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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Mar 08. 2022

국경선인 듯 국경선이 아닌듯한 국경선으로 나뉜 그곳

인도 도시 이야기(2): 라다크 지역

핵무기로 무장한 두 개의 강대국이 서로 국경선을 마주하고 있다. 이 두 개의 나라는 1962년을 포함하여 수차례 크고 작은 국경 분쟁을 경험했다. 가장 가깝게는 2020년에 두 나라의 군대가 맞붙었고 수십 명이 서로를 죽고 죽이는 충격적인 모습이 양국 TV를 통해서 방송되기도 했다.


이들 두 나라는 어디일까? 인도와 중국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 세계가 충격에 빠진 지금, 우리나라는 물론 다른 나라의 주요 뉴스도 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으로 가득 차 있다. 민간인에게까지 무차별 공격을 서슴지 않는 러시아군의 잔학한 행태, 우크라이나 군인들에게 생포된 채 울먹이는 나이 어린 러시아 병사들, 수십 킬로미터에 걸쳐 줄지어선 피난민의 행렬 등등... 안방에 편안하게 앉아 TV 화면 속에서 펼쳐지는 전쟁을 바라보는 나와 같은 시청자에게도 전쟁의 무서움과 참상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지금 불이 붙어 한창 타오르고 있는 동유럽의 화약고가 우크라이나 지역이라면, 서아시아에서 정치적, 군사적으로 가장 불안한 화약고를 꼽아보자면 단연코 인도와 중국이 접경하고 있는 인도 북서부의 라다크(Ladakh) 지역이다. 이 지역은 높은 고도로 인한 혹한의 기후 그리고 이로 인한 척박한 환경으로 악명이 높은 곳이다. 공짜로 줘도 싫다고 할 만한 이 쓸모없는 땅에 인도와 중국은 왜 이리도 집착하는 것일까?


바로 이 지역이 가진 전략적 중요성 때문이다. 라다크 지역은 파키스탄, 인도, 중국 등 이 지역의 3대 강대국이 국경을 맞대는 카슈미르(Kashmir) 지역의 일부분이다. 다 합하면 400여 개나 되는 핵무기를 보유한 이들 세 나라가 이 지역에서 서로 머리를 들이밀며 맞서고 있다. 일단, 중국 입장에서는 이 지역에 대한 주도권을 빼앗기게 되면 신장위구르 지역 내 이슬람 세력과 국경 밖 이슬람 국가와의 연대를 막을 방법이 없다. 중국이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일대일로'라는 경제통상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도 이 지역이 필요하다. 한편, 라다크 지역 인구 두 명중 한 명은 무슬림인 마당에, 카슈미르는 물론 라다크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파키스탄이 눈에 불을 켜고 버티고 있으니 인도 입장에서도 물러서기 어려운 전략적 요충지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슬아슬한 이 지역의 상황은 믿기 어려운 코미디 같은 이유 때문에 수십 년 동안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 지역에서 인도와 중국의 영토를 나누는 국경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수백 개의 핵무기를 가진 아시아 양대 군사대국이 확정된 국경선도 없이 해발 수천 미터 산악지역에서 으르렁 거리면서 대치하고 있는 것이다.


우습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무시무시한 이 상황은 인도 대륙은 물론 인도차이나 지역까지 식민지배하던 영국이 라다크 지역을 포함한 상당수 지역에서 인접국(이자 당시 신생국가였던) 중국과의 국경선을 합의하지 않은 채 1947년에 갑작스럽게 철수하면서 발생했다. 조금 심하게 말해서 급하게 이삿짐 싸서 떠난 식민 지배국(영국)이 화장실에 한가득 싸놓은 똥덩어리(확정하지 않은 국경선) 때문에 애꿎은 식민지배 피해 국가(인도, 파키스탄)와 그 인접국(중국)이 서로 피 터지게 싸우고 있는 것이다.


2020년 5월 인도와 중국 군대가 무력 충돌한 이후 2021년 1월까지 수차례 간헐적인 충돌이 이어지면서 인도와 중국 양측에서 수십 명이 죽고 그보다 더 많은 인원수가 크게 다쳤다. 이 지역에서는 살상 무기를 휴대하지 않는다는 양국 간 합의에 따라 양측 군대는 중화기는 물론 개인용 살상 무기도 소지하지 않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나 많은 사상자가 나왔을까?


총이나 폭탄 대신 쇠못이 박힌 몽둥이나 돌멩이, 도끼와 창을 집어 들고 죽기 살기로 싸웠기 때문이다. 핵무기와 초음속 전투기로 무장한 나라의 병사들이 신석기시대 원시인처럼 육탄전을 벌이는 바람에 수십 명의 양측 젊은이들이 문자 그대로 '맞아' 죽거나 다쳤다. 사람이 얼마나 잔인하면 (또는 공포에 질리면) 다른 사람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때릴 수 있는 걸까? 내가 상대방을 먼저 때려죽이지 않으면 내가 맞아 죽는 끔찍한 상황 속에서 인간은 한없이 잔인해질 수 있었으리라...


양 국가는 죽거나 다친 병사들을 뒤늦게 영웅으로 만드는데 몰두했다. 하지만, 비참하게 죽어간 젊은 병사들은 다시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유가족의 손아귀에는 조잡하게 만들어진 무공훈장 하나만 덩그러니 남겨졌을 뿐이다.


척박한 환경으로 인해 인도를 찾는 여행객 중에서도 가장 용감한 사람들만이 찾는다는 라다크... 한쪽에서는 유목민과 양떼들이 평화롭게 노닐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몽둥이와 돌멩이로 사람들을 때려죽이는 싸움이 일어나는 이곳... 남한과 비슷한 면적에 인구는 30만이 채 되지 않는 척박하고 황량한 이 지역을 사천만 명이 거주하는 드넓은 우크라이나와 비교한다면 많이 무리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무서운 욕심이 어리고 착한 젊은이들을 어이없는 죽음으로 내모는 비정한 땅이라는 점에서, 라다크와 우크라이나는 다른 듯 무척 많이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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