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이 상상하는 그런 인도는 존재하지 않는다.(2)

힌두교 우월주의 광풍이 휩쓸고 있는 지금의 인도...

* '당신들이 상상하는 그런 인도는 존재하지 않는다(1)'(https://brunch.co.kr/@hobiehojiedaddy/108)에서 이어집니다.




[# 4] Salman Khurshid(살만 쿠르쉬드)라는 전직 인도 외교부 장관이 있다.


얼마 전 그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로 대표되는 '힌두 우월주의' 집단을 이슬람 극단주의 그룹인 ISIS에 비유하는 다소 자극적인 내용을 담은 책을 펴냈다. 다종교, 다문화, 다민족으로 구성된 포용적인 인도에서 힌두교도만이 인도인으로 대접받는 국수주의적인 인도로 변모해가는 작금의 인도에 던지는 신랄한 경고였던 셈이다.


지금은 야당인 의회당(Congress Party)이 집권 여당이었던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외교부 장관을 지냈던 그는 Hindutva(힌두 우월주의)를 강하게 비판했고, 그 때문에 많은 힌두교 우월주의자들이 그의 책에 불쾌감을 표시했다. 게다가 힌두교도들이 가장 기분 나빠하는 것 중 하나가 자신들을 이슬람교와 비교하는 것인데, 쿠르쉬드의 책은 힌두 우월주의 집단을 이슬람교 근본주의 집단인 ISIS에 비교하는 금기를 범했으니 그 파장이 크지 않을 수 없었다.

* 산자야 바루(Sanjaya Baru)라는 유명 작가도 올해 힌두교 근본주의 세력을 마오쩌둥의 홍위병 세력과 비교하는 책을 출간했다. ('India's Power Elite: Class, Caste and a Cultural Revolution', Penguin RandomHouse India, 2021) 힌두교 근본주의 세력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무반응이었다. 무슬림이 아니라 홍위병과 비교당하는 것은 그리 기분나쁘지 않았나 보다... ㅎㅎ


쿠르쉬드의 책이 발간되지 않고 며칠 되지 않아, 힌두교 근본주의자들이 그의 집 앞으로 몰려들었다. 수십 명의 시위군중은 그의 집을 둘러싸고 한참 동안 소란을 피운 것도 모자라 집에 돌을 집어던지고 결국 불을 지르기에 이르렀다. 다행히 불은 초기에 진화되었고, 더 이상의 큰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이 다 풀리지 않은 시위 군중들은 쿠르쉬드를 본뜬 허수아비를 만들어 불을 붙이고, 그의 집에서 일하는 가사도우미에게 총을 들이대고 죽이겠다고 위협했다고 한다.




[# 5] Ahmedabad (아흐메다바드)라는 큰 도시가 있다.


구자라트라는 주의 주도(state capital)인데, 구자라트는 힌두교의 본산이라고 불릴만한 지역이다. 많은 수의 인도인들은 구자라트를 '채식주의자들의 본 고장'이라고 생각한다. 힌두교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 중에서 채식주의자들이 많은데, 대부분의 인도인들은 구자라트를 그런 지역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21년 11월, 아흐메다바드에서 특이한 조례 하나가 발표되었다. 초중고 학교 인근에 있는 가판대에서 채식이 아닌 고기 음식 판매가 금지된 것이다. 구자라트에 있는 3개의 작은 도시에서도 이와 비슷한 조례가 발표되었는데 아흐메다바드가 그 뒤를 이은 것이다. (채식을 권장하는) 힌두교 성전 내부에서 고기 음식을 금지하는 조례였다면 당연히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된 민주주의 국가에서 힌두교 성전 내부도 아니고 공공장소인 길거리에서 특정 종교가 권장하는 식사 방법이 버젓이 강요되는 모양새는 꽤나 낯설었다.


시민운동가들의 반발이 거세자 이 조례를 제정했던 관계 당국은 시민들의 통행에 불편을 끼치는 가판대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조치라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놨다. '시민의 통행을 원활히 할 목적이었다면 담배나 다른 물건을 파는 가판대는 왜 손대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제대로 답변도 하지 못했다.


강원도에 가끔 놀러 가면 유명한 산사 밑에 있는 음식점에서 소위 '절밥'이라는 것을 사먹곤 한다. 갖은 산나물로 맛을 낸 맛집들이 제법 많은 편인데, 만약, 어느 날 (낙산사가 있는) 양양시의 시장이 행정 명령을 내려서 시내의 모든 공공장소에서도 절밥만 팔아야 한다고 명령을 내린다면 우리나라에서는 과연 어떤 반응이 나올까? ㅎㅎ




[# 6] Roorkee (루르키)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뉴델리 북쪽에 소재한 우타라칸드라는 주에 있는 작은 도시인데, 10월 초 힌두교 우월주의자 군중이 그 도시에 있는 작은 개신교 교회당을 습격하여 쑥대밭은 만들어 놓았다. 200명이나 되는 군중들은 '교회에서 억지로 힌두교도들을 기독교로 개종하려 한다'라고 주장하면서 코딱지 만한 교회에 난입하여 집기를 부수고 교인들 수십 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세상의 모든 종교가 포교와 세력 확장을 목표로 하는 게 당연한데, 섣불리 선교활동을 벌였다간 교회 집기가 부서지는 것은 물론이고 교인들의 생명과 안전까지 위협받아야 하는 게 인도의 현실이다.


