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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호 May 06. 2019

서랍 속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잃어버린 유년의 기억들

                                                                                                                         




길을 걷다 주워둔 노오란 벚꽃잎. 출력된 영화의 제목과 상영시간이 흔적도 없이 지워진 오래된 영화 표. 그 뒷면에 끄적여 두었던 시절을 알 수 없으리 만치 익숙한 단상. 한 움큼 배낭에 실어온 여행지의 팸플릿과 티켓. 어두운 밤 희미한 불빛에 기대 적었던 누군가의 연락처. 오래된 통장에 빼곡히 적힌 비루한 잔액의 정렬. 오래 웃음 짓게 하는 몇 장의 엽서와 자주 펼쳐지고 다시 접히길 반복했던 편지들. 버리는 습관이 느리게 자라고 있으나 쌓아 두는 습관은 여전해서 버리지 않은 것과 버리지 못한 것이 서랍 속에 가득하다. 먼지처럼 쌓인 흔적들은 후-하고 불어 버리고 시들이 않아야 할 추억들을 차곡차곡 쌓아둬야 할 텐데, 뒤섞인 추억들을 들춰보다 결국 그 속에 파묻히고 만다. 차마 정리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또 한 번 뒤섞는다.


습관처럼 서랍 속의 추억들을 마주하다 익숙한 허전함을 꺼내 들었다. 새롭게 생겨난 추억들이 서랍 속으로 스미고 기억의 한 자리를 차지하지만,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서랍을 되찾을 방법은 없다. 이 추억 중 가장 나이 든 녀석은 겨우 열 살이 되었다. 홀로 객지생활을 시작했던 대학 시절부터의 추억이 서랍 속에서 잠이 들고 깨어나길 반복한다. 추억 이전의 추억, 내 오랜 유년기의 추억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목소리를 잃은 추억들이 한 번도 찾지 않는 나를 원망하며 점점 더 표피를 향한다. 일상의 시시콜콜한 스침에도 벗겨지고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바닥으로 투-욱 투-욱 떨구어진다. 그 순간조차도 아무런 소리를 내지 못한 채, 존재의 기억마저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다. 한때 나의 것이었던 작은 습관, 너의 한마디, 애장했던 사물들, 사소한 잡동사니. 그 소중한 것들을 이제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고등학생 때 기숙사 생활을 했다. 그건 나의 결정이었던가. 이 집에선 네가 공부를 할 수 없을 거란 어머니의 권유가 있었던가. 주말마다 집으로 돌아오던 일은 학년을 거듭할수록 줄어들었다. 한 달에 한두 번쯤 집으로 향했던 고3의 어느 주말, 그날은 왠지 집에 가겠노라 미리 전화하고 싶었고 나는 어머니께 새로운 집 주소를 전해 받았다. 하마터면 텅 빈 옛집으로 귀가할 뻔했던 우스운 헤프닝으로 기억하던 순간이지만, 이제 생각해보니 나의 책상과 그 서랍 속에 있던 많은 것들이 증발해버린 상실을 마주한 슬픈 순간이었다. 군대에 있을 때, 대학교 생활을 할 때, 직장을 다닐 때, 이후로도 나의 부재중에 이사는 이어졌고 지금 고향에는 네 권의 졸업앨범과 한 권의 사진첩만이 남았다. 종종 어릴 적 살던 옛집이 그리웠던 건, 형과 함께 썼던 작은 방, 유일한 내 것이었던 책상과 서랍 때문은 아니었을까. 지금 나는 그날의 서랍 속이 몹시 궁금하다.









나를 만든 전부는 추억이었다. 그 순간 마주했던 사람들, 그 속의 이야기, 그리고 길에서 마주한 풍경, 사물들. 그것이 오래 나를 웃게 했고 자주 울게 했고 결국 자라나게 했다. 여전히 나를 이루고 있다. 무엇 하나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다고 여겼던 이유는 나라는 녀석이 기억, 그 자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 순간 모든 것이 상실되기 때문이다. 무수히 마주했던 눈앞의 풍경이 사라지고, 손을 맞잡은 곁의 사람들이 사라지고, 영원할 것 같았던 추억들이 한순간 증발해버리고, (아니, 정말 증발해버리는 것이라면 공기 속에 흩어져 바람에 흩날릴 수 있는 것을 위안으로 여길 테지만) 게임 속의 캐릭터가 지워지듯 우리는 그저 삭제의 순간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설령 무엇으로 다시 태어난다 하여도 기억이 소멸한 존재의 내가 어찌 나이겠는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 나는 오한이 들린 듯 마음이 떨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저, 사는 동안 나의 전부일 나의 기억들을 마음껏 사랑해야지, 더 사랑할 수 있게 조금은 괜찮은 내가 되어야지, 달래어 볼 뿐이다.


