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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Feb 23. 2022

인도에서 (그나마) 어느 도시가 살기 좋을까?

인도 도시 이야기(1) : 벵갈루루

며칠 전 인도 남부의 뭄바이에 소재한 인도 현지 상업은행의 국제금융 담당 책임자가 뉴델리로 출장 오면서 우리 사무실을 방문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는 1년에도 두세 번 출장을 와서 고객들과 면담을 하곤 했었는데, 2020년 이후로 쭈욱 출장을 오지 못하다가 이제야 출장을 재개한 것이다. 아직도 마스크를 벗지 못한 채 이야기를 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 게다가 친교 모임도 아니고 일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어색한 분위기를 깨는데 가장 좋은 대화거리는 단연코 날씨 이야기일 것이다. 1월 말까지만 해도 아침저녁으로 영상 5도 전후까지 내려가던 뉴델리의 날씨는 불과 2, 3주 만에 낮 최고 기온이 20도 후반을 오르내리는 완연한 늦봄 날씨로 변모했다. 사무실을 찾아준 손님이 어색하지 않도록 내가 먼저 입을 떼었다.


"2,3주 만에 뉴델리는 겨울에서 여름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뉴델리는 겨울에 제법 춥다고 알고 있는데, 제가 근무하는 뭄바이는 그보다는 훨씬 온화(mild)하죠"


아재 개그였다. 기온은 북부 인도보다 높지 않지만 여름이면 살인적인 습도로 악명높은 남인도의 날씨를 '온화'하다고 말하는 그의 눈가에 악의없는 웃음이 번졌다. 아재개그를 이해못한 내가 눈치없이 되물었다.  


"네?... 혹시 좀 습하지는 않나요?"

"하하.. 네. 5월을 전후해서는 매우 습하죠.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을 정도이니 온화한 날씨라고 말하긴 어렵겠네요(It's 'more than mild')"


그제서야 그의 아재개그를 이해한 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썰렁한 아재 개그였지만 처음 만난 사람들 사이의 어색함을 풀기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인도가 우리나라의 30배가 넘는 넓은 엄청난 면적을 가진 나라이다 보니 한대 기후부터 열대기후까지 모든 종류의 날씨를 가진 나라이다. 그렇다면 인도 사람들은 어느 지역 또는 어느 도시를 그나마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할까? 라자스탄을 중심으로 한 북서부의 사막지역? 뉴델리를 중심으로 한 북부의 내륙지역? 중국과 접경하고 있는 라다크 지역? 방글라데시와 접경하고 있는 동부의 벵골만 지역? 아니면 남부 인도의 타밀나두나 케랄라 지역?



한 여름에도 30도에 미치지 못하는 선선한 날씨 속에서 살던 영국 사람들이 16세기를 전후하여 남인도에 본격적으로 도착한 후 아마도 그들은 날씨 때문에 멘붕에 빠졌을 것이다. 30도를 훌쩍 넘는 최고기온에 100%에 육박하는 살인적인 습도 때문이다. 무더위를 피해 고산지대에서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다니던 영국인들 눈에 띈 도시가 바로 벵갈루루이다. 지금은 인도의 미래를 상징하는 도시이며 인구 1,400백만에 달하는 인도 5대 도시 중의 하나이지만, 18세기 영국 식민지 시대 이전까지는 인도의 어디에나 존재하는 흔한 농촌 도시 중 하나였을 것이다. 남인도 지역의 엄청난 무더위를 피해서 영국인들이 해발 고도 920m에 위치한 벵갈루루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벵갈루루의 발전이 시작되었다.


온화한 날씨 덕분일까? 1년에 한 번 인도 정부는 인도 내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를 뽑는 서베이를 실시하는데, 인구 100만 이상되는 대도시 중에서 거의 예외 없이 1위 자리를 내놓지 않는 도시가 바로 벵갈루루이다. (https://eol.smartcities.gov.in/dashboard) 인도라는 척박한 나라에서 살기 좋은 도시를 뽑는다는 것 자체가 도토리 키재기라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여기에서도 꾸준하게 1등을 차지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말해준다고 하겠다.




일단, 해발 900m가 넘는 높이가 다른 남인도 도시들과는 다른 상대적으로 선선한 날씨를 제공한다는 점이 가장 크다고 하겠다. 게다가 다른 도시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많은 정원 그리고 정원에 심겨진 나무들 덕분에 벵갈루루의 기온은 더 낮게 유지될 수 있다. 동쪽으로 약 300km 떨어진 남부 인도의 또 다른 대표 도시인 첸나이(첸나이는 벵골만에 인접한 항구도시여서 습도도 높다)와의 연중 평균 기온 대비 최소한 5도 이상 낮고 습도도 낮다.


뿐만 아니다. 인도 IT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기 전에도 이미 항공우주산업 등 첨단 산업의 메카로 자리를 굳건히 하면서 젊고 똑똑한 인도인들이 정착하여 새롭게 인생을 시작할만한 조건을 모두 갖춘 '미래의 도시'이다. 오죽하면 넷플릭스에 공개된 영화 '화이트 타이거'에서 자기의 주인 아쇽을 살해한 주인공 발람이 돈가방을 꼭 끌어안고 도착하여 정착한 도시가 벵갈루루였겠는가?


하지만, 현재 벵갈루루에 살고 있는 약 1,400만 명의 운 좋은 주민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도인들은 여름에는 살인적인 무더위에, 겨울에는 난방조차 되지 않는 썰렁한 집안의 냉기를 이겨가며 살아가야 한다. 추운 겨울밤을 버티기 위해 닥치는 대로 거리 곳곳에 모닥불을 피우면서 AQI기준으로 네 자릿수까지 치솟는 공기오염은 덤이다. 인도 정부가 발표한 살기 좋은 도시 리스트를 살펴보니 Top 10 도시 중에 북부 인도에 자리 잡은 도시는 구자라트의 아메다바드가 유일하다. 그런데, 구자라트는 힌두교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는 지역이다. 육식을 멀리하는 것도 모자라 음주도 사실상 금지되어 있는 지역이다. 미국에 유타주가 있고 솔트레이크 시티가 있다면 인도에 구자라트와 아메다바드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북부 인도에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쾌적한 환경에서 살고 싶다면 육식도, 음주도 포기해야만 하는 셈이니, 이래저래 인도는 살아가기 만만치 않은 나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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