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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황 Nov 22. 2018

유승준 입국을 막는 건 잘못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경영, 싸이, 신정환, 이수, 송영창


미성년자와 원조교제를 해도, 상습 원정 도박을 해도, 방위산업체 부실 근무를 해도, 심지어 음주 뺑소니 후 시체 유기를 하고 실형을 살아도 한국의 방송엔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유승준은 안 된다. 이렇게된 이유는 국가가 나서서 개인의 혐오를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의 의무가 신성하다며 허세를 부리는 사이에 정작 군대에선 폭력과 부조리가 끊이지 않는다. 얼마전엔 해군 함정에서 근무하던 여군이 두 명의 상관에게 성폭행을 당했는데도 가해자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이 폐쇄적이고 기형적인 폭력의 기관을 기피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 인간에 대한 인격 살해가 17년 동안 벌어지고 있다. 다음 링크는 내가 쓴 모든 글들 중 가장 많은 악플을 받았던 독보적인 글이다. 원문에 약간의 수정을 가했다.


"유승준 입국을 막는 건 잘못이다"


요즘 20대 초중반 분들은 유승준을 잘 모르실 수도 있지만, 그는 2000년대로 따지면 김태희 남편, 2010년대로 따지면 방탄소년단 정도의 인기를 누렸던 연예인이었어요. 그야말로 아이돌이었죠. 그의 이미지는 '성실한 교회 오빠' 정도였습니다. 언행이 바른 청년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했습니다만, 아마 단순한 비디오-이미지는 아니었을 겁니다.


그는 '꼭 군대에 가겠다'는 말을 여러 번 했어요. 그래서 그를 믿고 병무청이 군 입대를 앞둔 예비 장병의 미국 출국을 '예외적으로' 허가해 줬습니다. 그렇게 미국으로 갔던 유승준은 자신의 모든 발언을 덮고 미국 국적을 취득합니다. 그러니 군대에 가지 않게 됐죠. 이에 병무청이 입국 금지 행정명령을 시행합니다.


말도 못했죠. 당시 여론은 유승준을 매국노급 인사로 매몰시킵니다. 비난과 증오의 크기는 그가 쌓아온 이미지나 인기의 크기에 정비례했습니다. 온 언론이 나서서 '유승준'을 죽였으니까요. 감히 누가 '이거 너무하지 않나'라는 말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물론 저 역시도 여론을 거스르진 않았습니다. 그저 우스운 사람 정도로 여겼거든요.


자, 이제 정리해 봅시다. 시간도 많이 흘렀고 그동안 한국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의 의미와 권리, 인권, 자유, 평등 등의 가치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죠. 유승준이 뭘 잘못했습니까? 약속을 어긴 거요? 발언을 철회하고 국적을 바꾼 것이 사회적 살인을 감행할 만한 일입니까? 천만에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만날 '헬조선은 탈조선이 답'이라는 수사를 썼다면 다시금 유승준의 상황에 그 수사를 대입해 보세요.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방산비리나 군 내무 부조리에 의한 사건 사고 소식을 들으며 '군대는 안 가는 게 상책'이라는 수사를 썼다면 다시금 유승준에게 대입해 보시란 말입니다.


그리고 '형평성'을 운운하시는 분들이라면, 애초에 군 입대를 앞둔 징집 대상자에게 출국을 예외적으로 허가해준 병무청의 어긋난 형평성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겠죠. 당신들 모두 입영 앞두고 해외여행 못 갔잖아요. 형평성의 원칙을 지켜야 하는 것은 선택권이 있는 개인이 아니라 공정을 기해야 마땅한 기관이란 말입니다. 게다가 형평성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국적을 포기하고 군대에 가지 않은 모든 사람들, 특히 고위 공직자의 자녀들에게도 입국 거부가 취해지는 게 맞습니다만, 실상은 자유롭게 한국을 오가며 검은 머리 외국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유승준을 개인적으로 증오할 수 있습니다. 그건 개인의 기호-가치 판단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국가 시스템이 나서서 유승준이라는 인격의 혐오를 조장하는 일은 잘못된 겁니다. 그건 시민혁명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사회가 할 일이 아닙니다. 그런 시스템은 저열한 겁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 이민정책의 일환으로 특정국적자 입국금지 행정명령을 시행하는 과정 중에 수많은 사람이 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하는 장면을 뉴스를 통해 보았습니다. 그 사람들과 유승준은 다르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트럼프의 행정명령과 병무청의 행정명령은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이 사회가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길 바란다면, "이건 아니다"라고 용기 내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언론을 통해, 미디어를 통해 유승준이라는 인격-자연인을 시스템으로 거부하고 혐오를 조장하는 우리 사회를 거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무엇보다 군대의 폭력성과 그 문제에 관해 깊이 성찰하고 왜 군대에 가야 하는가,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적 권리를 침해하는 군대의 문제는 왜 지금까지 고쳐지지 않고 있는가에 대해 과감히 따지고 물어야죠. 상근 예비역으로 집에서 출퇴근 하면서 근무하는 병사들을 질투하고 시기하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럴 게 아니라 모두가 집에서 출퇴근 할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하는 게 더 발전적인 방향 아닐까요? 일전에는 또 모든 병사들에게 개인 휴대전화를 쓸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논의가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게 군대냐며 비아냥댔습니다.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는 이들이라고 해서 국가가 마음대로 헌법이 보장하는 수많은 권리와 자유를 일시적으로 박탈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은 못하는 겁니다.


2020년대가 바짝 다가왔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 저지른 시대적 착오-과오에 대해 책임지고 매듭짓고 넘어가야죠. 


2017년 03월 15일자 허프포스트. 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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