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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수강은방학때 Sep 04. 2019

산티아고 순례길 2일차

파리(Paris) - 생장(Saint Jean Pied de Port)

2일차


파리(Paris) - 생장(Saint Jean Pied de Port)


-


“등산은 도대체 왜 하는 걸까

뭐하러 힘들게 높이 오를까”


장기하와 얼굴들 - 등산은 왜 할까


-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

이 사람들은 나랑 같은 길 위에서

아무도 모르는 자신만의 길을 걷게 되겠지.


-


야간 버스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처음 내 옆에 앉아있던 할아버지 대신 다른 사람이 앉아있었다.

더 이상 잠 끝자락을 잡고 늘어지긴 뭐해서 잠이 덜 깬 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옆에 앉아있던 외국인이 툭툭 치더니 바나나를 건넨다.

“먹을래?”

“오...땡큐땡큐!”

맛있는 거 주는 사람은 분명히 착한 사람인데,

하루 시작을 착한 사람과 함께하다니 기분이 좋았다.


열한 시간 만에 도착한 바욘에서 한국 사람들을 만났다.

기차 표를 여럿이서 사면 훨씬 싸게 살 수 있는데 그러다 보니 네 명이 모이게 됐다.

아직 통성명도 제대로 하지 않은 스물세 살 서로 친구 사이인 두 명, 서른 중반으로 추정되는 한 사람과 나, 이렇게 넷이 기차를 탔다.

거기서 남아공에서 온 애니라는 친구도 만났는데 교사 일을 하다가 지금은 여행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애니는 나중에 여행집을 써서 책을 낼 거라고, 방금 우리에 관한 글도 썼다고 이야기하면서 자기가 책을 내면 꼭 사야 된다고 말했다.


생장에 도착했다. 순례자 사무소 앞에 배낭을 줄 세우고 밥을 먹으러 갔다.

처음 먹어보는 순례자 메뉴. 와웅. 너무 짜다.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애니가 우리들에게 질문을 한다. 여기에 온 이유는 무엇인지, 종교는 있는지.

애니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더니 “신을 믿든 안 믿든 이 길을 걸으면서 분명 무언가를 느끼게 될 거예요.” 하고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흘렀고,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 서둘러 자리를 뜨느라 디저트도 안 먹고 일어났다ㅜㅜ


드디어 크레덴시얄을 발급받고 어젯밤 야간버스 안에서, 이대로 가다간 분명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미리 예약했던 정원이 이쁜 호스텔로 갔다.


집 나온 지 거의 이틀 만에 따땃한 물에 샤워를 하고,

머리도 다 말리지 않은 채 잠옷 바지 차림으로 작은 사과를 하나 들고 마을 구경을 나섰다.

자기 전에 마실 맥주도   마트를 찾아 마을을 돌아다녔는데 마트가 다.


길가에는 학교에서 산책 나온 꼬맹이들이 서로 두 손을 꼭 쥔 채로 재잘거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동양인이 신기한 건지 내 얼굴이 신기한 건지 나를 뻔히 쳐다보는 아이. 안녕?


결국 동행했던 친구 도움으로 마트에 가서 맥주와 내일 점심에 먹을 도넛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서 조금 쉬다가, 아까 걸으면서 보았던 마을 언덕을 올라가 보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왔다. 맥주와 책을 챙겨 들고서 언덕 중간에 있던 벤치까지 올랐다.


그때,

왼쪽 집 굴뚝에서는 너무 익숙한 모기향 비슷한 냄새가 불어오고

솜이불 같은 구름은 산을 어루만지며 지나간다.

바람에 부대끼는 나뭇잎들은 마치 해변가에 와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파도 부딪히는 소리를 계속 따라한다.

풍경을 바라보며 딴 맥주는 거품을 내뱉으며 알싸한 알콜 향을 내뿜고,

이 풍경 속에 멍하니 맥주를 마시며

‘이건 정말 완벽해.’

라고 혼자 생각한다.


아직 제대로 걷지도 않았는데 피곤하다.

여정이 힘들어서인지 걷는 게 힘들어서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하면 매일 점심때 즈음- 여정이 끝날 텐데 이후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일단 내일 여섯시 반에 만나 출발하기로 했으니 오늘 일찍 눈을 붙여야겠다.


-


Gite Makila


4인 1실. 시작 지점이라 숙소는 깨끗하다.

평소에는 간단한 과일과 물, 타먹는 음료가 구비되어 있다.

정원에 뷰가 이뻐서 쉬기 좋은 장소.

25유로인데, 길을 걷다 보면 이게 얼마나 비싼 가격이었는지 알게 된다. 하지만 아직 걷기 전이니 별 상관 안 하고 예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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