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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임 Aug 08. 2023

아이가 말을 걸었다 15

호주는 오스트레일리아, 거긴 섬이야

퇴사를 결정했다. 정확하게는 복직없는 휴직을 결정했다. 일단은 육아휴직 1년을 계획하고 있지만 복직에 대해서는 글쎄. 내 마음은 퇴사로 기울었다. 물론 1년 뒤에는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복직없는 휴직. 퇴사를 결정하는데 결정적이었던 건, 내 미래였다.


지금 일하는 곳은 작은 출판사다. 일반적인 출판사의 규모로 따지면 직원수가 결코 적은 편은 아니다. 지방에서 15명 정도의 규모, 중형급은 된다. 그곳에서 나는 오랫동안 기획업무를 봤다. 외근이 잦았고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원치않는 책임자의 위치에서 늘 일해왔다. 일은 곧 나를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었고 내 신념이었으며, 나 자신이었다. 회사일에 시간을 투자하는게 아까웠던 적이 없었다. 아이를 낳기 직전까지 일을 했고 출산휴가 3개월, 아이가 백일이 되기 전에 바로 복직했다. 육아휴직에 대한 미련도 없었다.


그랬던 나는 갑자기 변했다.


변화의 이유는

첫째, 일하는 10년동안 나는 변화가 없었다. 삶이 나아지지도, 그렇다고 편해지지도 않았다.

둘째, 일은 내가 아니었다.

셋째, 앞으로 10년 뒤에도 같은 모습일 것 같다.


책임감있게 일하는 나는, 사람들 입장에선 의지하기 편한 대상이었고 그들은 갈수록 내게 뭔가를 바랐다. 일을 아무리 열심히해도 나는 성장하지 않았다. 10년 뒤에도 남을 위해 헌신하는 내모습은 끔찍했다. 나는 내 삶이 필요했다. 일이 삶이 되는 인생이 아니라, 그냥 나 자체의 삶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 나에게는 좋은 조력자가 있었다. 내 아이였다. 용기가 생겼다. 이 아이와 함께라면 내 삶을 보다 잘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이 살아가는데는 여러가지 가면이 필요하다. 나라는 본체를 용기있게 드러내줄 수 있는 가면. 가리기 위함이 아니라 더 당당해지기 위한 가면이었다. 가면무도회의 사람들은 소극적이지 않다. 그들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구애한다. 가면이 있으므로.


숨김으로써 더 잘 드러나는 법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엄마'라는 가면을 빌리기로 했다. 첫 도전은 여행이었다. 둘만 떠나는 여행.


"우리 호주갈까?"

"아니 싫어. 난 태국가고 싶어."


네가 순순히 허락해주리란 생각은 안했다. 다음날 저녁을 먹는데 아이가 먼저 말을 한다.


"엄마, 호주는 오스트레일리아. 섬이야."

"어? 엄마 호주가 섬인줄 몰랐는데"

"내가 유치원에서 선생님 하시는 말씀을 잘 들었거든. 내 뇌에 잘 기억해놨었지."

"그럼 호주 가고싶어?"

"응, 호주 갈래. 엄마가 좋아하니까. 엄마는 오스트레일리아가 멋지다고 생각하잖아."


억지로 조르지 않았는데, 다행히 허락을 받았다.

오스트레일리아, 섬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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