사건이 발생한 지 2달이나 지났는데, 수사는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주민들, 경찰, 그리고 언론까지 누가 이러한 짓을 저질렀는지 뻔히 알고 있다. 바로 집권여당인 BJP당의 지역 책임자들이 저지른 일이다. 하지만, 정치권 눈치보기 바쁜 경찰은 교회 측이 피의자를 정확하게 적시해서 고소장을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사에 나서지 않고 뭉그적 거리고 있다.


힌두교의 말도 안 되는 계급제도인 카스트 제도에서 이른바 하위계층으로 분류되는 수드라 계급, 그리고 이들보다도 더 차별받는 이른바 '불가촉천민'들이 힌두교의 차별적 대우에 환멸을 느껴 불교나 기독교로 개종하는 흐름이 인도 사회에서는 꾸준히 존재해 왔었다. 하지만, 힌두교를 믿는 기득권 세력의 입장에서는 자기들에게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듣던 하층민들이 힌두교가 아닌 다른 종교로 개종하면서 계급사회적 가치를 부인하고 '인간 평등'을 주장하면 골치가 아파지기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힌두 우월주의자들에게는 평등사상을 전파하는 타 종교의 포교활동이 그야말로 눈엣가시이다.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 이 모든 움직임의 배후에는 집권여당인 BJP가 버티고 있고, 더욱더 깊게 배후를 파보면 1925년 결성된 힌두교 우월주의 조직인 RSS가 숨어있다. 현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이끄는 집권 여당의 주요 정치인들은 아직도 RSS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런 힌두교 근본주의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비유가 조금 거칠게 들릴 수 있지만, 일본으로 치자면 단순히 자민당 정치인이 아니라 야스쿠니 신사를 정기적으로 참배하는 자민당 정치인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인도는 '요가'의 나라, '맛있는 카레 요리'의 나라, '수천년된 인도 철학'의 나라, '성자와 구도자'의 나라일 것이다. 하지만, 21세기의 인도는 꼭 그렇지는 않다.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그런 인도는 없다는 것이다. 포용적인 힌두교는 사라지고 정치와 결합한 편협한 힌두이즘만 남아버린 그런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 2021년 4월 미 정부 산하의 독립 위원회인 '종교자유위원회'(U.S. Commission on International Religious Freedom)는 인도를 '특별히 우려되는 국가(Country of Particular Concern)' 리스트에 포함시키면서 이러한 종교적 탄압을 조장하는 인물과 단체에 대해 제재(sanction)을 가할 것을 미 정부에 권고했다. 아직 미국 정부는 이 권고를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이러한 종교적 탄압의 배후에 누가(그리고 어느 단체가) 있는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ㅎㅎ


힌두교 우월주의 운동이 휩쓸고 있는 현대 인도의 우려스러운 사회상에 대한 이 글은 뜻밖에도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이야기로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 7] 서울평화상이라는 우리나라 유일의 국제 평화상이 있다.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념하여, 1990년 최초로 제정되었으며, 격년으로 세계 평화와 인류 화합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상을 시상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상금도 수십만 불에 달하는 상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1996년 제3회 수상자는 '국경 없는 의사회', 제6회 (2002년) 수상자는 세계적인 구호단체 '옥스팜', 제7회 (2004년) 수상자는 체코 민주화의 아버지 '바츨라프 하벨', 제9회 (2008년) 수상자는 북한 인권 전문가인 '수잔 숄티', 제12회 (2014년) 수상자는 며칠 전에 퇴임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였다. 나름 훌륭한 업적을 이룬 개인이나 단체가 수상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2018년 제14회 서울평화상을 수상한 사람은 BJP당을 이끄는 힌두 우월주의자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였다. 그리고...


서울평화상 심사위원회는 “모디노믹스(모디 총리의 경제정책)를 통해 인도와 세계 경제 성장에 기여하고, 빈민과 부유한 사람들 사이의 사회경제적 격차를 줄였다”며 수상 이유를 밝혔다. 한편, 많은 시민단체들은 그가 구자라트 주지사로 재직하던 2002년 당시 수천명이나 되는 무슬림이 학살당한 일명 '고드라 사건'의 사실상의 책임자라면서 '전두환에게 평화상 준 꼴'이라는 겪한 반응을 쏟아내기도 했다. (2018. 10. 25자 경향신문 보도기사 참조)


결국, 수 천 킬로미터 떨어진 나라를 휘감고 있는 종교적 혼란상이 우리나라에도 미쳤다고나 할까? 이걸 보고 "세계는 결국 연결되어 있구나"라며 아무 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지나가야 할까? 아니면 자유와 인권을 우선 가치로 하는 우리 정부가 전략적으로 중요한 인도 총리에게 서울평화상을 주면서 작지 않을 고민을 했을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주고 넘어가야 할까? 아니면 또 다른 생각을 해야만 할까?


글쎄.. 잘 모르겠다. 다만 한가지는 확실한거 같다.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인도는 최소한 지금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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