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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팡팡 Mar 23. 2022

여행 (프롤로그)

프롤로그


연일 일일 확진자수는 세계 최고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TO)에 따르면, 한국의 신규 확진자는 210만 171명으로 발생 국가 중에 가장 많았다. 2022년 3월 17일 0시 기준 신규확진자 40만 명을 돌파한 지 하루 만에 코로나 신규 확진자는 62만 1328명이 집계됐다. 신규확진자 수가 폭증하면서 사망자 수도 증가해 코로나 19 사태 처음으로 400명 이상을 기록했다.


뉴스를 보면 세상은 엉망진창이다. 하늘은 보면 부끄러움이 넘쳐흐른다. 그러나 정작 우린 손에 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답답함이 쌓인다. 하늘 아래는 참 분주하다. 해야 할 일은 산재해 있고 해도 줄지 않는 과업은 현실을 더 막막하게 만든다. 혼돈의 시대, 멈출 수 없는 일상에서 우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누구에게나 이유가 있다. 



나도 이유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유에 가까워지기 위해 때론 무모하게 때론 생각 없이 때론 치밀하게 또 오랫동안 달릴 용기가 필요하다. 나에게 여행은 뒤늦게 찾아온 바람이 아닌 있는 그대로가 좋은 습관이었다. 떠나야 할 이유, 세상에 나아가야 할 이유가 나에게 쌓였고 이유의 총 집합체는 여행이 되었다. 

혼자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가장 외로운 일일수 있다. 

누구라도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현실은 여행을 떠난 사람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직 떠나지 않은 자에게 큰 문제이지만 말이다.

정신과 의사 문요한작가는 여행하는 인간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네팔에서 만난 포터 아속이 어쩔 수 없이 산행에서 하차해야 하는 상황이 찾아왔고, 새로운 포터를 기다리는 하루동안 혼자서 만끽한 히말라야의 장관도, 햇살이 좋은 자리에 앉아 읽었던 책도 시들해 지는 기분을 느꼈다고 말이다. 잠깐의 시간동안 그는 여행의 무료함을 느꼈지만 곧 그것이 허전함에 가까운 감정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회상했다.

나는 혼자서 하는 여행만 추천하는 것이다. 그러나 혼자서 하는 여행을 추천한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야 하는 생존의 순간과  무수히 많은 선택지 앞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올 때에도 책임은 켜켜이 쌓여가는데, 아무것도 기댈 것이 없다는 시작점이 잠자코 있던 생존의 본능과 맞닿아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매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가 모여 결국 선택에 따른 책임도 너끈히 담아내는 프로결정러가 되곤한다.



담은 경계이자 영역의 표시다. 

안정을 주는가 하면 상대가 가진 영역에 대한 인정이기도 하다. 담 너머 세계와 담 안의 세계를 연결하는 것은 여행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다. 담을 넘어선 또 다른 세상에 발을 딛는 행위 자체가 세상에 던져 주는 메시지가 된다.

양면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옳고 그름으로 대립의 날이 선 모습이 아닌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조화를 지향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담을 넘고 발을 내딛는 여행으로부터 가능하다.

학창 시절 영어는 필수교과였다. 그러나 영어를 시험이 아닌 소통의 도구로 인식하자 영어는 입에 잘 감기기 시작했다. 나의 영어는 길바닥에서 급상승 곡선을 탔다. 소위 눈탱이?를 맞지 않기 위해 촉각을 곧두 세우며 현지인과 모든 과정을 협상하면서 실력이 늘었다. 잘 외운 문장을 네이티브 스피커처럼 보여주기 위해 혀를 양껏 굴리며 구사했고 식은땀을 흘렸지만 표정만큼은 세상 당당했다. 

