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비리치 Jan 30. 2024

눈 구경하기

좋아하는 것 4번



아무도 깨지 않은 새벽, 눈이 쌓여가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형형색색의 세상이 가로등 불빛에 빛나는 하얀 눈발으로 뒤덮여 간다. 그리고 비로소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내 눈을 지배하고 있는 색은 오직 하얀색 뿐이다. 눈이 내린 날엔 세상은 단순하다. 겉표면도, 색깔도. 포근하고 하얗다.


눈 내린 다음 날 아침이면 기분이 좋다. 왜 기분이 좋을까 곰곰히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기분이 좋으면 됐지.' 하고 넘어간 날들이 많았는데, 며칠 전 눈이 많이 내리고 난 뒤에서야 깨달았다. 눈이 내리고 나면, 모나고 거친 세상을 눈이 부드럽고 포근하게 덮어버리기 때문이었다. 현실을 잠깐이나마 잊을 수 있는 순간이 된다.


눈 위를 걸으면 눈은 뽀도독 뽀도독, 소리내며 온전히 날 받아주고 있다. 그러나 눈싸움을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눈도 뭉치면 꽤나 단단하고 맞으면 아프다는 것을. 어찌 보면 눈은 외유내강의 대표 명사다. 그런 존재가 내 곁에 존재해주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차가운 세상을 따뜻하게 녹이며 위로받는 것이었다.


나도 눈 같은 사람(눈사람?)이 되어야지, 속으로 다짐한다. 차갑지만 따뜻한, 부드럽지만 단단한. 그런 사람이 되어 내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줄 수 있다면, 서로가 위로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면 모난 세상이 조금은 부드러워질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겐 눈이 귀찮을 수도 있다. 군대에 있을 땐 나조차도 그랬으니까. 그치만 더 이상은 내게 눈이 귀찮은 존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겨울이 되면 눈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사그라들지 않도록.




여러분이 위로받는 존재는 어떤 것이 있나요?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작가의 이전글 아침 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