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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황 Oct 29. 2018

바버샵과 한국 남성인권 시위

한국 남자라서 한남인가, 한심한 남자라서 한남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몇 달 전부터 바버샵을 알아보고 있었다. 내 머리를 잘 다듬는 헤어드레서를 찾는 것이 정말 어렵다고 느끼고 있었던 터다. 내가 만나본 최고의 ‘선생님’은 2년 전 즈음 출산해 육아휴직 중이다. 그분은 30년 넘게 다녀본 미용실의 헤어드레서 중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내 머리카락의 두께와 엄청난 숱과 특성을 모두 파악해 언제나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어떤 스타일을 원하는지, 왁스로 연출하는 것을 즐기는지 등을 묻고는 정말 내가 상상한 모습 그대로 구현해낼 줄 아는 세상에 단 한 명 있을 것 같은 능력을 지닌 분이었다. 단언하는데 동시대의 구색을 갖추려면, 인간의 오복 중 하나에서 자손중다를 빼고 좋은 헤어드레서를 만나는 것을 넣어야 한다. 그만큼 이런 헤어드레서를 만나는 것은 큰 행운이자 복이리라. 그 헤어드레서에게 헤어컷을 맡기면 2만7천 원을 지불해야 했는데, 그렇게 세심한 헤어드레서에게 서비스를 받는 대가로 지불하는 금액 치고 너무 싸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동의할 것이고 대부분의 남성들은 머리 자르는데 뭔 돈을 그렇게 주고 자르나 하고 심드렁할 것이다. 아무튼 이런 엄청난 능력을 가진 헤어드레서가 육아휴직으로 경력이 단절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선생님’이 돌아올 때까지 내 머리를 다듬어줄 육아휴직 대체자를 알아봐야 했고, 소문으로만 접해오던 바버샵에 대해 검색하고 있었다.


그 전에, 이 글을 쓰기 위해 구글에서 남성의 미용실 이용 빈도에 관한 통계를 찾아봤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다. 생각보다 노출된 자료가 없었다. 아무래도 그런 통계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인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 같았다. 몇 개 없는 귀한 자료들을 보면서 정말 남성들이 자기 외모에 별로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5년에 리얼미터에서 19세 이상 성인 500 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남성이 가장 선호하는 미용실은 블루클럽이었고 둘째가 박승철헤어스튜디오였다. 2017년 틸리언패널에서 19세 이상 64세 이하 남성 202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많은 남성들이 한 달 주기로 미용실이나 이발소를 찾는다고 답했고 둘째로 많은 남성들이 한 달 보름 주기로 머리를 자른다고 답했다. 블루클럽은 현재 컷트 비용을 8천 원 받고 박승철헤어스튜디오의 경우 매장별로 편차가 있지만 보통 2만 원 정도를 받고 있다. 통계상으로, 많은 남성들이 한 달에 한 번 꼴로 지불하는 헤어컷 비용으로 8천 원과 2만 원이 가장 적당하다고 여기는 거다.