내가 나일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당신을 기억하기 때문이고, 내가 나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쉬이 변하지 않는 나의 모습에, 내가 원하던 곳으로 나를 이끌어 갈 수 없음에 자주 절망했던 건, 이미 나를 이루고 있으나 이제는 도무지 떠올려 볼 수 없는 어린 날의 기억 때문은 아니었을까. 너무 많은 상처를 감당할 수 없어 우리는 잊을 수밖에 없는 거니까. 기억이란 녀석은 본래 그렇게 생겨 먹었으니까. 채 온전한 모습의 나로 되돌려 놓기 전에 상처가 두려워 망각하고 말았던 그 시절의 바람들이 나를 알 수 없는 어딘가로 데려다 놓은 건 아니었을까. 곳곳이 헤진 기억의 지도를 아무리 펼쳐 보아도 여기를 알 수 없어 괜히 몸에 남은 상처들만 어루만진다.









그 시절, 내 서랍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던 건, 무슨 무슨 기념일이 찾아올 때마다 유행처럼 여자아이들이 주고받던 작고 귀여운 엽서에 담긴 몇 마디의 말이었다. 그런 유행은 몇몇 남자아이들을 동참시키기도 했다. 나도 한 번쯤 적었을 법도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누군가에게 건넨 기억은 떠오르지 않는다. 서랍 속 이야기 중엔 '네 마음을 밝게 비추는 따뜻한 촛불이 있는 것 같아.' 라던 어린 소녀의 따뜻한 촛불 같은 말이 가장 좋았다. 어쩜 그렇게 사랑스러운 문장을 그 아이는 간직할 수 있었던 걸까. 이런 내게도 전해줄 수 있었던 걸까. 몇 번이고 그 엽서를 다시 꺼내 읽고 있노라면 여전히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낯뜨겁기도 했지만, 무채색의 헤지고 남루한 옷들로 가득한 옷장에 새하얗고 고운 옷 한 벌이 들어선 것처럼 내 마음이 한결 빛나 보이기도 했다. 그때 나는, 조금은 어른이 되는 꿈을 꿨으리라. 처음으로 괜찮은 녀석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으리라. 어쩐지 조금, 두근거리기도 했으리라. 소녀의 마음의 꽃밭에서 한 송이를 꺾어 나눠준 한마디를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기억하고 마르지 않도록 소중히 키워가고 있다는 걸 소녀는 상상도 못 했겠지만, 그녀의 기억 속엔 남아 있지 않을 한 장의 추억이 내겐 여전한 향기로 남아있다. 황량한 이 마음에도 꽃밭을 가꿔 누군가에게 꽃 한 송이를 전할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라고 있다. 그 시작은 어린 소녀의 한마디였다.


그 엽서를 떠올리자 오랜 서랍을 열어버린 듯 또 다른 추억들이 떠오른다. 친구들과 한바탕 동네를 휘젓고 학교 앞 구멍가게에서 불량식품을 훔치기도 했던 시절, 마치 집이 없는 아이들처럼 친구의 자전거 뒤에 타고 해가 지는 낯선 길을 달렸던 기억. 웃고 있지만 어쩐지 황망하기도 했던 그때는 지금의 방황과도 무척 닮아있다. 많이 따랐던 담임 선생님께 단 한 마디 제대로 감사함을 전하지도 못하던 부끄럼 많은 소년의 동그란 눈망울은 지금 꿈을 바라보는 내 눈과 닮았다. 아주 어릴 적 단 한 번 갔던 진해의 친척 집, 달동네의 가로등 아래 넋을 잃고 바라보던 벚꽃이 떨어지던 밤의 풍경은 지금 내가 사랑하게 된 거리의 모습과 닮았다. 오래 떠올리지 못했던 추억들이 다시 수명을 얻는다. 뒤죽박죽 엉키고 힘겹게 떠올려지는 그것에서 숨겨진 또 다른 서랍의 문을 여는 열쇠를 건네받는다.









꼬리를 무는 기억의 틈새로 지금의 내가 스며든다. 어쩌면 내 최초의 기억까지 다다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도 품어본다. 최초의 기억을 알면, 지금 자신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기억 속 무엇도 내가 아닌 것이 없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무게를 헤아려보다, 기억 속의 작은 흔적이나마 손에 쥐어보고 싶은 애틋함이 남았다. 내 낡은 서랍 속 추억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모든 걸 잃어도 무엇도 잊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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