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황 Aug 24. 2018

증명사진 잘 찍는 사진관을 찾아내는 방법

새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친절하게도 도로교통공단에서 우편을 보내 나의 운전면허를 갱신해야 하는 때라는 것을 알려줬다. 처음엔 갱신 기한을 불과 3주 앞두고 우편을 보냈다는 사실에 화가 났지만 모르고 지나쳤다가 과태료를 추가로 지불하고 면허증을 다시 받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니 곧장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편물은 운전면허증의 갱신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주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1종 면허의 갱신과 2종 면허의 갱신 과정에 차이가 있다는 건데, 서류와 사진을 제출하기만 하면 되는 2종과는 달리 1종 면허는 반드시 건강검진 내역을 증명하거나 면허시험장에서 시력을 측정하는 과정이 포함된다. 나는 1종 면허를 가지고 있는데, 열아홉 무렵 면허를 취득한 이래로 수동 기어 자동차를 운전해본 것은 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하며 5톤 트럭을 주차했던 것과 창수였는지 기태였는지 아무튼 흔한 이름을 가진 아버지 친구의 트럭을 빌려 직접 작업실의 짐을 싣고 다른 작업실로 이사했던 것이 전부였다. 안전이나 양보 따위의 낱말이 끌고 다니는 긍정적인 느낌의 태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서울의 도로 위에서 운전하는 것을 끔찍하게 여기기 때문에 집에 차가 있던 때에도 차를 가지고 다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환경적 문제를 거론하하면서 고작 63kg의 몸뚱이를 운반하려고 가솔린이나 디젤을 연소하는 이율배반을 막기 위해 자동차를 살 생각을 안 하고 있다. 이렇게 운전과는 거리가 아주 먼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 면허의 갱신이라는 것은 1년에 한 번 하는 민방위 교육, 여행에서 돌아와 짐을 정리하는 일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굉장히 성가신 일의 반열에 올라있는 것이다. 게다가 1종 면허의 갱신을 위해서는 앞서 언급했다시피 최근 2년 내에 받은 건강검진 내역을 제출하거나 시력검사를 거쳐야 한다. 2종 면허의 갱신에는 이런걸 요구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이쪽 일을 하는 종사자들은 2종 면허를 가진 사람들이 특출나게 건강한 이들만 있다고 믿는 모양이지만, 내가 아는 2종 면허 소지자들은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줄담배를 피워대는 통에 30대의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각종 질환을 달고 사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마지막 건강검진을 받은지 2년을 넘겨버린 나는 이참에 병원에서 검진을 받거나 면허시험장에서 시력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그러면 추가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2종 면허를 따거나 아예 면허를 따지 말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한석규는 작은 사진관의 사진사를 연기했다.


이 일을 더 귀찮고 성가시게 만드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정부를 비롯한 각종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반년 주기로 노화한다는 미신을 믿기 때문에 다른 증명서나 신분증과 마찬가지로 면허를 갱신하기 위해서도 최근 6개월 내에 촬영된 증명사진이 필요하다. 불행하게도 좀처럼 얼굴의 노화가 더딘 나로서는 6년 전에 촬영한 증명사진과 6시간 전에 촬영한 증명사진이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이전에 촬영해둔 증명사진을 제출하겠다는 고약한 마음을 먹고 책상 서랍을 뒤적거렸고, 몇년 전에 어디 비자를 받기 위해 찍어둔 사진을 발견했지만 누가 봐도 이상하게 촬영된 탓에 이 사진을 면허증에 사용할 경우 내 면허증을 통해 신분을 확인해야 하는 사람들과 크고작은 실랑이를 벌일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에는 이참에 다시 촬영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기필코 괜찮은 사진관을 찾아 마음에 쏙 드는 증명사진을 얻어 ‘6개월 이내에 촬영된 사진을 제출할 것'이라고 엄숙하게 명령하는 공무원들의 말을 적어도 6년 동안은 무시해야겠다고 굳게 다짐하고는 구글에서 내가 있는 동네의 사진관을 검색해 인물 사진을 정말 잘 찍는다는 곳을 알아내는데 성공했다. 곧장 그곳으로 향해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을 가지고 면허시험장에 들러 시력검사를 하고 이 심각하게 성가신 일을 드디어 끝냈으므로 무척이나 속이 시원했다. 그 사진사가 사진을 엄청나게 못찍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문제의 사진을 촬영한 사진관 직원은 20분 정도 후에 사진을 찾아가라고 했기 때문에 나는 근처의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셨고, 그들이 20분 동안 무슨 짓을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20년 전 같았으면 필름을 현상하고 사진으로 인화하는 시간이 필요했겠지만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해 곧장 프린터로 인쇄하는 요즘에는 포토샵으로 사진을 보정하는 것 외에는 20분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사진관 직원이 컴퓨터 앞에 앉아 포토샵으로 내 얼굴의 잡티를 없애거나 좌우 대칭을 맞추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사진을 손에 넣었을 때, 포토샵으로 아예 성형수술을 해놓은 것을 확인하고 그 직원을 경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쌍커풀 없이 길고 날카로운 선을 가진 나의 눈은 마치 6개월 전 즈음 쌍커풀 수술을 한 것처럼 크게 키워져 있었고 건강하게 보이는 까만 피부는 급하게 분을 바른 것처럼 뽀얗게 변해 있었다. 조금의 잡티도 허용되어선 안 된다는 피부미용의 도마 위에 오른 것마냥 얼굴엔 점 하나 기미 하나 보이지 않았고, 34년 간 수많은 표정을 지으며 생긴 작은 주름들은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빌어먹을 사진 속에서 어정쩡한 미소를 머금고 정면을 응시하는 것은 내가 아니었다. 문제는 이런 사진관과 사진사가 한둘이 아니라는 거다.


