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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Vir Das (비르 다스)라는 인도 코미디언이 있다.
2005년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코미디언인데, 인도 출신 코미디언으로는 처음으로 넷플릭스에 자신의 이름을 건 프로그램을 올릴 정도로 잘 나가는 사람이다. '21년 11월 12일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케네디센터에서 진행된 스탠드업 코미디쇼는 전석 매진되었다. 물론, 상당수의 표는 미국에 거주하는 인도 교민들이 구매한 것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날 공연 말미에 약 5분짜리 짧은 모놀로그를 했는데, 그 내용이 인도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공기 오염, 카스트 차별, 빈번한 성범죄, 언론 자유에 대한 탄압, 무책임한 정치인들의 행태 등 인도가 가진 여러 문제에 대해서 성역을 가리지 않고 뼈아픈 풍자를 퍼부었기 때문이다.
"어린 소녀들은 마스크를 쓰고 다니지만 정치지도자들은 마스크도 없이 서로 포옹하는 사회"
"공기오염지수는 9,000에 달하는데 (에어컨도 없는) 주민들은 지붕에서 잠자는 사회"
"낮에는 여성을 숭배하지만, 밤에는 여성을 집단 성폭행하는 사회"
"섹슈엘리티라는 개념에는 코웃음 치면서도 인구가 14억 명에 이르기까지 *을 치는 사회"
* 험험.. 우리말로 옮기기가 좀 거시기해서 원문을 그대로 옮겨보자면... I come from India where we scoff at sexuality and yet we f*** till we reach a billion people.
"남자들은 안락한 스튜디오에서 재미를 보는 동안 현장에 있는 여성 기자들만이 진실을 말하는 사회"
* 원문은 성적으로 매우 노골적이었는데, 그대로 옮겨보자면... Journalism is supposedly dead because men in fancy studios, in fancy suits, give each other handjobs, and yet, women on the road with laptops, are still telling the truth.
"30세 이하의 인구가 가장 많지만 아직도 75살 먹은 지도자가 떠드는 150년 된 사상을 듣고 있는 나라"
"채식주의자임을 자랑스러워하면서 (그런 채소를 기르는) 농민들을 차로 뭉개버리는 나라"
* '20년 12월, 인도 정부의 농산물 시장 자유화 조치에 반대하며 시위 중인 농민들을 향해 경찰이 차를 몰고 돌진하면서 40명이 넘게 사망한 사태를 풍자하고 있다. 14개월간 지속된 농민 시위 도중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700여명이 넘는 농부들이 사망했다.
"인도에서는 하녀와 운전기사를 부릴 수 있음에도 미국에 와서 하녀와 운전기사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국민"
"힌두교도, 무슬림, 파르시, 기독교도가 어울려 살지만, 하늘을 올려다보니 치솟는 기름값만 보이는 나라"...
외국인인 내가 듣기에도 어질어질할 정도로 인도에 대해서 이렇게 신랄하게 꼬집다 보니 힌두교도 근본주의 세력, 그리고 이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현 집권세력(BJP당), 그리고 이들과 가까운 언론들은 그야말로 벌집 쑤셔놓은 모양새이다. 집권당인 BJP 당직자 한 명은 비르 다스의 코미디가 인도를 모욕했다며 경찰에 고소하기에 이르렀고, 힌두 근본주의자들도 엄청난 비난을 쏟아붓고 있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웃자고 이야기했는데, 죽자고 덤벼드는 모양새'라고나 할까?
[# 2] Arnab Goswami (아르납 고스와미)라는 진행자가 있다.
대놓고 친여당 성격인 Republic TV라는 방송의 간판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진행자인데, 힌두 근본주의적 정치 성향, 인도에 대해서 비판적인 나라는 어느 나라던지 가리지 않고 맹비난을 퍼붓는 공격적 태도, 평소에도 10명 가까이 되는 초대손님을 자기 프로그램에 불러다 놓고는 자기와 뜻이 같지 않으면 초대손님을 거의 개망신 주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비르 다스의 코미디가 유튜브에 공개된 후...