다시 바버샵으로 돌아오자. 몇 해 전부터 바버샵이 이태원을 중심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바버샵은 이발소다. 이발소. 남성들에게 이발소는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중장년층이 이용하는 머리자르는 곳으로, 오래된 동네나 목욕탕에 있는 것, 다른 하나는 성매매 업소를 의미한다. 때문에 기존 이발소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로부터 벗어나 젊은 남성들의 미용을 위해 세련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거듭난 이발소들이 바버샵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머리는 물론 수염이나 눈썹도 다듬으며, 많은 종류의 클리퍼를 이용하고 면도칼도 사용한다. 포마드나 왁스를 이용해 머리를 만져준다. 이런 서비스를 받고 지불하게되는 금액은 4만 원 선이다. 지난달 이태원의 한 바버샵을 방문했을 때, 그날은 토요일이었는데, 내가 머리를 자르기 위해 기다리거나 머리를 자르고 나가는 사이에 그곳을 찾은 고객은 고작 두 명이 전부였다. 나름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이 좋은 평을 남긴 바버샵이었음에도 그랬다. 토요일 낮에 붐비는 미용실에 비해 썰렁해도 너무 썰렁했다. 그나마 그곳을 방문한 다른 고객 중 하나는 외국인이었다. 다른 바버샵의 사정이 어떤지, 다른 지역의 바버샵이 성행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날 내가 받은 느낌으로라면 그리 많은 남성들이 ‘애용’하는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니 블루클럽은 다섯 번 갈 수 있는 금액이고, 박승철헤어스투디오는 두 번 정도 갈 수 있는 금액이기에 호기심에 한두 번 이용하는 이들은 있을지 몰라도 줄곧 바버샵만 이용하는 이들이 많을 것 같지는 않다. 남성들이 외모를 가꾸고 화장도 하는 시대가 왔다고 하지만 기실 대부분의 남성들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당장 지하철만 타봐도 알 수 있듯, 화장한 남성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나 또한 바버샵에 계속 가리라고 장담은 못하겠다. 아무래도 그 선생님 만한 세심함과 실력을 갖춘 헤어드레서를 찾는 것은 불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돈이 아깝지는 않았다. 그만한 서비스를 받았고, 충분히 정당한 대가를 지불했다고 느꼈다. 하지만 어디서 머리 깎는데 4만원이더라는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남성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미쳤군'같은 반응으로 수렴된다. 머리 깎는데 그런 돈을 지불하는 것은 멍청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술값 4만원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술값에 그보다 많은 돈을 쓰는 것은 아깝다고 느끼지 않지만 자기 머리를 자르는 것에는 그만한 돈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지난 토요일에 혜화역에서 벌어진 남성 인권 시위에 관한 의문들을 대부분 해소할 수 있게 된다. 무려 1만5천 명이 집결할 거라고 신고한 집회 주최측의 예상과는 달리 고작 60여 명만 시위에 나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일단 차치하기로 하자. 우리는 거기 나온 남성들이 서로에게 냄새난다며 욕하며 흉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현장을 중계하듯 올라온 남초 카페나 남초 커뮤니티나 주최가 되었던 당당위의 게시판 글을 보면 ‘냄새 난다’, ‘오려면 씻고 나와라’라는 글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고작 60여 명 나왔는데, 여섯 명에게서만 냄새가 나도 무려 10%에 육박하는 비율이다. 이정도면 외모를 가꾸는 것 뿐만 아니라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에도 별 관심이 없다는 거다. 실제로 많은 남성들이 배변활동을 끝낸 후 손을 씻지 않는다는 건 이제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남성들 스스로도 ‘그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안타깝게도 이런 이들이 거리로 몰려와 남성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이른바 지린내가 진동을 했던 것이다. 뭐, 게임이나 술을 마시는 것에는 시간과 돈을 그리 많이 아끼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개인적 쾌락을 맛볼 수 있는 유희에는 적극적이지만 사회적 시선이나 공공의 쾌적함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는 앞서 차치해뒀던 것, 그러니까 1만5천 명이 모이리라 예상했던, 온라인 상에서 뜨거웠던 남성들의 울부짖음은 왜 오프라인에서는 처량하게도 60 명이라는, ‘앉아 번호’로 집계할 수 있는 수준으로 현현한 것인가라는 질문과도 이어진다. 밥은 주냐는 남성들, 밥은 주냐는 남성들을 비난하는 영화 보느라 시위에 참석하지 않은 남성들, 영화보느라 시위에 참석하지 않은 남성들을 비난하는 밥은 주냐는 남성들, 다 필요없고 제발 씻고 나오라는 남성들, 제발 씻고 나오라는 남성들의 말에 제발 뚱뚱하고 못생기고 키작은 남성들은 나오지 말라는 말을 덧붙이는 남성들, 실망이라는 남성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남성들의 아우성으로 알 수 있듯이 남성들은 그냥 별 생각이 없다. 별 생각이 없는 이유는 그들이 사실 별 생각 없이 살아도 무관하기 때문이다. 별 생각이 없이 살아도 무관하다는 것은 곧 이 세상이 그들이 존재하는 방식을 특별히 문제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존재하는 방식을 특별히 문제삼지 않는 세상이라는 것은 세상이 그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이 세상이 남성들의 권리를 일상적으로 침해하지 않는다는 거다. 정확하게는 남성이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세상으로부터 일상적으로 권리를 침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성이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세상으로부터 부당하게 권리를 침해당하고 자유를 빼앗기는 경우는 내가 알기로 한국에서 살면서 한 번 경험할 수 있다. 군대로 대표되는 병역 의무의 이행에 있어서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군대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목 아래 정작 본인의 자유와 민주주의 시민으로서의 권리는 상당부분 침해 당한다. 대부분 헌법에서 보장하는 권리와 자유들이다. 잘 알겠지만 현재까지의 군 생활은 헌법 제2장 14조 거주 및 이전의 자유, 15조 직업 선택의 자유, 16조 주거의 자유, 17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18조 통신의 비밀, 19조 양심의 자유, 20조 종교의 자유, 21조 언론 및 출판의 자유, 집회 및 결사의 자유, 22조 학문과 예술의 자유, 23조 재산권의 보장과 재산권 행사 공공복리 적합의 원칙, 공공 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 및 사용 또는 제한시 정당한 보상, 31조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의 보장, 32조 근로의 권리 및 의무, 최저임금의 시행,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근로조건의 기준, 33조 근로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의 보장, 34조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국가의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 35조 환경권, 쾌적한 주거생활의 보장, 무엇보다 37조에 명시된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존중과 본질적인 내용의 침해 금지를 모두 위반한다. 그런데 남성들은 어떤가? 하나같이 군대가 뭣 같은 곳이라고 말하지만 그래도 군대는 다녀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남자가 된다고 말한다. 내가 했으니 너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심지어 여성에게도 병역의 의무를 쥐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가 당했으니 너도 당해야 한다는 논리다. 설령 자신의 인권을 침해당한 경험이 있다면 그걸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너도 쟤도 걔도 그도 모두 당해야 공평하다는 거다. 그런 것을 남성들은 ‘평등하다’라고 표현한다.