사진관에서 필름카메라가 사라지면서 필름 현상과 인화를 담당하던 기계가 있던 자리에는 애플의 아이맥 같은 컴퓨터가 놓였다. 피사체가 되는 인물의 두상이나 이마의 넓이, 광대뼈가 만들어내는 곡선과 콧대가 반사하는 빛의 양, 아랫 입술 밑으로 드리워진 그림자의 농담이나 턱선의 곡률이 보이는 경쾌함, 습관과 나이가 함께 만들어낸 주름을 살피고 그날의 날씨나 입은 옷을 고려해 배경을 성실히 고른 후 조명기기의 위치와 반사판의 각도 그리고 빛의 온도를 면밀히 가늠해 얼굴에 맞춰 보는 사진사를 이제는 정말로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오늘날 한국의 사진관들은 증명사진을 찍으러 온 고객을 의자에 앉혀놓고는 고개를 살짝 왼쪽으로 돌려보라고 지시하면서, 아, 너무 돌렸다고 말하면서 셔터를 누른다. 그렇게 몇 장을 찍어댄 후 가장 잘 나온 사진을 컴퓨터에 옮겨 포토샵으로 갸우뚱 기운 고개를 똑바로 세우고 머리카락을 만지고 옷의 매무새를 수정하고 본격적으로 시술 혹은 수술을 시작한다. 다시말해 당신이 누구든 보증금과 월세와 캐논 5D 기종 카메라와 적당한 렌즈 그리고 디지스 사의 몇십만 원짜리 조명과 하얀색 반사판 정도를 구비할 수 있는 돈만 은행에서 대출 받을 수 있고 포토샵만 할 줄 안다면 사진관을 개업해도 된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포토샵 실력이지 피사체를 성실하게 관찰하고 그에 따라 조명을 만지거나 빛의 온도를 만들거나 하는 사진 촬영 기술이 아니라는 거다. 이런 사진관은 굳이 비싼 장비를 구비할 필요가 전혀, 눈꼽만큼도 없다. 자신이 사진을 촬영하는데 쏟는 노력이 포토샵으로 사진을 보정하는데 쏟는 노력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대충 5D 마크2와 보통 사람들은 모르는 디지스나 오리온 사의 조명기기를 구비하는 것일 뿐, 이들은 사실 아이폰7 정도의 카메라 성능을 가진 스마트폰만 있어도 2만원을 받고 프린터로 뽑아대는 그 증명사진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심지어는 귀찮아서 그렇지 집에서 그정도 증명사진은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사람마다 좌우의 대칭이 다를 두상을 꼼꼼하게 파악하고 머리카락이 자라는 속도를 물어보고 이목구비의 조화가 만드는 분위기, 옆에서 본 이마와 콧날과 입술과 턱이 만드는 외곽선을 따져 꼼꼼하게 머리를 자르는 이발사나 미용사를 찾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다. 면도칼을 쓰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고, 클리퍼-흔히 바리깡이라 불리우는-의 간편한 기능에 대부분을 의지하는 곳이 천지에 널렸다. 미용실은 잘 모르겠지만 다른 무엇보다 당신의 얼굴에 더 관심이 있는 사진사를 만나는 방법은, 그러므로, 포토샵이 깔린 컴퓨터가 한 대도 없는 사진관을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사진관은 공교롭게도 인문학 열풍이 이 세계를 휩쓸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인문학이라는 것이 K-pop의 대단한 열풍에 견줄 수 있을 정도로, 유행 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경제전문지의 지면에 오르내리고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종횡무진 쏘다니지만 대상의 특징보다는 카드 단말기에서 뱉어내는 영수증이 필요한지 아닌지를 더 궁금해하는 사진사와 미용사를 만나 영 마음에 안 드는 상태로 2만원을 헌납하듯 지불하고 나오면 정작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시대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건 그들이 성실하지 않기 때문이거나 게을러서가 아니다. 딱히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오면서 생겨난 어떤 변화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시대의 세계가 우리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독촉하기 때문이다. 해마다 더 많은 임대료를 내라고 독촉하고, 그래서 더 많이 일하라고 재촉하고, 더 빨리 일할 것을 지시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미디엄에도 게재했습니다. https://medium.com/eltitnu/증명사진-잘-찍는-사진관을-찾아내는-방법-fec1466a4ec4

매거진의 이전글 텔레비전에 나온 사기꾼을 알아보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