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소설가의 일'이 글쓰기에 관련해 실질적인 팁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 책은 하루키 본인이 어떻게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글을 쓸 때 어떤 자세로 임하는지 하는 조금 더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다.
그렇다고 글쓰기에 대해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할 수 없는 게, 작가로서 길을 먼저 나선 사람이 여러 가지 조언을 건네주는 책이다 보니 인상적인 구절들이 많다. 다만 일본어를 번역해서 그런지 일본 구어체가 많이 느껴진다.
'괜히 어려운 말을 늘어놓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이 감탄할 만한 아름다운 표현을 굳이 쓰지 않아도 된다'
어려운 말이나 문장을 쓰려고 노력하지 말자. 아니, 오히려 사람들이 어려워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글은 지양해야 된다. 책을 읽다 보면 가끔 낯선 단어를 접하는데, 그 정도만 알아둬도 충분하다. 어려운 단어를 쓰기보단 익숙하고 편한 단어를 '적절하게' 조합하는 게 더 중요하다.
다양한 표현 작업의 근간에는 늘 풍성하고 자발적인 기쁨이 있어야만 합니다.
글쓰기는 즐거워야 한다. 글쓰기가 힘들고 고통스럽다면 어딘가 문제가 있는 거다. 이 주장은 이 책뿐만 아니라 '소설가의 일' 그리고 '유혹하는 글쓰기'에도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내용이다. '즐거운 글쓰기'
의무감 때문에 고통스럽게 쓰는 글이 아니라―규칙적으로 글을 쓰는 건 중요하다―내가 쓰고 싶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다 보면 자연스레 즐거울 거란 이야기.
'뭔가를 추구하지 않는 나 자신'은 나비처럼 가벼워서 하늘하늘 자유롭습니다.
글을 쓸 때 무언가를 전해야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글을 쓰기보다는 자유롭게,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써야 한다. 그렇게 시작된 글은 스스로 힘을 갖고 쭉쭉 뻗어나가 방향성을 갖게 된다.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스티븐 킹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주제에서 스토리가 나오는 게 아니라 스토리에서 주제가 나온다.'
시작부터 무언가에 얽매이지 말고 편하게 어떤 장면에 대해 글을 끄적여봐야지.
너의 능력과 재능을 최대한 쏟아부어 글을 써라. 그리고 변명이나 자기 정당화는 안돼. 불평하지 마. 핑계 대지 말라고.(졸역 [글쓰기에 대하여])
최근 글쓰기에 대한 책 세 권을 읽었는데,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초고를 쓰고 초고를 다듬고 필요 없는 내용을 빼고 플롯을 다듬고... 소설 하나를 써내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인이 만족할 때까지 쓰고 다듬고 쓰고 다듬는 게 바로 글쓰기의 과정이라고 했다.
그렇게 묵묵히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안에서 '뭔가'가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것이 일어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당신은 그것을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만 합니다.
그래서 일단 꾸준히 쓰는 게 중요하다. 뭐가 됐든―차마 눈 뜨고 못 봐줄 글이더라도―일단 규칙적으로 써 보라고. 그러다 보면 저절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그 안에서 사건이 일어난다고 한다.
단편 소설을 기준으로 하면 워드로 11~13페이지 정도인데, 하루 2페이지씩 쓴다 치면 일주일 만에 단편 소설 하나를 쓸 수 있다. 물론 초고 기준이지만. 그래서 다음 주 월요일부터는 매일 2페이지 이상씩 글을 써서 단편 소설 초고 하나를 써 보기로 했다.
내가 가장 즐길 수 있는 것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면 됩니다.
글쓰기뿐만 아니라 뭐든. 음악이든 일이든 연애든 내가 좋아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면 그 결과가 어떻든 의미 있는 과정이 된다는 말이다. 물론 '나'에 대해서 최소한의 객관화가 선제되어야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소설가의 역할은 단 한 가지, 조금이라도 뛰어난 텍스트를 대중에게 제공하는 것입니다.
텍스트의 역할은 각각의 독자에게 저작되는 데 있습니다. 독자는 그것을 원하는 대로 마음껏 풀어서 저작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만일 독자의 손에 건너가기 전에 저자에 의해 풀리고 저작된다면 텍스트로서의 의미나 유효성이 대폭적으로 손상됩니다.
보통 어떤 글을 쓸 때 '이런 이야기를 해야겠다.' 생각하고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설명문이나 논문처럼 논리적인 글은 상관없겠지만, 에세이나 소설에서는 그런 명확성이 오히려 글의 매력을 떨어트릴 수도 있다.
이 책은 하루키가 허름한 집 부엌에 앉아 첫 소설을 썼을 때부터 자기 소설을 미국에서 출판하기 위해 직접 출판사와 편집자를 찾아다니던 이야기까지 해준다. 책 후반부는 글쓰기에 관한 팁보단, 하루키가 어떻게 해서 영미권을 포함한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는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