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호감'들의 정치 싸움...그 결말은 어떠할까?

정치의 계절에 읽어본 '줄리어스 시저'

대선이 문자 그대로 코앞으로 다가왔으니 '정치의 계절'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시기이다. 이런 때에 감상하면 안성맞춤인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고르라면 몇 개가 떠오를 수 있겠다. (내 개인적인 기준으로) 셰익스피어의 연극 중에서 가장 정치적인 연극을 꼽으라면 '리처드 3세'를 꼽고 싶다. 신체적 장애를 지니고 (첫째도 아닌 막내로) 태어났으나 무서운 권력욕을 무기 삼아 끝끝내 왕위에 오르고 나서는 자신의 왕권을 위협하는 조카를 살해(했다고 전해지는) 왕이다. 나이 어린 단종을 죽음으로 몰고 간 세조의 모습도 겹쳐진다.


연극이 시작되자마자 리처드 3세가 무대에 등장하여 '불만의 겨울은 가고 요크 가문에게 태양이 비치는 여름이 왔구나 (Now is the winter of our discontent / Made glorious summer by this sun of York)'라고 외치는 대사가 물론 가장 유명하다. 하지만, 더욱더 소름 돋는 대사는 '사랑하는 자가 되기는 어차피 글렀으니 차라리 악한이 되겠노라(Since I cannot prove a lover… I am determined to prove a villain)'라는 대사이다. 사랑받고 존경받으며 권력 없이 사느니 미움받고 저주받더라도 권력을 가진 악한이 되겠다는 서늘한 대사이다. 상대를 거꾸러뜨려야만 내가 살 수 있는 정치라는 게임의 본질을 가장 잘 짚어낸 대사라 생각된다.

* 참고로 지금 황정민 배우가 리처드 3세로 출연하는 연극이 지금 막바지 공연 중이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꼭 한번 보시길...




리처드 3세를 포함한 셰익스피어의 이른바 '역사극'은 솔직히 영국 역사에 대한 꽤 깊은 지식이 있어야만 제대로 그 맛을 느낄 수 있지만, 그가 쓴 로마 역사 연극 2편(줄리어스 시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은 그나마 '역사극'에 비해서 진입장벽이 조금 낮은 편이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국 역사보다는 줄리어스 시저, 안토니우스, 옥타비우스(후에 옥타비아누스로 개명), 그리고 클레오파트라로 이어지는 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의 역사에 (조금은) 더 친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맥베스와 햄릿에 이어 세 번째로 무슨 작품을 필사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줄리어스 시저를 필사하기 시작한 게 지난 가을이었고 이제서야 필사를 마쳤다. 줄리어스 시저가 상원의원들에게 둘러싸여 살해당하던 로마의 캐피톨에서부터 브루터스와 캐시어스가 패전하는 그리스 북부의 필리파이까지 숨 가쁘게 달려왔다. 천천히 되새겨보니 줄리어스 시저에게서도 지금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모습이 많이 발견된다. 물론, 연극의 등장인물과 우리나라의 현실 정치인이 1대1 함수로 대칭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 등장인물에게서 여러 명의 정치인을 찾을 수 있기도 하고, 반대로 여러 명의 등장인물이 한 명의 정치인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라면 연극의 주인공이자 줄리어스 시저를 살해하는 중심인물인 브루터스를 보면서 단박에 유승민 의원을 떠올렸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콕 집어서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는 바람에 유 의원에게 배신자의 이미지가 강하게 덧씌워진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외의 여러 가지 면에서 브루터스와 유승민 의원은 비슷하다. 우선, 가족적 배경이 유사하다. 유승민 의원의 부친은 박정희 정권에서 소신 판결을 내리다가 정권에 밉보여 법복을 벗은 후, 정계에 투신하여 재선 의원을 지낸 유수호 의원이다. 자신의 이익보다는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아버지의 정신을 그대로 빼닮은 유승민 의원의 모습과 로마의 공화정을 지키기 위해 온 가문이 헌신한 브루터스 가문의 역사가 겹쳐진다고 하면 지나친 비유일까? 또한, 현실 정치의 벽에 부딪쳐서 고생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줄리어스 시저의 오른팔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얕잡아 봤다가 결국에는 전쟁에 패해서 자결하는 브루터스와 박근혜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퇴행적 정치세력에 밀려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정치 활동을 못하고 있는 유 의원의 모습이 비슷해 보인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우리나라 정치인중 누구에 빗댈 수 있을까? 검투사 경기나 좋아하는 찌질이 2류 정치인인 줄 알았는데, 줄리어스 시저의 장례식에서 놀라울 정도로 유려한 정치연설로 로마 시민들을 휘어잡고 훗날 옥타비아누스, 레피두스와 함께 삼두 정치를 이끄는 유력 정치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인기에 영합하는 발언과 정책으로 그저 그런 포퓰리스트인 줄 알았는데, 집권여당의 대통령 후보로까지 성장한 이재명 후보의 모습이 안토니우스에게서 보인다. 또한, 감동적이다 못해 가슴을 뒤흔드는 연설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훔쳐간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 또한 '언더독'이었던 안토니우스의 이미지 속에 숨어있는 듯하다.


