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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팡팡 Aug 28. 2023

여행(숫자)


언제 서른이 되었을까?

계절은 반복됐지만, 나이는 늘 새로웠다.

나이가 새로워질때마다 조금씩 달라지고 싶었다.

앞자리 바뀌어 서른이 되었지만 남들과 특별히 다를 것이 없었다.


막연한 생각, 실천없는 생각도 오랫동안 지속하면 결국 견고히게 변화되어 가는 법. 

그 끝 지점에는 길이 있었다. 


서른에 난 아프리카 행을 택했다.


목적지가 특별했는지, 고국을 떠난 것이 특별했는지 여전히 물음표였지만 삶의 공간이 바뀐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남부 아프리카에 작은 나라 호호지역 산골학교에 외국인 교사로 파견근무를 시작한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었다.

나의 선택은 내가 그토록 원하던 남들과 다른 삶을 사는 방향성을 곤곤히 하는데 매우 큰 힘이 되었다. 


겁도 없던 그 시절

선택을 세상 밖으로 꺼내어 알리기 전까지 적어도 난 무척 큰 꿈에 사로잡혀 있었다.

자유와 질서가 혼재되어 있었지만 충분히 그것은 내가 즐길 수 있는 무게라고 생각했다.


기억은 시간이 만들어 놓은 길과는 다르게 쌓여져 갔다.

아프리카라는 낯선 환경이 주는 도전은 생존의 문제였지 인생의 문제는 아니였기 때문이다. 

그 문제가 끝나고 나니 다시 한국의 삶으로 돌아간 착각마저 들었다.

익숙함이 주는 지루함이 아니라 적응 이후에 가져야 할 태도를 취하지 못했다. 

 

선명한 기억은 분명한 전환점과 만나곤 했는데 그때마다 난 여행을 선택했다.
스스로 만들고 쓴 나의 첫 미국여행이 그랬다. 여행 후 난 분명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새해가 되어 나이를 먹은 그 마음과는 분명 달랐다.

한국을 떠나 살았지만 변화를 탐닉했고 틈이 생긴 일상을 여행으로 채우게 되었다. 

2004년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 태어난 해를 기준으로 가까운 일본에 도착하기 까지 18년이 걸렸다. 첫 여행을 시작하기까지 꽤 오랜시간이 걸렸다. 그 힘은 지금까지도 살아갈 현실을 견디게 해 주었다. 모든 것이 의미가 있고 걷는 순간이 모두 기록이 되었다. 그 땅을 살아가는 일본인에게는 지겹도록 매일매일 마주한 일상인데 나에게는 새로운 세상처럼 느껴졌다. 모든 순간이 찬란하게 빛이 났다. 단체 여행이다보니 모든 스케쥴이 정해져 있었다. 나에게 배달되었던 기내식과 작은 식당에서 마주한 점원과의 눈인사, 기념품가게에서 읽을 수 있었던 히라가나의 가격까지 모든 것이 그룹 속에 속해 있었지만, 난 혼자만의 시간과 추억을 만들어 갔다. 짜여진 스케쥴대로 움직이는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때부터 난 누군가가 만들어준 일정이 몸에 맞지 않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직감하고 있었다.


 미국은 본격적으로 혼자 무언가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차 오를때 만난 나라이다. 광활하고 잘나가고 무엇보다 가장 오래된 친구가 어학을 이유로 도전하고 있는 도시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2009년 첫 무대는 미국이었다. 그러나 광활하고 넓은 대륙에 지극히 작은 나는 점 하나를 남기기 어렵다는 현실을 마주했다. 시카고 공항검색대에서 비행시간에 촉박해 발만 동동거리는 것 외엔 내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특별히 없었다는 사실에 나는 그대로 주저 앉았다. 단호한 공항검색대 직원의 한마디에 한국말도 멈춰 버렸다. 스탠바이 대기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는데, 이상하게 나는 그때 세상이 만만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비행기를 놓친것이 큰 일도 아닌데, 그땐 모든 것이 엉망이 된다는 생각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보가 되었다.


2010년 다른 여행을 꿈꾸었다. 필리핀에서의 모든 여정은 봉사가 무엇인지 보여준 여행이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경험이 그 나라의 이미지를 결정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은 필리핀에서 하게 되었다. 이후에도 나는 봉사활동을 위해 혼자서 마닐라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가족들은 날 이상한 눈으로 처다보기도 하였다. 필리핀이 범죄와 많은 관련성 있는 뉴스때문이라고 생각했고, 난 다이빙과 정말 좋은 시골마을의 미소로만 필리핀을 기억하고 있다. 디즈니채널에서 제작한 카지노도 배경이 필리핀이였고, 다양한 범죄소재 영화가 필리핀인것을 보면 우리 가족의 걱정과 염려가 크게 잘못되지 않았다는것도 인정하게 되었다. 준비부터 실행까지 꽤 오랜시간을 준비한터라 여행 후에도 여운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지속성이 무엇인지 깨달은 여행이었다. 

