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리고 아이들의 상처 치유기
최근에 한 센터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마음이 따뜻하고 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좋은 사람
우리는 고만고만한 나이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도 대화가 잘 통한다.
서로의 아이에 대한 걱정을 한참 들어주고, 위로해 주고, 격려해 준다.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다.
그저 그 폭풍 걱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함께 진심을 다해 나누는 것 밖에
내 고민을 말할 상대가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힐링이 된다.
치료사들은 정작 어디 가서 내 육아 고민을 말도 못 하고 속으로만 앓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상담사라고 완벽하게 아이 마음을 읽어주며 여유로운 육아를 하지 않는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저도 제 애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아요! 도와주세요!라고 소리칠 대나무숲이 간절히 필요하다.)
말로만 듣던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만나 본다.
에이 뭐야~ 괜찮기만 하네!!! 하면서
서로의 아이들이 너~~ 무 예쁘고 괜찮고 귀엽고 사랑스럽다. 정작 내 새끼에 대한 걱정은 한 보따리!
그러다 대화는 여기로 흘러간다
Q : 내 아이는 왜 이렇게 고쳐야 하는 것만 보이지? 남의 집 아이는 왜 이렇게 귀엽게 보일까?
A : 내가 책임 안 져도 되니까
맞다!!!!!!!
내가 가진 엄마라는 타이틀의 무게가 나를 짓누르는구나. 내가 낳은 이 핏덩이를 어떻게든 사람 만들어야겠다! 는
그 책임감 그것은 아마 조리원에서부터 시작되는 본능일지도
아이의 모~~~~~든 것에 대한 엄마들의 책. 임, 감
그 무거운 책임감에서 남의 집 애는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유로움이 남의 집 애를 있는 그대로 좋아하고 귀여워할 수 있게 하는 게 아닐까?
옛 말의 위대함
남의 집 애는 왜 이렇게 빨리 커???
(그야 내가 안 키우니까 빨리 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