줄리어스 시저의 조카로서 스무 살도 안된 나이에 안토니우스와 함께 동맹군을 지휘한 후 결국에는 레피두스에 이어 안토니우스마저 제거하고 최종적인 승자의 자리에 오르는 '젊은 피' 옥타비우스는 이준석 대표쯤 될까? 자신보다 훨씬 나이도 많고 전술에 대한 이해력도 뛰어난 안토니우스에게 병력 배치에 대해서 이견을 제시하기도 하고, 나이에 걸맞지 않은 뛰어난 정치감각과 과감한 의사결정 능력 그리고, 전쟁터에서 브루터스와 마주 서서는 한마디도 지지 않고 또박또박 대꾸하는 모습까지...




정치 이야기를 하는데, 부정부패 그리고 정치자금 이야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 줄리어스 시저에 대한 개인적인 악감정 때문에 그를 살해할 계획을 세우고 유력 정치가문인 브루터스를 끌어들이면서 이 모든 정치적 소용돌이를 일으킨 주역은 바로 캐시어스이다.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우스의 군대와 맞서서 내전을 벌이는 와중에도 뇌물을 받아먹고 벼슬자리를 내어주는 어이없는 짓을 저지르다가 정의감에 불타는 브루터스에게 일장연설을 듣는 수모를 당하게 된다. 머쓱해진 캐시어스의 변명 아닌 변명은 이랬다. '친구끼리라면 그런 허물은 덮어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 결국 '우리가 남이가?'라는 정치인들의 삐뚤어진 동업자 의식이 21세기인 현대시대뿐만 아니라, 2,000년 전인 기원전 44년에도 그대로였던 것이다.


줄리어스 시저를 관통하는 단 한개의 단어를 꼽으라면 hubris(오만함 또는 거만함)라고 할 수 있다. 예언가의 경고를 오만하게 무시하고 캐피톨에 출근했던 시저는 결국 비참하게 살해당하고, 고귀한 가문의 후손이라는 오만함에 사로잡힌 브루터스는 캐시어스를 포함해서 현실정치 감각이 뛰어난 동료들의 의견을 거듭해서 무시하다가 결국 전쟁에서 패하게 된다. 삼두정치의 일원으로 로마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고 착각했던 레피두스의 뒤통수에 대고 안토니우스는 경멸하듯이 쏘아붙인다. '저런 작자가 나와 같이 권력을 나누고 있다니. 내가 전쟁터에 타고 다니는 말도 저 인간보다는 낫겠다....' 하지만, 그 또한 나이는 어리지만 더 뛰어난 경쟁자인 옥타비우스에게 제거되고 만다. 결국, 줄리어스 시저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자신이 가진 hubris 때문에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동전의 한 쪽면이 hubris였다면 다른 한 쪽 면은 바로 '나약함' 내지는 '약점'이었던 것이다. 가장 큰 강점이자 무기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것이 가장 큰 약점이라는 말이다.




브루터스와 캐시어스의 연합군을 진압한 안토니우스는 자결한 브루터스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씁쓸하게 말한다. '브루터스야 말로 가장 고귀한 로마인이었다'라고 말이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대선이 치러지면 단 한 명의 승자와 여러 명의 패자가 생길 것이다. 그때 그 승자가 안토니우스처럼 패자에게 이렇게 너그러운 메시지를 던질 수 있게 되기를, 그리고, 그러한 안토니우스마저 결국 옥타비우스에게 밀려나듯이 정치적 승리라는 것이 순간의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기를...


몇주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바라보면서 줄리어스 시저 속에 등장하는 인간 군상들의 실수가 21세기 한국 정치에서 되풀이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