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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임 Aug 07. 2023

아이가 말을 걸었다 14

나는 몇 살 때부터 혼났을까요?

"나는 몇 살 때부터 혼났을까요?"


1년만에 다시 글을 쓴다. 매일 우수수 떨어지는 수많은 말뭉태기들 사이에서 무엇을 건지고 무엇을 이야기해야할지 몰라서 헤매기도 했고, 의미부여를 하던 정성어린 마음이 사라져버린 내탓이기도 했다. 어떤 말을 해도 새삼스럽지가 않고 어떤 말을 해도 기억에 쉽게 담기지가 않았다. 아이를 향한 애정은 더 커진 것 같은데 아이의 표현에 반응하는 내 몸과 마음은 미지근하기만 하다.


아이의 얘기를 들어주기보다는 흘러넘기는 일이 많고 새겨듣기보다는 얼렁뚱땅 대답할 일이 많다. 아이는 매일 주절주절 이야기를 하는데 내 귀는 경직돼 있다. 아이를 향한 내 말도 많이 늘었다. 칭찬과 다정함보다는 매일 꾸지람을 하는 일이 더 많아진 것 같다.


나는 참 잔소리를 안하는 엄마라고 생각했다. 이건 남편의 영향도 크다. 난 남편에게 잔소리를 많이하는 아내가 아니다. 워낙 잔소리가 많은 남편이라, 그걸 일일이 대꾸하는것보다 그냥 듣고 마는게 낫다 싶었고 내가 듣기 싫은 잔소리를 굳이 상대에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에게도 잔소리는 정말 최소한으로 하고자 노력한다.


이런 내 노력과는 별개로 나는 '하지마', '그만', '안돼'라는 짧은 명령어로 잔소리를 대신하고 있다. 얼마전 오랜만에 평화로운 주말을 맞이하고 있었다. 요즘 따로자는 습관을 들이고 있는데, 아이는 안방에서 자고 나는 아이방에서 자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난 아이가 나를 깨우러 찾아왔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여행에 관한 대화를 나누게 됐다. 어디 가고싶냐는 말을 하던 와중에 다짜고짜 '나 거기 안가'라고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왜 싫냐고 물어봐도 그저 싫단다. 어이없고 황당한 실랑이를 하다가 서로 감정만 상한 상태로 점심시간이 됐다. 반찬을 내놨더니 그것도 싫단다.


점점 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침부터 뭐하는 짓이지? 서로 휴식시간을 갖기로 했다. 정확하게 10시가 되면 양치를 하기로 했다. 10시 2분. 내 감정은 폭발 직전이었다. 뭐해? 양치안해? 거기서 멈췄으면 됐을텐데.

"아 하려고 했다고!!"


"이리와. 자리에 앉아." 남극 한파보다 무섭다는 엄마의 차가운 말투로 아이와의 대화가 시작됐다. 20분정도 눈물이 쏙 빠질정도로 아이를 혼냈다. 10분만에 끝내려고 했는데. '엄마 때문에'라는 아이의 쓸데없는 사족 때문에 내 화는 재점화됐고 결국 20분을 채웠다.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그날의 내 분노는 가라앉았다. 난 그렇게 아이를 자주 혼내는 편은 아니라서 이번 훈육은 정말 오랜만에, 신기할정도로, 아주 드문 일이었다. 사과하며 끝난 일이었다 생각했다.


다음날 아침시간이었다.

아이가 밥을 먹으며 물었다.

"엄마, 궁금한게 있어요. 나는 몇살때부터 혼났어요?"

"어?... 글쎄 기억이 안나는데.. 너는 엄마한테 많이 혼났다고 생각해?"

"네. 저는 맨날 엄마한테 혼나는 것 같은데, 언제부터 혼났는지는 모르겠어요. 세살때부터일까요?"

"엄마는 너를 많이 혼내지 않았던것 같은데"

"그럼, 저 언제까지 혼낼거예요?"


제대로 한방 먹었다. 잔소리를 하지 않는 쿨한 엄마가 되겠다는 내 다짐도, 아이에게 화내지 않고 적절한 훈육으로 교육해보겠다는 내 원대한 꿈도. 그냥 내 꿈이었다. 나는 화내는 엄마이기도 했고, 자주 화내기도 했고, 아주 어릴때부터 화를 냈을지도 모르고, 언제까지 화를 낼지 모르는 분노쟁이 엄마였다. 아이의 기억은 너무 정확하고, 아이의 말은 순진해서 항상 할말을 잃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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