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이나 1990년대 초반 무렵 맞벌이를 하지 않고 전업 주부의 삶을 살고 있던 모친은 텔레비전의 오전 프로그램들을 챙겨 보면서 꽤 많은 정보를 긁어 모았다. 이를테면 한국방송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희끗한 머리와 네모난 금테 안경을 쓴 의사가 알려주는 오줌싸는 버릇을 퇴치하는 방법이라든가 검게 그을린 얼굴에 한껏 단정하게 빗은 머리를 한 남성이 알려주는 진돗개 감별법 같은 것들 말이다. 무엇보다 토마토를 설탕과 먹으면 몸에서 당분을 처리하느라 비타민 B의 흡수를 방해한다는 정보를 얻은 뒤로 모친은 두번 다시 토마토에 설탕을 뿌리지 않았기 때문에 유년 시절의 나는 그런 종류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하루빨리 폐지되거나 그런 특급 기밀을 누설한 전문가가 사실은 사기꾼이었다는 것이 밝혀져 그간의 주장들이 번복되기를 바랐다. 비타민 B를 섭취하는 방법은 토마토 말고도 많은데,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토마토와 설탕을 함께 먹을 수 없다는 것은 설탕 회사에 척을 지고 있는 누군가들에 의해 꾸며진 음모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토마토와 설탕에 관한 문제 정도에 그친다면, 언젠가 주방에서 도마와 칼을 사용할 수 있는 적절한 시기가 도래했을 때 싱크대의 문을 열고 설탕 봉지를 꺼내 토마토에 듬뿍 뿌려 먹으며 혁명을 일으키는 것으로 만회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이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2016년이었을 테다. 계절이 막 봄에서 여름으로 모습을 바꾸던 어느날 밤, 맥주 한 캔을 손에 쥐고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 채널을 바꿔대고 있었는데, 평소에 들어본 적 없는 그림 장르의 이름이 소개되는 장면을 우연히 보게 돼 리모컨의 채널 버튼을 연신 눌러대던 엄지손가락의 동작을 멈췄다. 회색 톤의 더블 브레스티드 수트 차림에 금속테의 안경을 쓰고 스타일에 과한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인상을 주고 싶었는지 어중간한 길이의 머리를 대충 빗어 넘긴 40대로 보이는 남자가 커다란 스크린 앞에서 열심히 떠들고 있었고, 스크린에는 조선 중기나 후기 즈음에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동양화가 띄워져 있었는데, 대뇌에서 내 엄지손가락의 움직임을 멈추라고 명령하게 만든 것은 그림이 아니라 텔레비전에 띄워진 자막이었다.
조선화라니, 내가 모르는 사이에 학계에서 동북아시아의 미술사에 대한 대대적인 정리 작업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그러다 조선시대에 그려진 그림이 당시의 중국 대륙이나 일본 열도에서 그려진 그림과는 달리 반도의 지리적 물리적 특성 탓에 독자적인 형태로 발달해 반드시 구분할 만한 가치가 있어서 이를 동양화라 묶는 것보다 따로 분리해 연구하는 것이 미학적으로 또 미술사적으로 가치가 있다는 지적 합의에 도달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저 회색 수트 차림의 남성이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논문을 발표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요즘은 워낙 다양한 설정의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지는 통에 <베스트 논문 코리아>나 <내가 가설왕>이라는 프로그램이 어느새 시청률 고공 행진을 기록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대학과 대학원을 합쳐 열두 학기에 걸쳐 미술을 공부하면서 한 번도 ‘조선화’라는 표현을 읽어보거나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후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달리 프로그램은 <어쩌다 어른>이라는 다소 엉뚱한 이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쩌다 어른이 된 사람들이 커다란 스크린 앞에서 격식 차린 옷을 갖춰 입고 사기를 치는 것이 프로그램의 설정인가보다 싶었다. 이런 추측이 확신으로 굳어졌던 것은 그가 자꾸 장승업의 그림이 아닌, 현재 버젓이 생존해 있는 화가의 그림을 가지고 장승업의 그림이라면서 미간에 힘을 잔뜩 주고는 사방에 침을 튀며 “이 천재적인 필체를 보라”며 진지하게 떠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방송이 나간 직후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에서 곧장 난리가 났다. 비난 여론은 회색 수트의 남자가 얼마나 무지했는지부터 시작해 원래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고백에 이르렀고, 느닷없이 조선화라는 새로운 미술사적 개념을 만들어 나왔던 남자는 페이스북을 통해 여섯 줄의 사과문을 올리더니 모든 방송에서 하차했다. 그는 미술사 뿐만 아니라 매해 2월에 전국에서 약 2만5천 명의 미술 전공자가 졸업장을 받고 구직 활동을 하거나 작업실에 틀어박혀 작업을 하거나 본격적으로 백수 생활을 시작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렇게 대놓고 사기를 치다 걸리는 경우는 일련의 사건이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으로 남아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재미있는 소재를, 본인에겐 흑역사를 만들면서 적어도 반성이라는 꽤 의미있는 일을 해볼 기회라도 만들지만 더러는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사기를 치는 통에 보는 이로 하여금 아슬아슬한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중 하나가 학력을 가지고 말장난을 쳐가면서 은근히 학력을 추가하는 경우다.
