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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Nov 14. 2021

인도가 COP26에서 몽니를 부린 (안타까운) 이유..

개발도상국의 공기 오염과 기후변화 정책이 충돌할 때...

[# 1} '폐지(phase out)'하느냐, '감축(phase down)'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우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현지시각 어제('21. 11. 13(토)) 오후 11시 30분에 폐막되었다. 정상 합의문(글래스고우 기후 합의, Glasgow Climate Pact)이 막판까지 진통을 거듭한 이유는 다름 아닌 석탄과 화석연료에 대한 각국의 입장이 첨예하게 부딪쳤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최종적으로 합의된 문안에는 '탄소 저감조치가 없는(unabated) 석탄'의 활용을 단계적으로 '감축'하자는 내용 그리고, 비효율적인 화석연료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도록 촉구하는 문안이 들어갔다. 그런데, 이런 합의에 이르기까지에는 이러저런 우여곡절이 있었다. 최초에는 '탄소 저감조치가 없는(unabated) 석탄'의 사용을 '중단'하자는 내용으로 선언문의 초안이 작성되었다. 그런데, 몇몇 개발도상국(뭐, 톡 까놓고 이름을 좀 적어보자면 인도,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등등...ㅠㅠ)의 반발을 불러오게 된 것이다. 결국 옥신각신 협상이 계속되다가 마지막 순간에 인도가 총대를 메고 '석탄화력발전소를 pahse out(폐지) 하자'라는 부분을 '감축(phase down) 하자'라는 표현으로 바꿔야 한다며 버티기에 들어간 것이다.  


미루어 짐작해보건대, AUKUS('21. 9월 결성된 미, 영, 호주 안보동맹)로 인해서 그렇지 않아도 영국과 관계가 껄끄러운 중국, 그리고 (어차피 자국의 주요 수출품목인 석유가 아니라 석탄을 가지고 논쟁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크게 급박할 게 없었던 사우디아라비아보다는, 아무래도 같은 영연방 국가라서 좀 더 부드럽게 접근이 가능했던 인도가 총대를 멘 것으로 추측된다.


스위스 대표가 발언 기회를 얻어서 '이렇게 표현 수위를 조정(watering down)한 것이 몹시 실망스럽다'라며 강하게 비판하자 회의장에 가득 차 있던 200여 개 국가의 대표들이 큰 손뼉을 치며 호응했지만 결국 인도와 중국 등 목소리가 센 개도국의 의견을 꺾지는 못했다.

글래스고우에서 열린 COP26 회의장에서 스위스 대표가 석탄화력발전 관련 내용이 대폭 약화된 최종 합의문에 대한 실망감을 공식적으로 발언하고 있다.


결국, 인도를 포함한 힘센 개도국의 몽니로 인해서 마지막 순간에 정상급 합의문의 표현 수위가 확연하게 낮아지는 사태가 온 것이다. (실제로, 최종합의서 원문을 찾아보니 'to phase down unabated coal power and phase out inefficient fossil fuel subsidies while providing targeted support to the poorest and the most vulnerable in line with national circumstances'라고 되어 있었다)




[# 2} 선진국들은 개도국 탓, 개도국들은 선진국 탓...


이번 COP26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개도국들은 당초 '매년 1,000억 달러의 자금을 추가로 조성하여 개도국의 탄소 배출 저감과 기후변화 적응을 돕기로 한다'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 선진국들을 비판했다. 유럽의 주요 선진국들은 산업혁명 당시 지금보다도 훨씬 질이 낮은 석탄을 대량으로 소비해가면서 산업혁명을 거쳐 부유한 나라로 올라선 후 이제 와서 '가난한 자의 석유'라 불리는 석탄을 사용하는 후발 개도국을 제재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고 주장해왔다.


