은 '엿보기 구멍'을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훔쳐보기 위한 용도의 테이블이 완성되었다.
한 가지 첨언하자면 '엿보기 구멍'을 통해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의 맨얼굴뿐이라는 것이다.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고통스럽기까지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