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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팡팡 Jun 14. 2022

여행 (디테일)

디테일

여행의 공백이 생겼다.


혹시나 하는 마음마저 내려 놓고 보니 그 동안 돌보지 못했던 구석을 보게 된다.

내가 누렸던 땅이 다시 제 호흡을 찾을 수 있도록

10년간 멈출 수 없었던 나의 여행도 다시 속도를 찾아가는 중이다.

하늘길은 닫혔지만 하늘은 더 자유했다.

무한한 결심보다 외부의 강압적인 환경설정이 훨씬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 

그 동안의 공백은 우리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연결의 키워드를 담고 진행형의 시제를 쓰는 여행을 온라인이 대신하기에 어딘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살아 있던 날것의 감정과 있는 그대로의 자연, 살아 움직이고 역동하는 자연과 나의 파트너쉽을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 나는 질문에 섣불리 답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본능을 충족시키는 요소들을 하나씩 제거해야 한다. 


우린 여행의 묘한 디테일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디테일은 한국어로 받아들이기에 조금 복잡하다.

사전에서 그 뜻을 찾아보면, 세밀함이라는 단어 정도로 해석 된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디테일은 세밀함이 갖는 세밀함보다 더 디테일하다. 아니 다양하다.

일상에서 디테일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라면
사전에서 얻은 뜻이 부족하게 느껴질 것이다.
디테일이 세밀함이라는 뜻과 정확하게 매칭되지 않기 때문이다.

난 거대한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이는 일에서 디테일의 중요성을 늘 깨닫는다.
말한마디도 더해지는 조사, 억양, 끝음처리에 따라 의미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바이러스가 할퀴고 간 여행은 그 양이 반토막을 넘어 무서운 속도로 0에 수렴하고 있다.
여행을 탐닉하고 파헤쳤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볼땐,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지금의 현실이다.

나는 원점에서 여행을 다시 보기로 했다.


우리가 원하던 방향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 마주해야 할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요즘 나는
왜 떠났는지  
왜 나는 여행을 선택했는지
무엇이 나를 여행하도록 하는지 

그 무서운 지속성을 탐구하고 있다. 

정확히는 숨겨진 디테일을 발견하는중이다.

4년의 시간동안 남부 아프리카 작은 왕국 에스와티니에서 맞은 겨울은 짧았지만 강렬했다. 추운 날씨 덕에 자연스레 사우나를 습관처럼 상상했다.

그러나 현실은 전기장판으로 따뜻한 침실을 만들어 주는것 외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당장 이 추위를 넘겨보고자 이러저리 머리를 굴리는 짧은 생각만 가득했다.

그러던 중 사우나를 발견했다. 이방인인 나보다 추위를 더 크게 느끼는 현지 사람들이 많았다. 그것도 습식과 건식 두 종류나 있었다.  


어렸을 적 아버지를 따라 다녔던 사우나는 어른들의 놀이터였는데 사우나는 나에게도 제법 익숙한 공간이 되었다. 낯선 타국이지만 사우나는 내게 심리적으로 안전하고 안정감을 주는 공간이었다.  아프리카에서의 사우나를 떠 올릴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겠지만 나는 추위에 맞서 사우나를 떠올린 내 자신이 대견했다.

 

시원하게 땀을 배출하고 따뜻한 차 한잔을 음미하면 매서운 추위도 아무것도 아닌것 처럼 느껴졌다.
아프리카에서의 경험한 추위와 해결책으로 찾은 사우나는 21세기 사는 우리들 중 몇 명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실일것이다.


삶의 영역이 익숙해지니 집 주변을 살피게 되었다. 집 앞 공터에서 장작을 떼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장작을 파는 모습에 처음에는 땔감정도로 여겼지만 추운 겨울 장작의 따뜻함으로 몸소 경험하고 나니 길가를 스치며 본 장작이 다르게 보였다. 추위는 나를 움직였고, 주변에 추위를 견디게 해 줄 요소는 이미 충분했다. 아프리카에서의 추위가 낯선 것이 아니라, 그 추위를 이겨내는 내 자신이 더 낯설었다.


여행이 존재의 의미를 대신할 수는 없다. 보편적인 여행은 삶과 분명 다른 결을 갖는다. 낯선 공간에서 느끼는 해방감이나, 자유함은 그래도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자들이 누리는 호사이다.
제어할 수 없는 시간의 공간을 넘나드는 여정은 여행이 주는 선물이다. 

이 선물은 우리가 현실을 다르게 살 수 있는 길를 열어 주기도 한다.

 

가장 매혹적인 도시에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꼭 봐야 하는 유명한 관광지를 놓치거나 침대에 죽은듯이 누워있다가 비행기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호사도 그래서 인정해야 한다.


여행에서의 세밀함을 발견하고 있는 지금도 나는 여행은 계속된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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