집에서 출퇴근하는 상근 예비역이 있으면, 모두가 집에서 출퇴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상근 예비역이 집에서 출퇴근하기 때문에 차별한다. 모든 병사가 개인 휴대전화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제라도 그런 논의가 나와 다행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건 군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누군가가 병역 특례를 받으면, 병역 특례 제도가 대폭 늘어나 균등하게 특례를 받을 기회를 얻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병역 특례를 없애자고 주장한다. 누가 군대는 폭력을 다루는 곳이라서 내 양심상 갈 수 없다고 주장하면, 그 주장에 동의하고 연대하는 것이 아니라, 잡아서 감옥에 가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들이 온라인 상에서 남성의 인권이 바닥에 떨어졌고 세상이 남성을 차별하는 시대가 왔다고 시끄럽게 떠들었길래, 누군가가 앞장서서 거리로 나가 바닥에 떨어진 남성의 권리를 되살리기 위해 모이자며 집회신고를 했지만 60 명이 나와서는 서로 냄새 난다며, 밥타령이나 한다며, 영화 보느라 안 온 주제에 말이 많다며 싸우고들 있다. 우습지 않은가? 자기 가꾸는데 인색한 사람들이 뚱뚱하고 못생기고 키가 작으면 나오지 말라고 하는 것이? 소변 보고 손도 안 씻는 사람들이 옆사람 보고 냄새 난다고 면박을 주는 것이? 정작 싸워야 하는 것에는 다 필요 없고 내가 당했으니 너도 당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잃은 적도 침해당한 적도 없는 일상의 권리를 주장한다는 것이? 많은 한국 남자들이 '한국 남자'를 줄인 한남이라는 말을 싫어는데, 이번 기회에 '한심한 남자'라는 뜻으로도 읽어보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매년 10월 말은 아주 즐거운 명절로 지정되었으면 한다. 반란을 일으켜 불법으로 정권을 장악한 독재자 박정희가 암살된 이른바 ‘탕탕절’을 시작으로 60 명의 남성들이 전례없는 집회 노쇼를 선보여 혜화동 차없는 거리 만든 날인 ‘텅텅절’을 거쳐 할로윈에 이르는 10월 말을 엮는 거다. 그래서 그동안 명절이라고 남성 친척들에게 갑질과 가사노동 독박을 뒤집어쓰고 즐기지 못한 억울한 청년-여성들이 모여 신나게 놀아재끼는 날로 길이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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