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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6년 8월... 미국 일리노이주...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신없이 정리하고 만으로 세 살도 되지 않은 호비, 그리고, 백일도 지나지 않은 호지를 안고 12시간이 넘는 비행시간 끝에 내가 2년간 공부할 대학교에 도착했다. 공항에서부터 학교까지는 현지 한인 교회에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드디어 도착한 교내 기숙사 건물 앞...
차에서 내린 나와 내 아내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건물 전체가 나무로 지어진 50년도 넘은 우중충한 목조건물에 붙어 있는 주소... 몇 번을 확인해도 학교 기숙사 관리사무소에서 알려준 우리 집 주소가 틀림없었다. 큰길을 달리던 차가 좌회전하면서부터 똑같이 생긴 목조 건물 수십 채가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데, 우리의 불안감이 현실이 된 것이다.
“회사에서 스폰서 받아서 유학 오시면서 왜 굳이 학내 기숙사로 들어가려고 하세요?
월세 조금만 더 내시면 학교 밖에 좀 더 넓고 좋은 집 많아요.
회사에서 지원받아 유학 오신 분들은 다 그런 집을 렌트하시던데...”
몇 주전... 내가 학내 기숙사를 문의하자 한국인 유학생회 총무가 보내왔던 이메일 속 이야기가 그제서야 내 뒷머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한국을 떠나기 전 우리는 이미 대학교와 기숙사 렌트 계약에 서명했고,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고 2년간 꼬박 살아야 한다.
회사에서 보내주는 학술연수 대상자로 뽑힌 것은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금액 내에서 월세집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학교에 이미 재학 중인 한인 학생들 모임과 연락이 닿아 이들을 통해서 알아본 결과 그 동네의 한 달 렌트비가 만만치 않은 수준이었다. 좀 더 값이 싼 아파트를 찾던 차에 우연히 학교 홈페이지에서 주변 시세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 집들을 발견했다. 대학원생에게 제공되는 학내 기숙사였다.
대학교 홈페이지에 게시된 기숙사 동영상을 아내와 같이 들여다보고 있는데 전혀 이상한 느낌이 없었다. 조금 좁아 보이기는 했지만, 거실 하나에 방 두 개 그리고 작은 부엌과 화장실... 겉으로는 있을 거 다 있어 보이는 멀쩡한 집이었다. 교내에 위치하고 있어서 강의실로의 접근성도 최고였으니 일석이조였다.
“잘 됐네. 호비 아빠, 렌트비도 싸고 학교도 가깝고.. 학교 기숙사로 정합시다”
그렇게 큰 고민 안 하고 정한 집이었는데, 이제 보니 모든 것이 화!면!빨!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2차 대전이 끝나고 일리노이주 주 방위군(National Guard) 소속 병사들을 위한 군용 주택으로 지어진 건물을 주 정부가 주립대학교에 싼값에 불하한 것이란다. 건물의 나이도 놀라울 따름이었지만, 한 집에 여섯 가구가 입주할 수 있는 나지막한 3층 건물 전체가 모두 나무로 지어진 목조 주택이라는 점은 더욱더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발걸음 한걸음 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청소기를 돌릴 때마다,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물을 내릴 때마다... 집 전체에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던 그 목조건물은 마치 이렇게 소리치는 듯했다.
“아이고, 입주민 여러분. 저 60년 된 목조 주택이에요. 살살 좀 움직이세요”
[#2} 2007년 5월...
방음이 전혀 되지 않는 목조 주택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경험한 것은 내가 첫 학년을 거의 마친 어느 초여름 밤이었다. 칭얼거리는 호비와 호지를 재우고 간신히 잠이 든 그날 새벽... 잠결에 어렴풋이 목조 주택 전체가 조금씩 삐그덕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규칙적으로 들리는 삐그덕, 덜그럭 소리와 함께 젊은 남자의 힘찬 신음 소리와 젊은 여자의 교태스러운 신음소리가 섞여 있었다. 한밤중에 대학교 기숙사 한복판에서 남녀상열지사의 소리가 고고하게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었다.