사실, 인도나 중국 같은 후발 개도국의 입장이 이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놓고 석탄화력발전소의 퇴출을 저지하는 행태를 국제회의 석상에서 보여준 인도의 태도에 많은 나라들, 선진국은 물론이고 당장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기후변화의 피해에 직면한 많은 섬나라 국가들은 좌절감과 분노를 표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의 의장을 맡았던 사람은 Alok Sharma라는 이름의 영국 하원 의원이었다. COP26 직전까지 영국 정부의 산업부 장관을 지낸 인물인데, Sharma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인도 태생(타지마할로 유명한 아그라에서 태어났음)이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자기의 가족이 태어난 고국인 인도의 공개적인 몽니와 이에 반발하는 주요 선진국들의 강한 항의 속에서 힘겹게 정상 합의문을 도출한 후, '많은 국가들이 좌절감을 느꼈다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이번 합의문이 결렬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했다'라며 울먹이는 안타까운 모습도 보였다...ㅠㅠ


COP26의 의장을 맡은 영국 하원의원 Alik Sharma가 눈물을 참으며 글라스고 기후합의를 이끌고 있다고 BBC가 보도했다.




기후 변화는 우리 다음 세대가 아닌 바로 우리 세대의 문제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실제로 해수면 상승으로 당장 나라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다수의 태평양 도서 국가들, 4년째 가뭄을 겪으면서 농업 부문이 초토화 되어버린 마다가스카르, 극심한 가뭄으로 전 국민의 80%가 제대로 된 상수원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요르단... 최근 2,3일 사이에 주요 해외 언론 보도된 사례만 봐도 이 정도이다.


하지만  한편에는 석탄이라는 값싼 에너지 이외에는 뾰족한 대체 에너지없어서 결국에는 석탄을 태울 수밖에 없는 인구 14 명에 육박하는 인도와 같은 가난한 나라가 공존하는  지금의 상황이다. 당장  나라의 경제 성장이 급한데, 기후변화를 걱정할 여유가 없다. 그나마 석탄마저 사용을 못한다면 인도는 (조금 과장을 보태서 말하자면) 경제의 상당 부분을 멈춰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도 내 분위기는 어떨까? 뭐, 대충 짐작하다시피, 국제 여론과는 상관없이 제 갈길을 가고 있는 중이다. 우선, 인도에서 가장 큰 경제지인 Business Standard는 이번 글래스고우 기후 합의가 인도에게는 큰 승리라며 대서특필했다.(^_^;) 또 다른 유력지중 하나인 The Indian Express는 익명의 인도 정부 관리를 인용하여 '인도가 모든 국가에게 받아들여질 만한 표현을 제안함으로써 합의 도출에 기여했다'라며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아전인수격 해석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정상급 합의를 거의 결렬시킬 뻔한 자신들의 행동을 이렇게까지 둔갑시키다니... 이쯤 되면 인도인들의 뻔뻔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인도의 유력 경제지인 Business Standard의 기사 : 이번 COP26에서 석탄화력발전소의 퇴출을 저지한 것이 인도에게는 큰 승리라고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정말로 아이러니한 일은 인도 국내에서 벌어졌다. 국제무대에서 저렇게 인도가 기후 악당의 노릇을 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욕을 먹고 있는 사이 인도의 최대 명절인 디왈리(11월 4일)를 전후하여 각종 불꽃놀이가 전국적으로 벌어지면서 그렇지 않아도 안 좋은 인도(특히, 인도 북부)의 공기질이 최악을 향해 치닫고 말았다. 디왈리 바로 다음 날인 11월 5일에는 뉴델리의 미세먼지 지수가 한때 최대 1,900까지 치솟았고 11월 12일에도 470을 넘어서는 수준이 된 것이다. (어제와 오늘 이틀간의 휴일 덕분에 미세먼지 지수는 200대 수준으로 '안정화'되었다)


뉴델리 주지사는 이런 안 좋은 대기 환경에서 수업을 지속하는 것이 청소년들에게 해롭다고 판단하여 앞으로 1주일간 뉴델리 시내 각급 학교의 등교중지 및 온라인 수업을 명령했고, 관공서의 재택근무를 의무화했으며, 민간기업도 최대한 재택근무를 하라고 권고했다. 11월 17일까지 각종 건설공사도 중지시켰다. 국제무대에서는 기후 악당 노릇을 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최악의 공기질 때문에 일상을 멈춰야 하는 인도의 야누스적인 현실....


안타깝고 또한 우울한 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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