돈은 없고, 시간이 많았던 20대 중반, 장기간 여행을 통해 영어를 끝까지 모른척할 수 없었고, 영어로 딜을 해야 하는 순간순간은 영어 소통에 강력한 동기가 되어 주었다. 곧잘 주변 사람 흉내를 잘 내던 버릇이 영어의 실력을 키우는 데 큰 몫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길거리에서 누구보다 당당하게 소통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여행을 기간으로 구분하긴 쉽지 않지만 일주일 이내의 짧은 여행, 한 달 살기, 중단기, 장기 정도로 구분해서 생각해보면 시간이 주는 힘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어도 이 기간을 따라 성장했다. 물론 태도가 가장 중요하지만 생존의 영역에서 영어실력은 보내는 시간에 비례하여 성장했다. 주로 장기 여행을 좋아했던 나의 영어는 시간순서에 따라 발전했고 그것은 생존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요즘 Z세대는 여행이 친숙한 세대다. 우선 첫 해외여행 경험의 시기가 빠르고 여행을 떠나는 숫자를 놓고 보면 그 비율이 상당하다. 그러나 아직 혼자서 한 달 이상의 시간을 보내고 오는 즉 자신을 여행지에 던져 놓는 사람의 비율만 놓고 보면 절대적으로 그 수는 적다.

집 밖을 벗어나 살아가기 시작한 것이 내가 스무 살이 되던 2005년이다. 말 그대로 시작에 불과했다. 선택은 아니었지만 은근한 스릴이었다. 절대적인 어른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그들의 보이지 않는 자유가 내겐 크게 다가왔다. 어디론가 뛰쳐나가야 살 것 같은 그때에도 난 가만히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던 그때에도 난 그저 주어진 일을 잘하는 한 사람이었다. 결정적으로는 어른이 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실망을 드릴 수 없다는 기제가 내 안에서 작동했기 때문이었다.

 
막 움튼 욕망은 있었으나 스스로에게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싹이 트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난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런 내가 예측 불가능하고 매일매일이 다른 여행을 알게 되었고 푹 빠져 버렸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여행은 아니었다. 수많은 준비를 무색케할 만큼 현장에서의 변수는 변수 그 자체였다. 그런 변수를 즐기고 여행이 가진 매력을 사랑하게 됐다. 집 밖을 벗어나는 것은 고생이다. 그러나 그 고생을 모른척 지난다고해서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 모든 과정은 여행을 떠날 때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잘 다녀왔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여행을 무엇일까?
프로세스와 시작 조건을 면밀히 살펴봐도 성공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기가 힘든 것이 시작 단계이다. 그러나 현실의 무게가 버거워 누군가에 등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만들어 내야 하는 움직임이 아니라 먼저 내 안에 숨겨진 욕망을 찾는 첫걸음이라면 난 그 여행이 성공이라고 말하고 싶다.

필리핀의 카비테 탄자. 이곳은 매우 작은 곳이자 특별할 것이 없는 지역이다.
보통의 장소이다. 아무런 특이점도 찾을  수 없는 이곳이 내겐 특별한 장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주 그곳을 방문하게 만들었던 사람들과의 시간 때문일 것이다. 봉사를 통해 처음 이곳을 방문했지만 난 그곳을 또 가고 또 갔다. 자주 얼굴을 들여다보고 안부를 묻고 다시 일상을 살아가는 그들과 나에게는 자연스레 우리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누구랄 것도 없는 우리는 그렇게 친구가 된 것이다.

낯선 사람이 아닌 친숙한 이웃으로 서로에게 깃들 수 있는 새로운 장소를 발견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로에게 작은 노력을 계속할 수 있는 마음과 태도를 심어준 곳이 대부분 그렇다. 덕분에 현지의 언어를 사랑하게 됐고 음식의 맛을 기억하게 되었다. 두 손 가득히 선물을 챙겼고 그들과 기쁨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25살 처음 만난 그날부터 나는 지금까지 줄곧 성장했다. 그들이 나의 성장의 절대적인 가르침을 주었다기 보다 현지의 친구들도 나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내게 왔다. 언어를 익히고 문화를 익히는 것으로 멈추지 않았고 우린 서로 만남과 소통을 이어 갔다.

누구에게나 시작은 어렵다. 도무지 그려지지 않는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막막함이 앞을 가린다. 그런 순간에도 시야가 시원해지는 지점은 찾아오는데, 이를 통해 한순간에 고민이 해결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고민이 고민으로 끝나지 않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통해 실행으로 옮겨지고 실행력이 다시 용기가 되는 피드백은 경험 해 보면 안다. 그러나 반드시 시작점이 필요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타인의 시선에 마음 따위가 흔들리지 않고 


그대로 걸어가길 
그렇게 빛나가길 
무엇이 중요한지 
찾아가는 시기로 
이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바란다.

여행을 떠나지 않는 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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