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목숨

by 늘보니

오후에 손님이 찾아와서 환기 좀 시킨답시고 오랜만에 방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손님이 돌아가고 난 뒤에 보니 언제 들어왔는지 파리란 놈이 두 마리나 컴퓨터 모니터에 달라붙어 있었다. 여긴 마땅히 찾아 먹을 것도 없는데... 비 온 뒤라서 그런지 밖이 추워서 따뜻한 곳을 찾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 없는 적막강산이라지만 이런 손님은 하나도 반갑지 않다.

모기란 놈도 그렇지만 파리 또한 얼마나 사람을 귀찮게 하는지 잘 알고 있는지라 방문을 닫아걸고 소탕작전에 나섰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아니면 뭘 제대로 먹지 못한 탓인지 비실거리는 모양새가 따로 파리채를 찾을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슬며시 오른손을 치켜들고 모니터 왼쪽 구석진 자리에서 정신없이 앞발을 비비고 있던 녀석부터 노려보았다.

파리도 직감이라는 게 있는 걸까? 연신 앞발을 비비적거리던 녀석이 어느 틈엔가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게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더라도 이미 늦었다. 녀석은 독 안에 든 쥐, 아니 방 안에 갇힌 파리일 뿐이다. 오른손으로 사정없이 내려치려다가 생각해보니 그랬다간 뒤처리가 고약하지 싶었다. 모니터에도 내 손에도 파리의 흔적 따윈 남기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상태가 안 좋다고는 하지만 파리는 역시 날것이었다. 딴에는 잽싸게 휘두른다고 휘둘렀지만 내 손이 파리보다는 한 수 느렸다. 다행이라면 멀리 날아가지는 못하고 다시 모니터로 내려앉았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파리는 두 마리가 아니라 세 마리였다. 내가 휘두른 손에 공유기 뒤편에 숨어 있던 놈이 놀라 정체를 드러냈던 것이다.

단 한 번의 공격에 상대가 별 볼 일 없는 인간이라는 걸 간파하기라도 한 걸까? 파리들은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는 듯 다시 앞발을 비비거나 스스로 제 머리를 쓰다듬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감히 두 손을 가진 인간을 비웃다니... 아직 세상의 쓴맛을 보지 못한 풋내기들인 모양이었다. 물론 세상의 쓴맛 단맛을 다 보게 될 때쯤이면 이미 딴 세상에 가 있겠지만.

이번에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한 손으로도 모자라 두 손으로 신중하게 녀석에게 접근했다.

짝!

슬며시 손에 힘을 빼고 들여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한놈이 걸려들었다. 절묘한 힘 조절로 상처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냥 기절만 한 건지 아니면 딴 세상으로 간 건지 구분하기가 모호했다. 경험칙에 따르자면 이럴 땐 그저 확실히 하는 게 장땡이다. 놈을 엄지와 검지로 잡아 올려 지그시 압력을 가했다. 너무 과해서 손가락에 이물질이 묻지 않을 정도로만...

몇 번의 헛손질이 있었지만 끝내 불청객들은 모두 재떨이 속으로 사라졌다. 오늘 밤의 숙면을 위해서는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할 일이었다.

거사를 치르고 난 뒤의 담배 맛은 언제나 달콤하다. 깊게 한 모금 들이마시고 길게 길게 내뱉는 이 단순한 행위가 주는 기쁨은 니코틴이 어쩌고 저쩌고, 타르가 이러니 저러니 하는 말들을 흘려듣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럼 그걸로 된 거다.

담뱃불을 끄려고 보니 재떨이 안 꽁초들 사이에서 파리 한 마리가 미처 딴 세상으로 가지 못하고 남아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아무리 파리 목숨이라지만 생명이란 원래 이렇게 질긴 것일까? 똥밭에서 뒹굴어도 이승이 좋다더니 그건 파리도 사람과 다를 바 없는 모양이다.

반쯤 뜯긴 날개를 질질 끌며 재떨이 바닥을 기던 파리가 비스듬히 서 있는 꽁초에 달라붙어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아무리 용을 쓴다 한들 재떨이 밖으로조차 나오지 못할 게 뻔한데도 포기하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꽁초를 다 오르고 난 다음엔 도대체 어쩌자는 건가?

나는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하고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껐다. 아직 비워야 할 만큼 재떨이가 차지는 않았지만 핑계 삼아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뻐꾹, 뻐꾹!

뒷산에서 뻐꾸기가 울고 있었다. 자기가 살기 위해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둥지에서 밀어낸 종달새들을 위한 진혼곡일까? 나른한 일요일 오후 산골에는 뻐꾸기 울음소리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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