2011년 해외로 첫 가족여행을 떠났다. 홍콩이었다. 3박4일의 다소 타이트한 일정이었다. 우리는 한국의 겨울을 살짝 벗어나 선선한 가을바람에 모두가 들떠 있었다. 홍콩의 냄새는 우리 가족의 입맛마져 바꿀 수는 없었다.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고 나서 나는 모든 음식을 신중하게 바라보았다. 음식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입맛이 촌스러웠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2012년 첫 배낭여행을 떠났다. 동남아였다. 큰 시험에 최종문턱에서 떨어진 나는 돌아보지 않고 직진했다. 짐짝만한 배낭이 그 동안 내가 원하던 자유의 무게였다.

2013년 해외 학술대회에 참석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였다. 그 날 만난 폭포는 그동안 내가 열심히 살았구나를 인정해주는 것만 같았다.

2014년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은 기꺼이 가족이 되어준다. 나에게 같은 곳을 방문하는 나에게 사람들은 호기심 대신 일상에서의 질문을 던져 주었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기전 난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해 준 필리핀의 작은 마을에 다시 방문했다. 나를 여전히 기억하고 기도 해 준 사람들 덕분에

2015년 새로운 대륙 새로운 나라로 떠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혼자서 30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2016년 온 세계가 무대가 되었다. 남미에서 한국에서 아프리카에서 유럽에서 서로 다른 대륙에서 출발한 친구들을 만났다. 어디가 되었든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여행을 지속 가능하도록 했다.

2017년 정든 곳을 떠나는 슬픔이 새로운 곳으로 연결 될 때 익숙함과 새로움에서의 갈등을 경험했다. 일종의 경험이 주는 피로감으로 알을 깨고 나오지 못했다. 삶은 연속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았던 나를 발견했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왔다.


2018년 숨겨진 아프리카 대륙의 곳곳을 발견했다. 새로움은 내안에 숨겨진 질서를 흐트리고 재조직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무릎을 치며 겸손한 여행을 완성해갔다. 

2019년 한국에 복귀 해 일본 삿포로, 홍콩, 마카오, 미국 서부, 중국 심천, 대만 타이중을 다녀 왔다. 여행은 계속 되었다. 서두르지 않는 방법을 깨달으며

2020년 여행이 멈췄다. 관문이 닫히기 직전에 한국땅을 밟은 나로써는 이토록 오랫동안 문이 열리지 않을것이라 쉬이 예측할 수는 없었다. 시간은 2년이나 흘렀다. 

계절이 바뀌는 가을에는 어김없이 알러지도 함께 온다. 봄도 예외는 아니다.
남들은 쉽게 느끼지 못하는 계절의 변화이지만, 내 코는 가장 먼저 가을의 신호를 받아들인다.
격렬한 환영 속에 숨이 넘어 갈 듯한 재채기도 동반되건만, 여간해서 환영회는 쉬이 끝나지 않는다.  

운동, 약, 식이요법에 의존해 가을을 넘기지만, 겨울이 지나 봄은 또 다시 나의 예민한 레이다를 기다린다.
오랫동안 달고사니, 원망보다는 공존을 선택했다.
치료가 불가능 하다면 증상이 완화되는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가을을 만끽하기도 전에 찾아온 예민함은 극에 달해 가을을 가을답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이를 차곡차곡 한살 한살 먹어가도 알러지는 반복됐다.


우리의 뇌는 새로운 배움과 익숙하지 않은 경험을 얻을수록 발달하고 변화된다. 새롭게 들어온 자극이 뇌를 먹이는 음식이라고 보아도 과하지 않을 정도다. 낯선 경험은 뇌를 자극하고

예비능력을 증가시킨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때면, 뇌는 새로 얻은 정보 혹은 기술에 대한 기억을 형성하고 영구적으로 저장하기 위해 다양한 부분을 활성화 시킨다.


2022년 여행은 다시 시작 되었다. 

언제 그랬냐듯이 공항엔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예년과 같은 수준은 아니지만 통계청 기준 2023년이 지난 지금 인천공항 이용객 수는 80% 수준에 도달했다.


조심스러웠지만 서로가 연결되고 새로움을 탐닉하는 낯선 여행은 금방 우리 곁에 자리를 잡았다. 


여행은 새로운 배움이다. 우리의 활동 능력과 적응 능력은 물론 생존과도 직결된 활동이기 때문에 새로운 지식은 보상회로와 연결되고 호르몬이 분비된다.

생각이 필요없는 활동은 없다. 여행이 그렇다고 믿었다면 그 믿음은 잊어도 좋다.


습관이 쌓여져 만들어진 존재일 뿐이라는 말이 실감날때가 있다.

우리가 반복하는 행위가 우리 자신을 규정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생각한다.


여행은 나의 습관이 됐고, 여행을 지속하기 위한 마음이 여전한 것을 보면서

여전히 나를 규정하는 여행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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