잠시 요즘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짚어보자. 한국에는 약 9만 명에 달하는 석박사학위 소지자가 있는데, 이게 얼마나 많은 수인지에 관해 좀처럼 감이 오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비교 대상을 하나 붙여 놓자면, 경찰의 수가 대략 10만 명을 조금 넘긴다고 한다. 광화문 근처에 포진한 경찰의 수만큼 석박사학위 소지자들 역시 광화문 일대를 거닐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당연하게도 학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학부 졸업자의 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는 이야기는 굳이 숫자를 가져다 놓지 않아도 될 듯하다. 식자들은 이런 현상을 가지고 학력 인플레이션이라는 그럴듯한 표현을 써가며 과도한 교육열과 대학의 기능에 대해 떠들기를 좋아하지만 대학들 스스로 취업률을 자랑하는 시대에서 이제 대학 졸업장은 1990년대의 워드프로세서 자격증 정도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테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를 가지고 게임을 만들며 노는 마이스터고의 고교생에게 대학은 굳이 갈 필요가 없는, 다시말해 그 졸업장이라는 것이 별 매력 없는 자격증이나 마찬가지인 시대이기도 하다. 이런 시대에 대학이 처한 상황이야말로 유래없는 위기상황일 것이기에, 그들이 취업률을 가지고 학위를 팔아먹는 것이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심지어 어떤 학교는 ‘취업사관학교’라는 과감한 표현을 써가면서, 스스로를 희화하는 방식으로 학위 판매업 광고를 하는 마당이니, 대학의 마케팅 방식에 일일이 진지한 비평을 내놓는 것도 고리타분한 태도가 되어버린 셈이다.
상황이 이러니 학위를 굳이 사지 않고 학위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꽤 많았다. 학위를 구입하려면 우선 대학에 등록금을 내고 대학에서 제안하는 여러 조건들을 만족시켜야 하는데, 굳이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학위를 받은 것처럼 말하고 다니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당연히 대학 혹은 대학에서 학위를 구입한 이들이 이런 얌채족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고, 이런 얌채족을 위해 사용하는 용어가 바로 ‘학력위조’다. 한때 이 시비에 휘말린 저명인사들이 줄지어 자취를 감추고 사회에서 매장당하는 일이 있었다. 이를테면 구닥다리 텔레비젼과 형식을 알 수 없는 디자인의 가구, 곰팡이가 피어난 싱크대가 갖춰진 허름하고 오래된 집에 살고 있는 대가족 시청자를 기막히게 선별해 집을 극적으로 리모델링 해주던 MBC의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에게 사람이 사는 공간을 고민하고 의미있는 공간으로서의 집을 구현하는 건축가라는 직업의 매력을 인식하게 만들면서 인기를 누렸던 한 건축가가 알고보니 학력위조범이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완전히 몰락했던 적이 있다. 물론 그가 이런저런 학력을 위조한 덕에 모 대학의 교수까지 되었으니 이건 사기에 해당하는 일이다. (그런데 애초에 그런 것을 걸러내지도 못하고 교수로 임용한 대학이 있다는 것도 참 애석하다.)
한때 헐리우드 첩보영화에서는 여권위조의 세계에서 전설로 통하는 실력자가 존재한다는 설정이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신분을 들켜서는 안 되는 비밀요원이 모종의 음모에 의해 쫓기는 신세로 전락했을 때 암흑가의 위조 전문가에게 찾아가 신분증을 만드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을 테다. 학력위조의 세계에서도 가장 치밀하고 대범했던 탓에 전설로 남은 인물이 있다. 2000년대 초반, 예일대 박사과정을 인터넷으로 수료했다는 전대미문의 위조술로 미술계는 물론 한국사회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든 한 큐레이터이자 대학교수였던 신정아를 기억하는가? 학력위조로 굵직한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미술관 큐레이터 경력을 만들기 시작해 광주비엔날레라는 엄청난 규모의 미술 행사를 총괄하는 감독에 발탁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던 전설적 인물이다. 그가 구속되는 과정을 지켜본 국방부가 혹시 모르니 군 장교들도 한 번 검증하자고 나섰다가 가짜 해외 학위로 임관된 학사장교를 무더기로 적발하는 쾌거를 이룩하기도 했다. 학력위조는 한국 사회의 2000년대 초반을 장식한 빛나는 키워드였다.
