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착륙했어. 이제 비행기에서 내려야지...

해외 주재원보다 더 힘든 주재원 아내의 삶...

2017년 1월...


3년간의 파리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는 우리 가족을 태운 비행기가 사뿐하게 인천 국제공항에 내려앉았다. 좌석벨트 사인도 꺼졌고, 다른 승객들은 짐까지 다 챙겨서 좁은 좌석통로를 이미 꽉 채우고 서 있는데, 자리에 앉아 있던 아내가 일어날 생각을 안하고 망부석처럼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호비 엄마... 일어나야지. 비행기에서 안 내릴거야?”


아내는 3년간의 행복한 파리 생활을 마치고 또다시 각박하고 정신없는 현실이 기다리는 한국으로 돌아온 것을 믿고 싶어하지 않는 눈치였다. 비행기도, 그리고 그 비행기에 탑승한 자신의 몸도 이미 한국에 도착했지만 마음은 아직도 파리를 떠나지 못한 것이었다. 나의 재촉에 아내는 “에휴”라는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그제서야 마지못해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 가족은 그 비행기에서 가장 마지막에 내렸다.




해외주재원의 아내들도 보통 남편의 근무 기간에 맞춰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 가량 해외에 거주하게 되는데, 주재원 아내들이 해외에서 겪고 느끼는 경험은 천차만별이라는 단어로도 부족할 정도로 다양하다. 가장 흔한 경우가 한국보다 평균적으로 느리고 불친절하고 끝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한 각종 서비스를 참아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누리지 못한 이러저러한 경험을 누리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행정기관, 병원, 그리고 아이들이 재학중인 학교의 느리고 서투른 서비스에 고생하다가도 한국이면 꿈꾸기 어려운 골프나 여행 등으로 이를 보상받는 그런 인생 말이다. 적당히 힘들어 하며 동시에 적당히 누릴 것은 누린다는 의미에서 ‘절충형’ 인생이라고나 할까?


이보다 숫자는 적지만 꽤 적극적으로 해외 생활을 즐기는 주재원 아내들도 있다. ‘절충형’ 인생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다른 주재원 아내들과 교류를 넓혀가며 심지어는 현지인들과도 적극적으로 사귀는 사람들도 있다. 현지어 배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현지인들과도 큰 편견 없이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탐험가형’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내 경험상 이런 사람들은 ‘절충형’에 비해서 그 수가 매우 적은 것 같다.


마지막으로, 가장 안타까운 유형은 ‘은둔형’이라 할 수 있다. 남편의 해외발령 때문에 또는 아이의 특례입학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외에 나오기는 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해외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언어적인 능력이 부족해서 외국 사람들 앞에만 서면 얼어붙어버리기 때문일 수도 있고, 한식 이외의 식단을 즐기지 않는 식성 때문일수도 있다. 우리 회사에서도 한 번 해외 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이후로는 절대로 다시는 해외에 나가지 않겠다는 직원들이 가끔 있는데, 대부분 부인 또는 아이들이 겪은 다양한 트라우마 때문이다.