누군지 단박에 짐작이 갔다. 우리 집 바로 위층에 사는 서글서글하고 활달한 젊은 흑인 부부였다. 오분이 지나고 십 분이 지나도 '삐그덕', '어윽', '아흥' 소리가 사라지지 않았다. 어찌나 시끄럽고 격렬했던지 옆에 누워있던 아내도 잠에서 깨었다.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시달린 채 피곤에 찌들어 겨우 잠이 들었다가 깨어났으니 아내의 입에서 고운 말이 나올 리가 만무했다. 짜증이 난 아내가 한마디 나지막이 뱉었다.
“어이구, 저것들이 미쳤나. 꼭두 밤중에 뭐하는 짓이여?”
아내도 자기가 뱉은 말에 약간 머쓱해졌는지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고, 나 역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며칠 후, 근처 마트에 장 보러 집을 나서는데, 집 앞 공터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고 있는 윗집 부부와 마주쳤다. 나와 아내의 단잠을 깨운 이 부부의 그날 밤 행동(^_^;)이 얄밉기도 하고 해서 모른 척 지나가려는데, 남편이 굳이 나를 불러 세우더니 맥주나 한잔 하라고 권한다. 매몰차게 거절하기가 어색해서 맥주 대신 음료수 캔을 집어 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번이 마지막 학기였고, 자기는 이제 졸업식만 마치면 학교를 떠난다는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줬다. 여전히 얼굴은 싱글벙글이었다.
그때,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는 노부인 한 명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 젊은 남편의 어머니였다. 한껏 멋진 옷을 입고 오셨지만 한눈에 봐도 유행이 지난 옷을 몇 년 만에 꺼내 입은 듯한 행색... 테이블 위로 손을 뻗어 음식을 집는 그 부인의 손은 거칠고 투박했다. 수십 년간 고된 노동을 견뎌낸 손이었다. 사별한 것인지, 아니면 이혼한 것인지 알 도리는 없었으나, 바비큐 파티 자리에 노부인의 남편은 없었다. 오랜 기간 힘든 육체노동을 홀로 견뎌낸 원동력은 아마도 똑똑하고 서글서글한 아들에게는 자신의 삶보다는 더 나은 삶을 물려주고 싶었던 간절한 열망이었을 것이다.
"이 녀석은 우리 집에서 처음으로 대학을 간 녀석이에요. 그런데 이제는 대학원까지 마쳤어요."
자신의 아들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는 노부인의 따뜻한 눈빛을 바라보고 있자니 윗집 부부의 괘씸했던 행동(^_^;)이 나도 모르게 용서되었다.
나 또한 우리 집에서 처음으로 대학이라는 곳에 발을 디뎌본 사람이다.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물론,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 아버지의 형제들 중 어느 누구도 대학교라는 곳에 가본 적이 없다. 외삼촌 두 분은 속칭 명문대학을 졸업하시고도 연좌제의 족쇄에 붙잡혀 평생을 고되게 사셔야만 했다. 대학교 중에서 4년을 다녀야 하는 학교와 2년을 다녀야 하는 학교, 이렇게 2종류가 있다는 것을 중학교 졸업할 즈음에 처음 알게 된 것도 크게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대학교는 고사하고 인문계 고등학교마저 딱 하나 있었던, 인구 2만의 깡촌에서 태어나 계속 자랐으니 말이다.
[#3} 2021년 11월... 인도 뉴델리...
얼마전 위층에 새롭게 이사 들어온 세입자가 어젯밤 자기 친구들을 불러서 새벽까지 신나는 파티를 즐겼다. 주인도 독일 대사관에 근무하는 젊은 외교관이었는데, 처음 만난 날 독일식 악센트가 살짝 섞인 영어로 친절하게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내가 일리노이에서 만났던 그 부부만큼은 아니어도 서글서글하고 친절한 인상이었다.
밤을 새워서 새벽까지 들리던 흥겨운 음악소리에 잠을 설치고 난 아침... 문득 일리노이의 그 허름한 목조 기숙사, 그 기숙사에서 느닷없이 들려왔던 '삐그덕', '어윽', '아흥' 소리, 그 붙임성 좋은 젊은 부부, 그리고 그 노부인의 거친 손마디... 이런 모든 것들이 하나둘씩 머리에 떠올랐다...
밤잠을 설쳐서 살짝 짜증스럽기는 했지만, 이런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것... 이것이야말로 '나라를 옮겨 다니며 떠돌아다니는 삶'이 주는 몇 안 되는 즐거움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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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cture from pintere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