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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황 Nov 02. 2018

헌법 19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을 온 마음 다해 환영하며.



버디버디든 네이트온이든 MSN이든 카카오톡이든 라인이든 뭐든간에 타인이 자신과 소통할 수 있는 주요 창구의 프로필은 간판 같은 것이고, 거기에 달아두는 문구는 사람의 가치관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 중에 메신저 본인 소개에 '최고의 복수는 성공이다'였나 아무튼 그런 걸 걸어둔 사람이 있었다. 그땐 '그에게 도대체 성공이 뭘까?'라는 의문만 들었는데 요즘은 삶의 원동력이 복수였다는 것에 좀더 소름이 돋는다. 




성공과 실패 그리고 원한과 복수를 일상의 기치로 내건 이들이 한둘일까? 대학 시절 선배 하나는 언제나 봄학기 개강일이 생일이었다. 아무도 개강날 자기 생일을 챙겨주지 않는다며 분노했다. 생일이라는 것을 반드시 누군가가 챙겨줘야 한다는 유아적 태도에 놀랐는데, 그렇다고 종일 분노를 드러내고 학교에 있던 그사람의 존재가 조금 소름끼쳤다.




하나둘씩 군대에 다녀오게 됐을 무렵, 남자들은 이상한 기운을 뿜고 다녔다. 그 좆같은 시공간에서 드디어 벗어났다는 것과 자기가 그 시공간에서 인생을 허비하고 있을 때 졸업반이 되거나 대학원생이 되어있는 여자 동기들에 대한 짙은 시기와 그렇게 같이 군대에 다녀온 동병상련의 남자들에 대한 일단의 호감, 군대에 다녀오지 않았거나 면제를 받은 이들에 대한 일단의 멸시같은 것들이 섞여 기분나쁜 기운을 만들어냈다.




군대는 물론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곳이다.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군대는 여실히 전쟁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집단이고 전쟁은 인류가 행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랗고 광범위하고 잔인한 폭력이다. 따라서 군대는 이 가장 커다랗고 광범위하고 잔인한 폭력을 준비하고 가동하는 기관-집단이다. 그렇기에 군대라는 기관-집단이 스스로 폭력 자체에 기계적으로라도 민감하게 대응하고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군대는 자신들이 준비하고 가동시킬 수 있는 폭력을 내면-일상화 한 상태로 조직을 운영한다.




군대는 그 자체로 비정상적인 곳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민주주의의 정 반대편에 있을 법한 시스템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가두고 스스로를 작동시킨다. 인간성은 찾을 수도 없다. 군대라는 조직이 위배하는 헌법만 해도 수두룩하다. 그런 곳은 사람을 해치고 만다. 사람을 해치는 곳에서 사람을 해치고 본인도 해를 입으며 지내다 나오면, 앞에서 뭉뚱그려 묘사한 기분나쁜 기운을 가진 채로 살아간다. 시간이 가서 옅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당시에 얻은 트라우마가 아주 오래 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대한미국의 헌법 제 2장 19조는 양심의 자유를 규정한다.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여기서 말하는 양심이란 널리 개인의 인격형성에 관계되는 내심에서의 가치적, 윤리적 판단은 물론 더 나아가 세계관, 인생관, 주의, 신념 등도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심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은 양심의 형성, 및 결정의 자유, 양심유지의 자유, 양심실현의 자유 등을 보장한다.




어제 대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무죄를 선고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싸워 헌법 19조가 보장한다고 약속한 양심의 자유를 지켜낸 것을 우선 마음껏 기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수만은 없었다. 남자들, 특히 군대에 다녀온 남자들과 군대에 가야 하는 남자들과 군대에 있는 남자들에게서 집단적 아나필락시스가 발병했다. 일단 그들이 이 법에서 말하는 '양심'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는 것은 차치하고, 그게 고작 위키피디아만 검색해도 나오는 거라는 사실은 차치하고, 나는 이 불쌍한 남자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어졌다. 당신들을 위로한다. 불행한 시공간을 겪어야 했던 당신들을 진심으로 위로한다. 이건 내가 내게 하는 위로이기도 하다.




하지만 위로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이제 겨우 헌법이 약속한 나의 자유, 당신의 자유 하나가 군대라는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이고 반헌법적인 곳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뿐이다. 우리는 신체의 자유나 거주-이전의 자유나 주거의 자유나 무엇보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약속했던 그 헌법을 군대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모병제나 징병제를 이야기하기 전에, 병사들도 간부들과 똑같이, 원한다면 집에서 출퇴근을 할 수 있어야 하고,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닐 수 있어야 하고, 아무튼 군대가 사람의 자유를 억압해선 안 된다고 주장해야 한다.




성공이 복수가 되어선 안 된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무죄 판결은 우리 사회가 이뤄낸 빛나는 성공이기에 더욱 그렇다. 내가 그랬으니 너도 그래야 한다는 식의 병든 태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이제 처음으로 인간성의 회복을 향한 갈망으로 이룬 성공을 천천히 음미하는 주말을 보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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