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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수강은방학때 Sep 04. 2019

산티아고 순례길 1일차

프롤로그

1일차


집 - 파리(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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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은 가지고 있다.”


마이클 타이슨


-


발을 높게 들어 보폭을 크게 걸으면 중심을 잃고 혹여나 넘어질까봐

조심스럽게 발을 들어 잰걸음만 걷고 있었지.

그러는 동안 내 발끝엔 먼지며 쓰레기들이며 온갖 잡다한 것들이 들러붙어있었어.


-


밤낮이 바뀐지 한참 된 덕분에 늦잠 걱정 없이 이른 새벽 집을 나섰다.

공항버스 정류장에서 우리나라 U20 팀이 결승에 진출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순례길 위에서 우리나라 축구 결승 경기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반나절을 날아 파리 공항에 도착했다.

이제 여기서 지하철을 타고 가면 되는데, 어떤 지하철 표를 뽑아야 되는지 모르겠다.

나는 파리 관광이 아니라서 편도 티켓을 사야 되는데,

인터넷에 검색해도 안 나오고 주변 사람들은 불어로 솰라솰라.... 멘붕이 왔다.

눈치껏 아무 표나 뽑아서 입찰구에 가서 넣어보니 입구가 안 열린다.

헷. 첫 지출부터 멍청비용으로 1.9유로를 날렸당.

결국 구글 지도를 키고 안내원에게 가서 물어봤더니

이 표가 아니란다. 그래서 무슨 표를 뽑아야 되냐고 물어보니까 그 티켓은 10.3유로란다.

2유로짜리 동전이 유로 센트인 줄 알고 14유로를 건냈더니,

아니 아저씨, 자판기가 아니라 왜 아저씨 주머니에서 표가 나와요...? 그리구 잔돈은 왜 안 줘요...?

결국 멍청비용 3.7유로를 더 날렸다ㅋ_ㅋ


40분 만에 겨우 지하철 표를 구하고 지하철을 타러 갔는데, 아니 뭔 노선이 이렇게 많아...?

분명 같은 라인인데 행선지가 다 다르다?_?

누가 공항 지하철까지만 도착하면 쉽게 따라갈 수 있다그랬는데 하나도 그렇지가 않다!!

결국 눈앞에 있는 아무 기차나 탔는데 뒤따라 탄 동양인 아저씨가 영어로 나한테

“이거 파리 가는 기차 맞아요?”

하고 묻는다.

‘저도 몰라요....’

“암...아돈노...메이비...?”하고 대답해줬는데

그 아저씨 뒤돌아서 더니 일행이랑 한국말로 대화를 한다.

???

‘저도 한국 사람이에요 아저씨...’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 걱정거리가 쏟아지는 바람에 제대로 둘러보지 않았던 바깥 풍경을 바라봤다.

유난히 낮은 하늘, 마치 도시 전체가 포근한 이불을 덮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40여 분을 가다가 중간 환승 지역에서 한 번 더 찍어타기를 해서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

했는데 개찰구가 안 열린다.

???

표를 넣었는데도 문이 안열리고 기계가 표를 퉤, 하고 뱉어버린다.

혼자였으면 또 멘탈이 나갔겠지만 앞에 똑같이 출장금지를 당한 현지인 한 명이 당연하다는 듯이 개찰구를 뛰어넘어버린다.

오오... 원래 그런건가보다 하고 나도 따라 넘어 역 밖으로 나간다.


그렇게 밖으로 나와보니 갑자기 비가 오고 있었다.

아직 우비도 없고 반팔에 바람막이 하나 입었는데.

분명 아까 공항에서는 비 안 왔는데.

어쩔수 없이 파리지앵처럼 그냥 비를 맞으면서 등산용품점까지 갔다.

거기서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센 강을 가로질러

근처 햄버거 집에 와서 허기와 멘탈을 달랬다.

가게에서 받았던 진동벨이 뜬금없이 로맨틱했다.


배낭을 메고 하루 종일 걸어 다니니 벌써부터 어깨와 무릎이 아프려고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내일모레 시작되는 순례길 여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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