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의 확진자 급증을 겪은지 6개월 지난 시점에서의 소회...
2021년 5월...
인도에서의 코로나 확진자 수가 하루 40만명을 넘어서면서 인도에 거주하고 있는 교민과 주재원을 한국으로 일시 대피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TV에 비친 인도 현지의 모습은 참혹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산소통을 구하기 위해 길게 늘어선 인파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섞여 있는 공공병원의 병실, 화장터를 뒤덮은 검은 연기들... 위험에 빠진 인도 교민들을 돕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논리가 정당성을 얻고 있었다. 하지만, 반대 의견들도 많았다.
인도 교민과 주재원들을 ‘바이러스 덩어리’라고 부르며 ‘한국의 의료 상황도 힘드니까, 귀국하지 말고 살든지 죽든지 거기서 있어라’라고 말하는 것 까지는 그래도 참을만 했다. 질병에 대한 공포 때문에 나온 감정적 반응이려니 했다. 하지만, 부정확하거나 때로는 아예 잘못된 정보에 근거한 선동적이고 자극적인 주장들이 특히 인터넷 댓글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나는 아예 인터넷 댓글을 읽지 않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상처받을까봐 인도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에 대해서 신경쓰지 말라고 이야기해두었다.
부정확하거나 선동적인 댓글은 종류도 가지가지였다. 처음에는 우리 정부가 인도 교민들이 귀국하는 전세기 비용을 지불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세금을 그런데에다 낭비하냐’는 비난 여론이 일었다. 하지만, 귀국하는 교민들은 우리 정부로부터 단 십원도 지원받지 않았다. 그 대신 항공사가 평소 가격의 두 배가 넘게 책정한 전세기 금액을 자비로 지불했다.
검은머리 외국인들을 왜 도와주냐는 무지한 반응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댓글을 쓴 사람은 검은머리 외국인의 의미나 제대로 알고 있었나 모르겠다. 검은 머리 외국인은 외국 국적을 취득한 후에 자신에게 유리할때에만 외국 국적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인도에 거주하는 약 만명의 교민과 주재원중에 인도 국적을 취득한 ‘검은머리 외국인’은 1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모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들이다.
인도 교민들이 한국 도착 직후 머무는 시설격리 비용을 인도 교민들에게 부담시키지 않고 세금을 충당한다는 것이 알려진 직후부터는 ‘대한민국에 세금도 내지 않는 사람들을 왜 돕느냐’는 주장도 나왔다. 6개월 이상 해외에 거주하면 국내에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것은 맞다. 하지만, 세금이란 게 무엇인가? 국가가 보건의료, 교통, 행정, 교육 등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댓가로 자국땅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징수하는 것 아닌가? 그러기에 우리나라에 거주하면서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외국인들에게도 우리 정부는 세금을 징수한다. 인도에 살면서 한국이 제공하는 질높은 공공서비스를 전혀 받지 못하는 교민들에게 세금만 내라는 것은 도대체 무슨 논리인가?
게다가, 납세 여부가 그렇게도 중요한 기준이라면, 우리나라에 살면서도 세금을 내지 않는 청소년, 노인층, 저소득층 등도 마찬가지로 코로나에 걸렸을 때 죽게 내버려둬야 된다는 말인가? 한국내 거주하는 외국인 환자들도 우리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치료해주면서 정작 해외에 있는 자국민들에게는 이렇게 차갑고 모진 말들이 쏟아지는 현실이 답답했었다.
무사히 전세기가 편성되어 많은 수의 가족들이 한국에 도착했고, 코로나 전염이 가장 극심했던 여름을 건강하고 안전하게 한국에서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인터넷을 중심으로 퍼진 댓글을 보면서 인도 교민사회의 구성원들이 받은 심리적인 충격과 상처는 제법 컸다.
