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다니던 때, 작업 하려고 허리춤까지 올라오는 불상 하나를 구한 적이 있다. 플라스틱 재질의 평범한 석가모니 상은 어느 점집이나 절에서 볼 수 있을 법한 표정을 하고 내 작업실 한켠에 앉아있었다. 그러다 작은 사고가 하나 생겼다. 누가 불상의 가부좌 튼 다리 위에 전동 드릴을 떨어뜨렸는데 글쎄 불상 하반신이 부숴져버린 것이 아닌가. 나는 그때 큰 깨달음을 얻었다.
보통 이런 불상은 점토로 원형을 만들고 그걸 다시 폴리코트라 불리는 액체 형태의 플라스틱 원액에 경화제를 섞어 주물 뜨듯 복제한다. 그 과정에서 유리섬유를 안쪽에 덧바르는데, 유리섬유를 바르면 망치로 힘껏 내리쳐도 깨지지 않는다. 보통 플라스틱 재질의 선박이나 주택 옥상에 있는 물탱크 등 아무튼 플라스틱으로 만든 튼튼해야 하는 모든 것에는 유리섬유를 덧댄다. 이런 종류의 재질을 보통 FRP(Fiber-reinforced plastic 섬유강화플라스틱)라고 한다. 튼튼해야 하는 건 실생활에 쓰이는 물건 뿐만이 아니라서 당연히 작품을 만들 때도 폴리코트에 유리섬유를 적셔서 굳힌다.
물론 청동-브론즈로 만드는 것이 점토로 조소하는 작업의 최종 단계겠지만 주물 공정이나 들어가는 예산의 규모 면에서 플라스틱이 훨씬 가볍다. 브론즈와 플라스틱의 무게만큼 커다란 차이가 난다. 아무튼 플라스틱으로 만들더라도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위에서 언급한 유리섬유를 덧대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보통의 경우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손 대면 톡 하고 부러질 수도 있는 것이 플라스틱이니까. 그런데 그 불상은 어땠나? 만약 그 불상에 유리섬유가 덧대져 있었다면 떨어뜨린 전동 드릴은 불상 무릎에 맞고 튕겨나갔을 테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는 깨진 불상 조각들을 보면서 이미지-상의 얄팍한 존재감에 대해 생각했다.
는 훼이크고, 도대체 왜 불상을 이리도 깨지기 쉽게 만들었을까에 대해 생각하다가 기막힌 업계의 사정에 대해 상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만약 우리가 조계사 앞에서 만물상을 하는 상인이라면, 이런 불상을 구매하는 고객, 즉 작은 사찰이나 점집을 몇 번이나 상대하겠는가? 불행하게도 불상은 소모품이 아니기 때문에 한 번 팔면 다시는 그곳에 불상을 팔 일이 없을 것이 분명하다. 하나 더, 이 사업은 확실한 시장-수요층이 있지만 그 규모가 확대되진 않는다. 불경기에 점집 사정이 좋아질 수는 있다고 쳐도 점집 자체가 늘진 않을 테니 만물상이나 불상 제작업 종사자 입장에선 꽤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만물상이나 불상 제작업 종사자에게는 시장을 확대할 능력도 없고 그렇다고 점집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불상이 나왔다고 카탈로그를 보여주며 영업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그래서 불상을 소모품으로 만들 기막힌 방법을 누군가가 고안해낸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불상을 소모품으로 만든단 말인가 싶겠지만 아주 간단하다. 약하게 만들면 된다. 불상에 쌓인 먼지를 닦으려 손을 짚었다가 조금의 무게라도 실리면 그때 툭 하고 부숴져버린다면, 록타이트 401 순간접착제로 일일이 조각모음을 해서 다시 쓸 사찰이나 점집은 아무데도 없다. 신성한 불상을 막다룬다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도 있거니와 이건 믿음의 문제와도 직결되는 아주 복잡하고 구조적인 심리적 불안요소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백이면 백 새로운 불상을 주문해야만 한다. 그래서 이 플라스틱 불상은 점점 약해질 것이다. 더 얇게, 더 아슬아슬하게 만들어질 것이다. 영원은 커녕 찰나의 자극에도 부숴져버리는 석가모니상을 만들어야 돈을 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것이 불교계에만 있겠나? 그렇지 않다. 성물이라 불리는 예수상이나 성모상 등도 플라스틱 재질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인근 성당에 가서 보면 집에서 청소하다 떨어뜨려 깨지거나 고양이가 앞발로 밀어 깨뜨렸을 성물들이 이따금씩 쌓인다. 도대체 뭘 걸었길래 손목이 날아간 성모상, 더이상 닭 울기 전에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게된 목 날아간 베드로상, 십자가에서 탈출한 예수상 따위는 보통 성당에서 마련한 성물 폐기함에 버리도록 유도하거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부숴서 버리라고들 한다. 깨진 불상을 고쳐 쓸 수 없는 이유와 똑같은 이유로 이런 것들이 일반쓰레기로 버려지면 좀 민망하기 때문이다. 아니 그 전에 도대체 불상이나 성물까지 플라스틱으로 만드는 것에서 이미 종교적 신비는 깨져버리지 않았나?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을 깎아 만든 피에타상이 견뎌낸 세월만큼 지나도 플라스틱은 썪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플라스틱으로 만든 피에타상이 문화유산이 될 리는 없을 테니까.
최근 한 미군 퇴역 장교 빅터 베스코보는 바다 가장 깊숙한 곳 마리아나 해구 탐사에 나서 종전의 심해 탐사 기록을 깼다. 수심 11km 정도까지 내려간 이 탐사 잠수정에서 빅터 베스코보는 아주 뜻밖의 물체를 발견했다. 다름아닌 플라스틱 조각이었다. 그 심해에서 석유가 우연히 정제돼 액상의 플라스틱이 됐다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희박한 가능성에 의해 경화제가 만들어져 플라스틱으로 굳어졌을 리가 없잖은가!! 이걸 누가 만들었겠나? 인간이다. 다름아닌 우리다. 우리가 정말 어디에든 플라스틱을 쓰니 지구 어디에서든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견된다. 이제 플라스틱은 인간의 생활에서 ‘낄끼빠빠’할 때가 됐다. 제발 그 망할 일회용 컵부터 쓰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