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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황 Oct 05. 2018

-제 1장- 커터칼과 한국사

    얼마전 편의점에 들어갔다가 진열된 물건 하나를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클립이나 압정, 핀, 커터와 스테플러 등을 만들어 파는 한국 회사인 화신공업주식회사의 커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그 커터의 디자인을 보고 놀란 건데, 내가 이미지로 기억하는 것이 정확하다면 일본의 컷터 전문 제조사인 NT커터社의 시그니처 모델과 디자인이 똑같았다. 이후에 구글을 통해 검색한 결과, 확실히 NT커터의 ‘A-300’ 모델을 완전히 도용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모델은 1972년에 발매됐으며 아직까지도 NT커터의 대명사격인 스데디셀러 모델이다.  화신공업주식회사가 NT커터의 A-300을 베껴 만든 그 문제의 커터는 ‘스마트 209 캇타’라는 모델명으로 판매되고 있다.


    영어 ‘cutter’의 일본식 발음은 ‘カッター’ - ‘캇타’다. 한국에서 ‘커터칼’로 부르는 이 물건은 일본 NT커터社의 전신인 ‘일본 전사지 주식회사’의 설립자 오카다 요시오가 1959년에 발명한 사무용 칼이다. 당시 박스를 개봉하거나 할 때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개발한 이 칼의 이름을 박스 테이프를 ‘끊는’ 용도라 해서 ‘カッターナイフ’-‘캇타 나이후’라 정했다. 이 커터가 히트상품이 되자 1961년에 아예 커터 전문 회사로 전환해 사명을 NT커터로 바꿔 영업을 시작했고 같은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박람회 등에 진출해 본격적으로 세계 시장에 수출하기에 이른다.


    한국에서 일본식 영어 발음을 쓰는 경우는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특히 50대 이후 세대에게서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이는 분명히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 구간에 ‘일본제국’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많은 외국어가 일본제국을 거쳐 조선으로 들어왔고 일본어의 특성을 토대로 구사되는 영어 표현이 한반도에 남게 됐다. ‘난닝구’나 ‘빠꾸’ 같은 일상적 언어는 물론이고 교과서를 비롯한 서적 등을 통해 전파된 수많은 용어들은 물론 각계의 전문용어들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일본의 언어를 통해 상당히 많은 문화를 상속 받게 된 셈이다. 일례로 대한민국의 법 체계는 독일로부터 굳어진 대륙법계를 근간에 두고 있다. 이는 19세기 일본제국이 흡수해 한반도를 통치하며 뿌리내린 것이다.


    1945년, ‘리틀보이’에 의해 마침표를 찍은 일본제국은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식민지에서 군대를 철수시켜야 했다. 물론 조선에 거주하던 많은 일본인들 역시 급작스럽게 귀국해야 했다.  이때 승전국 미국은 성인 1인당 트렁크 한 개 분량의 짐만 가지고 돌아갈 것을 강제했고, 일본인들은 많은 재산을 고스란히 조선 땅에 두고 떠나게 됐다. 당시 일본인들은 언젠가 다시 돌아와 부동산을 매각하거나 가지고 있던 재산을 회수할 수 있으리라 여겨 친하게 지내던 조선인이나 휘하에 두고 있던 조선인 하인들에게 집과 재산을 맡기고 귀국했다. 하지만 그들은 한반도에 돌아와 재산을 처분할 기회도 회수해 돌아갈 기회도 없었다.


    연합국의 승리 덕분에 독립을 하게된 한국은 일제 잔재의 청산을 사회적 과제로 여기고 본격적인 청산 작업에 착수했다. 이후 한 번의 ‘국제적 내전’, 두 번의 군사 독재가 포함된 세 번의 독재를 거치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와 민주주의 체제를 본격적으로 작동시키는 경험을 한다. 이 과정에서 반공의 이데올로기가 더해져 한국 사회엔 ‘쪽바리’와 ‘빨갱이’가 혐오와 기피의 대상, 조롱과 비판의 과녁으로 자리잡게 됐다. 물론 둘 중 한국사회에서 오늘날까지 생명력을 잃지 않고 한국인들의 격렬한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쪽바리’다.


    포르노그라피의 정의를 단순하게 ‘한 가지의 감정-반응만을 자극하기 위해 맥락과 서사와 리얼리티를 붕괴시키고도 맹목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정확히 그 감정-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정의해도 된다면, 그리고 이 정의에 동의한다면 한국인들이 ‘전범기’라 부르는 ‘욱일기’와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소녀상’은 이제 포르노그라피와 마찬가지의 형태로 소비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둘은 한국인들의 무조건적인 분노를 이끌어낸다. 이를테면 ‘무언가를 중심에 두고 외곽을 향해 방사형으로 뻗는 직선의 이미지’는 한국에서 변명의 여지 없이 일본제국의 상징으로 읽혀 비난 받는가 하면 ‘의자에 앉은 한복 차림의 단발머리 10대 여성상’은 어떤 미학적-역사적 비평도 받지 않으면서 설치-보호 받아야 하는 상징으로 언제 어디서든 연착륙한다. 전자의 이미지는 의도나 맥락, 모티브나 서사와 전혀 관계 없이 대중에 의해 처형되고 후자의 조각상엔 미세먼지 많은 날엔 마스크가 씌워지고 비가 오는 날에는 우의가 입혀지며 겨울엔 털모자와 목도리와 외투가 입혀진다. 이는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페티시즘인 동시에 방어기제다.


    한국은 부정적으로든 긍정적으로든 이씨 왕조의 사적 시공간인 조선보다는 일본제국의 식민지로서의 조선에  그 문화적 뿌리를 두고 형성된 사회다. 한반도의 역사에서 이씨 왕조의 조선을 지울 수 없듯 일본제국의 식민지로서의 조선 역시 지울 수 없다. 이는 절대 부정할 수 없는 형질의 것이지만 한국 사회는 이를 반드시 부정해야 하는 하나의 숙명으로 여긴다. 한국에게 일본은 혐오와 공포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질투와 집착의 대상이다. 또한 일본을 극복해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지만 그 과정에서 일면 일본을 동경하기 때문에 결코 극복할 수는 없는 상태에 놓인다. 공존이 불가능한 형질과 현상 탓에 일관성을 상실한 태도를 다음 세대에게 유전한다.  2018년 오늘 화신공업주식회사의 제품 ‘캇타’를 통해 이끌어낼 수 있는 이야기는 바로 이런 ‘한국사’다. 이 카피 제품엔 일본에 대한 한국 사회의 여러가지 정서가 적절하게 들어가 있다. 그래서 이 카피 제품은 참으로 한국적이다.


    한국적인 것을 부정하거나 한국적인 것을 아예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한국적인 것을 드러내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이씨 왕조의 조선적인 것을 잡아당겨 한국적인 것으로 소비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전통 건축물이라 부르는 고궁과 한옥, 전통 의복이라 부르는 한복이 있다. 모두 당시 왕가와 극소수의 귀족들이 누리던 것이다. 이를 ‘한국적인 것’이라 소개하거나 ‘한국의 멋’이라 소개하면서 맹렬히 혹은 무의식적으로 앞서 서술한 실재하는 ‘한국사’를 부정한다. 이런 자아 부정의 태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숙지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왼쪽이 화신공업주식회사의 209 핸디캇타 제품, 오른쪽이 NT Cutter사의 A-300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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