21세기에 진입한 한국 사회는 이런 우스꽝스러운 홍역을 치르며 2010년대 구간을 지나고 있고, 이 일련의 과정을 유심히 눈여겨본 비상한 머리의 소유자가 하나 있었다. 자신의 공부 방법에 특별한 기술이 있다는 책을 써서 유명세를 얻고 최근엔 여러 방송에 나와 열심히 자신을 팔고 있는 한 남자다. 그는 인터넷으로 예일대 학위를 받았다는 식으로든 남의 졸업장을 스캔해 포토샵으로 편집하는 식으로든 절대로, 일체의 허위 사실을 유포하지 않는다. 졸업하지 않은 학교에 대해 졸업했다고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대신 ‘수업을 들었다’는 아주 경계가 모호한 어휘를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학력을 포장한다. 예를들면 그가 졸업한 학교는 뉴욕대학교 경영학과 하나지만 “음악 하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여서 옆 학교인 줄리어드 음대의 수업을 들었다”고 말함으로써 마치 줄리어드 음대를 다닌 것처럼 보이게끔 만드는 것이다. 이 기술이 대단한 것은 누구에게도 학교를 다녔다거나 졸업했다고 말하면서 스스로 학력위조라는 구시대의 범죄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수업을 들었다’는 사실만을 이야기하면서 사람들이 알아서 오해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이다. 누가 집요하게 물어보면 “나는 거기 다녔다거나 졸업했다고 말한 적 없다”고 말하면 그만인 셈이다. 그는 줄리어드 음대라는 대학의 이름을 언급했을 뿐이지만 사람들은 뉴욕대학교와 줄리어드 음대라는 두 개의 대학 이름을 기억하다가 결과적으로 두 학교에서 공부한 사람이라고 기억해버리면서 그를 대단한 사람으로 만드는 실수를 범한다. 본인은 학력위조를 하지 않지만 사람들에 의해 학력이 추가되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을 고안한 것이다.
쉽게 말해 어학당과 다름 없는 과정을 ‘소르본대학 적응과정을 수료했다’고 표현하면 사람들은 소르본대학이라는 대학 이름을 기억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국가의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어학 능력을 검증 받아야 하지만 그는 이를 굳이 설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별 상관 없는 사실을 덧붙여 좀더 구체적이고 모양새가 세련된 것처럼 보이는 문장으로 다듬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권 국가의 학생이 프랑스 대학에서 공부하려면’이라는 조건이 ‘미국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이 프랑스에서 인문학을 배우려면’이라는 조건으로 화려하게 둔갑한다.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에 소르본대학을 추가하는데 성공할 수 있다. 이렇게 줄리어드 음대와 소르본대학을 간단하게 추가한 그는 마지막에 “에꼴드루브르에 입학했다”고 말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에꼴드루브르라는 학교를 더불어 기억하게 만드는 것까지 성공한다. 그의 이런 일련의 작업에는 전통적 기법의 학력위조가 들어가지 않으며, 스스로도 “졸업한 대학은 뉴욕대 하나 뿐이다”라거나 “짧은 가방끈이 여러개 있다”는 식으로 전제를 깔면서 모종의 혐의로부터 완전히 벗어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제도권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경력으로 이용하려면, 제도권 교육기관이 요구하는 전체 과정을 따라 밟고, ‘졸업’이라는 형태로 공식화 되어있는 자격까지 확보한 후에 해당 경력을 활용하는 것이 옳다. 어느 학교에 입학했는데 어떤 이유로 졸업하지 않았다면, 해당 학교를 본인의 학력에 은근슬쩍 끼워 넣으면 안 된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건 해당 학교에서 요구하는 모든 교육 과정을 성실히 따라 밟아 졸업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제도권 교육 전체를 희롱하는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는 비상한 기술을 동원해 7개국어에 능통한 언어천재라는 부수적인 타이틀도 거머쥐었는데, 역시 학위를 추가하는 방법과 동일한 방법으로 획득한 것이다. 어떤 자격증이나 시험 점수, 저술한 책이나 논문을 언급하는 대신에 어디서 몇 년 살았고, 어떤 언어로 대화가 가능하다는 식의 설명만을 한다. 그러면서 간단하게 해당 언어로 자기소개를 하면 사람들이 ‘몇 개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이라고 맞장구를 쳐준다. 포인트는 이 맞장구에 “부끄럽다”거나 “에이, 그런 건 아니고요”라는 식의 반응을 일체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일상적이고 단순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외국어 실력을 가지고 ‘언어천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얼마전 교육방송의 방송국 로비에 잠깐 들어간 적이 있었다. 새로 지어진 방송국 로비는 상당히 쾌적했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줄줄이 들어와 프로그램 방청을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방송국 정문을 정면에서 압도하는 초대형 스크린 하나가 여러가지 프로그램의 예고편을 쉴새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 둘이 연이어 등장했다. 하나는 ‘소통하는 인문학’이라는 자막과 함께 여전히 회색 수트를 입고 있었고 하나는 ‘언어천재’라는 자막과 함께 여전히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런 이들은 마치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거의 모든 사회의 일에 끼어든다. 텔레비전에서 이런 사람들이 나와서 열심히 인문학에 대해 혹은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떠들면, 냉장고 앞으로 가라. 야채 칸에 있는 토마토를 꺼내 씻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 유리 그릇에 옮긴 다음 싱크대에서 설탕 봉지를 꺼내 듬뿍 뿌리자.
*이 글은 미디엄에도 게재했습니다. https://medium.com/eltitnu/한국에서-개와-공원을-산책하는-방법-3d634bf0387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