아르납 고스와미가 도대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해졌다. 유튜브를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비르 다스의 코미디를 맹비난하는 한 시간 가까운 프로그램이 공개되어 있었다. '인도를 모욕하는 것은 코미디가 아니다'라는 헤드라인을 대문짝만 하게 화면에 박아놓고서는 마치 자신은 고상한 식자층이며, 인도에 대해서 풍자를 퍼부은 비르 다스는 수준 낮은 인간이라는 듯한 태도로 조곤조곤하게 방송을 시작했다. 하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서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언론과 예술의 자유를 주장하는 초대손님을 인신공격에 가까운 말로 몰아붙이며 인도가 세계에서 최고의 나라라는 맹목적인 국수주의 사상을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이 세상에서 인도만이 지상천국이고 인도를 제외한 나머지 190여 개 나라는 인간이 살 수 없는 끔찍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ㅎㅎ 이렇게 열심히 힌두 근본주의 사상을 설파하고, 집권 여당인 BJP당에게 굽실거리다 보니 이 방송사는 정권의 이쁨을 듬뿍 받고 있다. 집권 이후 7년이 넘도록 제대로 된 언론 인터뷰 한번 하지 않고 있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유독 이 방송사와는 단독 인터뷰를하고, 이 방송사의 창립기념식에 등장해 직접 축사를 하기도 한다.
이 비디오에 여러 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가장 많은 대댓글이 달린 '핫한 댓글'이 무엇이었는지 독자분들이 한번 맞춰 보시기 바란다.. 바로, "men in fancy studios, in fancy suits, give each other..."이었다. ㅋㅋ
[# 3] Bipin Rawat (비핀 라왓)이라는 4성 장군이 있다.
육해공 3군을 모두 통솔하는 합참의장으로, 파키스탄과의 크고 작은 국경 분쟁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군 내부는 물론이고 국민들에게도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도 2년 전 그를 3군을 모두 통솔하는 합참의장으로 임명했다.
'21년 12월 8월, 비핀 라왓 장군과 그 아내를 포함하여 총 14명을 태운 러시아산 Mi-17 헬리콥터가 남 인도의 타밀나두 주의 산악지역에 추락했다. 비핀 라왓 장군을 포함한 탑승자 대부분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전 군을 통틀어 가장 고위급 지휘관을 한순간에 잃은 인도 군과 인도 정부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사고가 발생한 그날은 물론이고 그 이후로도 며칠 동안 그의 사망 소식이 뉴스를 도배했다. 그의 유해가 수습되어 뉴델리로 이송되는 자리에는 나렌드라 모디가 직접 나와서 그에게 무공훈장을 추서하기도 하였다. 인터넷에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각종 메시지가 가득 찼고, 뉴델리 거리에도 그를 기리는 배너가 곳곳에 설치되었다.
2019년, 힌두교도가 아닌 사람들의 인도 국적 취득을 매우 어렵게 만드는 방향으로 인도의 국적법이 개정되었다. (기존에 이미 인도 국적을 가진 비 힌두교도의 국적을 무효화시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힌두교도가 아니면 사실상 인도 국적을 취득할 수 없게 만드는 노골적인 종교 차별이었다. 비 힌두교도를 타겟으로 한 이 법에 반대해서 많은 시민운동가들과 시민들이 항의에 나섰다. 바로 그때, 이 4성 장군은 공개석상에서 이러한 시민운동가들을 비난했다. "혼란을 부추기는 자들은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없다"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물론, 표현 자체는 거칠거나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심심하면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는 인접한 파키스탄과 이곳 인도는 전혀 분위기가 다른 곳이다. 여태까지 수십 년 동안 군의 정치적 중립이 오랫동안 잘 지켜져 온 나라,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민주주의 국가임을 전 국민이 엄청나게 자랑스러워하는 인도에서, 군의 최고 책임자가 그런 발언을 했다는 사실에 많은 인도인들이 적지 않은 충격을 표했었다. 우리로 치면 육군 참모총장이 어느 날 갑자기 텔레비전에 등장해서 세월호 유가족 시위를 향해 막말을 쏟아부은 셈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갑작스러운 헬기 사고로 사망에 이른 이 4성 장군을 둘러싸고 추모의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그의 과거 발언을 굳이 들춰내는 사람들은 많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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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들이 상상하는 그런 인도는 존재하지 않는다.(2)로 이어집니다.
* photo : Youtube screen capture of Vir Das performaing at the John F. Kennedy Center In Washington D.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