아이들이야 매일 학교라도 등교한다지만, 아내가 해외생활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괴로워하면 말그대로 답이 없다. 제법 오래전 일이지만 우리 회사에서도 안타까운 사례가 있었다. 3년 동안 홍콩 지사에서 근무하던 한 직원의 아내가 매우 심하게 해외생활 부적응을 겪었다. 그 분은 남편과 아이들이 아침 일찍 집을 나선 후, 닭장처럼 비좁은 아파트에 혼자 있기가 싫어서 항상 외출을 하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딱히 갈 곳도 없고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만날 사람도 없었으니, 아이들이 하교하는 시간까지 거의 여덟시간 가까이를 홍콩 시내의 공원이나 바닷가를 산책했다는 것이다. 3년 내내 말이다. 다른 주재원 아내들과 격의 없이 어울릴 정도로 외향적이지도 못했던 그 분에게 그 3년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 분은 남편과 아이들이 걱정할까봐 3년을 혼자 끙끙거리며 참다가 마침내 귀국하기 직전이 되어서야 남편에게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았단다. 아내의 고백을 들은 남편은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에 아내를 끌어안고 그야말로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적극적으로 밖에 돌아다니고 사람을 만나고 싶어도 그렇지 못한 환경 때문에 좌절하는 경우도 있다. 남편이 런던지사로 발령이 나서 즐거운 마음으로 영국행 비행기에 올라탔는데, 막상 회사에서 정해준 월세 한도에 맞춰 집을 구하다보니 런던 시내에서 기차를 타고 무려 1시간이나 가야하는 소도시에 정착한 사례도 있었다. 결국 이분은 3년 동안 영국에 머물면서 런던에는 손에 꼽을 정도로 가보았단다. 런던지사에 발령받아 왔는데 정작 런던에는 몇 번 가보지도 못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슬람 율법이 엄격하게 적용되는 국가에라도 발령받아 가게 되면 주재원 아내의 삶의 질은 그야말로 급격하게 추락하게 된다. 머리카락과 얼굴은 물론이고 몇몇 나라에서는 온몸을 이슬람식 복장으로 칭칭 휘감지 않으면 외출도 하지 못하는 경우들도 있다. 불과 몇 년전까지는 여성이 운전도 못하는 이슬람 국가도 있었으니 그런 국가에 발령받은 주재원 아내는 그야말로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죄수 신세인 셈이다.




며칠 전, 아내가 처제(아내의 손아래 동생)와 나누는 전화통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자 처제네 식구들도 드디어 결단을 내려 해외 근무를 신청했고, 2021년 여름부터 쿠알라룸푸르에 거주중이다. 이미 3번의 해외생활을 경험중인 아내의 충고는 현실적이고 솔직했다. 예를 들어, ‘오랜 기간 해외에 머물게 될테니 자신이 집중할만한 취미를 한 개는 가져야 한다.’ 한마디로 외로움과 고립감을 이기기 위해서는 꾸준히 할만한 무언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너무 한국 음식만 찾지 말고 적극적으로 해외음식을 즐겨라’. 그게 생활비 아끼는 지름길이다. ‘한국인들, 특히 다른 해외주재원 아내들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너무 많이 나누지 마라.’ 나중에 뒷말이 나오고 불필요한 소문이 돌게 된다 등등...


누구는 시댁에 제사지내러 안 가는 것만으로도 해외생활은 백점 만점에 백점이라고 한다. 설날과 추석 그리고, 시부모 생일 이렇게 일년에 딱 네 번만 국제전화를 걸어서 “어머, 어머님... 저희 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은 항상 어머님 아버님 곁에 있어요.”라는 말만 해주면 되는게 주재원 아내가 누리는 최고의 특권이라는 살짝 가시돋친 우스갯소리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말도 통하지 않고 온갖 생활은 불편하기만 한 것 투성이인 해외에서 아마도 가장 힘든 사람이라면 주재원의 아내가 아닐까 한다. 결국 해외에 거주하는 그 시간이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오롯이 자신을 희생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도 나와 아이들은 아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 챙겨주는 아침을 먹고, 각자의 일터와 학교에 다녀왔다. 혼자서 우두커니 집을 지키고 앉아 있던 아내에게는 어제와도 똑같고 내일과도 변함없는 하루였을 것이다. 처음 해외 근무를 시작할 때에는 퇴근하고 집에 들어설때마다 아내에게 미안한 감정이 컸다. 나와 아이들의 하루하루가 아내에게 진 빚으로 영글어가고 있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람마음만큼 간사하게 또 어디 있겠는가? 시간이 지날수록 미안함마저 옅어지고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된다. 아내에게 진 빚을 갚을 날이 언젠가는 와야 할텐데...


오늘도 낯선 전세계 나라에서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는 모든 주재원 아내분들에게 힘내시라는 말씀 꼭 드리고 싶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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