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터를 켜라

by 늘보니



라이터는 돈 주고 사기엔 좀 아까운 물건이다. 워낙 공짜가 널렸기 때문이다. 그냥 길을 가는 사람한테도 무작정 떠안기는 데야 어쩔 도리가 없지 않은가. 길거리에서 뿐만은 아니다. 술집도, 찻집도, 밥집도... 어디서건 말 한마디면 라이터 하나쯤은 쉽사리 챙길 수가 있다. 다만 위의 사진에서처럼 '부킹 8000%'와 같은 민망한 문구를 참아 넘길 수만 있다면 말이다. 하긴 저 정도면 양호한 편에 속한다. 어지간한 사람이 아니라면 남들 보는 앞에서 꺼내기 낯 뜨거운 문구를 넣은 라이터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시골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라이터를 꼬박꼬박 돈 주고 사게 되었다. 물론 시골이라고 술집이며 다방 같은 게 없진 않지만 당최 갈 일이 없기 때문이다. 뻔히 얼굴 아는 처지에 길거리에서 저런 라이터를 돌릴 일은 만무하니 도리가 없다.



공짜 라이터를 쓸 때는 몰랐는데 이걸 사서 쓰다 보니 무척 헤픈 물건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라이터를 다시 사게 되는 경우란 대개 가스가 다 닳아 더 이상 불을 붙일 수 없어서가 아니다. 어디다 뒀는지 까먹기 때문인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벗어 놓은 옷의 주머니 속에서 혹은 책상 위에서 또는 서랍 속에서... 잃어버린 라이터를 다시 찾게 되는 장소는 정말 무궁무진하다.



라이터가 없을 때의 불편함과 짜증을 익히 아는지라 한번 사게 되면 몇 개씩 한꺼번에 사게 된다. 라이터가 부담스러운 가격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다. 천 원짜리 한 장이면 세 개를 사고도 백 원을 거슬러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면 또 한참 동안은 라이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오늘 산 라이터는 천 원에 네 개였다. 위의 사진이 그것이다. 누군가 판촉용으로 주문 제작한 것일 텐데 어떤 사연이 있길래 이런 촌구석까지 와서 싸구려로 팔리고 있는지... 담배 한 개비 빼물며 저걸 주문했던 사람을 떠올리니 담배 맛이 썩 좋지는 않았다.





혹시 사진을 보고 저기가 어딘지 짐작이 가는 분이 있으면 연락 주시라. 기회가 된다면 꼭 방문해 12번 이미숙 씨를 찾겠다. 부킹도 8000% 보장된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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