통계청의 ‘한국 재외동포’ 통계에 따르면 2019년 현재 해외에 거주하는 해외동포는 약 749만명이며 이중 해당국가에 영주할 목적으로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취득한 사람들이 584만명, 주재원이나 유학생 신분으로 단기체류중인 사람들이 약 165만명이다. 얼핏보면 시민권자 또는 영주권자의 비중이 매우 높다. 하지만, 이들은 중국(216만명), 미국(191만명), 일본(74만명), 캐나다(19만명)에 집중되어 있다. 한마디로 웬만큼 먹고살만한 나라에만 영주권자나 시민권자가 몰려있다는 이야기이다.
자 그렇다면, 개발도상국의 경우는 어떨까? 예를 들어 인도의 경우 주재원 등 단기체류자가 11,251명, 영주권 또는 시민권 보유자는 단 22명이다. 주재원, 그리고 소수의 유학생 등 단기체류자가 전체 교민사회의 99.8%를 차지하는 주재원 중심의 교민사회이다. 인도만 그럴까? 아시아에 널리 분포하는 개발도상국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베트남(시민권자 또는 영주권자 0명 vs 주재원등 단기체류자 172,684명), 캄보디아(0명 vs 16,969명), 라오스(8명 vs 2980명), 미얀마(18명 vs 3,842명) 등등...
물론, 이런 나라에도 체류비자를 지속적으로 연장하며 장기간 거주하는 교민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회사에서 가라니까 억지로 온 사람들, 잠시 머물며 돈 벌다가 인사발령나면 언제든지 떠날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생산법인을 설립하면서 해외주재원들을 파견한 대부분의 개발도상국 상황이 거의 똑같다.
솔직히 지금 인도에 근무하고 있는 주재원 중에서 ‘인도 현지법인으로 가라’라는 발령받고 뛸 듯이 기뻤던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었을까? 남편과 아빠를 따라 인도로 향하면서 행복에 겨워 비행기 트랩에 오른 가족이 한 가족이라도 있을까? 회사에서 가라니까 싫어도 온 것이다. 아빠를 따라서 억지로 끌려온 것이다. 하지만, 온갖 열악한 환경을 견뎌가며 현대자동차는 인도 내수시장 2위라는 기적을 만들어냈고, 삼성 핸드폰도 한때 인도 시장을 점령했던 중국 핸드폰과 막상막하의 1등 경쟁을 벌이고 있다. LG 가전에 대한 인도 중상류층의 사랑도 오래되었다. 이들 회사들은 물론이고 이들의 협력업체들에 근무하면서 혼과 열정을 쏟아부은 수많은 주재원들 덕분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들 기업들이 인도에서 여태까지 벌어들인 순이익과 이 순이익 덕분에 우리 정부가 징수할 수 있었던 법인세는 상당한 금액일 것이다.
한국에 살고 있는 국민들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향유하는 각종 공공서비스를 하나도 받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하에서도 해외주재원들의 우리기업과 우리 정부 그리고 우리 국민들을 위해 피땀을 흘리며 열심히 돈을 벌었다. 인도는 물론이고 동남아와 동부 유럽에 퍼져있는 주재원들이 우리나라 경제에 이바지한 것을 다 합친다면 우리나라 총 GDP를 좌지우지할 규모가 될 것이라고 나는 단언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오래전부터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와 교역을 하거나 해외투자를 할 정도로 국제화되었는데, 아직도 우리나라의 일부 시민들은 이렇게 급속하게 국제화된 우리나라의 경제 체질에 걸맞지 않는 옛날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 아직도 ‘우리’나라에 살면서 직접 세금을 내는 사람만 중요하고 해외에 살면서 국위를 선양하고 막대한 기업이익(그리고, 여기에서 파생되는 엄청난 세금)을 벌어다 주는 사람들을 국가 경제에 기생하는 존재쯤으로 취급하는 그런 국수주의적 태도 말이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국력과 경제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해외 경제와의 교류도 늘고 해외주재원도 더 많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천연자원도 부족하고 인구는 일본의 절반도 안되어 내수시장 규모도 작은 우리나라의 숙명이다. 그런 미래가 우리들에게 다가올 때, 개발도상국의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막대한 국익을 창출한 ‘산업 역군’들에게 차갑고 모진 말들을 쏟아냈던 2021년 5월이라는 시간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기만을 조용히 염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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