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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Mar 16. 2022

어머, 우리 '인도'가 달라졌어요

인도 도시 이야기 (3) : 바라나시

[# 1] 우리나라에서는 대선, 인도에서는 5개 주에서 지역 선거


2022년 3월, 우리나라에서는 대선이 마무리되면서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고, 인도에서는 5개의 주(州)에서 지방선거가 열리면서 새롭게 주지사(Chief Minister)가 선출되었다. 총 28개의 주로 이루어진 거대 국가 인도는 매년 두어 개의 크고 작은 선거가 항상 열린다. 이번에 열린 선거처럼 주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선거는 28개 주에서 동시에 치러지지 않고 동서남북에 흩어진 네댓 개의 주에서 치러지게 된다. 이번에 지방선거가 열린 주는 인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우타르 프라데시, 인도의 곡창지대인 펀잡, 북동부의 작은 주인 마니푸르, 아라비아 해 연안의 관광중심지 고아, 그리고 북부의 우타라칸드 이렇게 5개 지역이었다.


선거 결과를 보도하는 인도 현지 방송은 (인도 방송들이 항상 그러하듯이) 정신없이 번쩍거리며 스쳐 지나가는 자막과 앵커들의 하이톤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저녁 늦은 시간 텔레비전을 통해서 선거 결과를 살펴보니 집권 여당인 BJP(Bharatiya Janata Party)가 펀잡을 제외한 나머지 4개 주에서 과반을 넘게 득표하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199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세력이 시들어가던 과거 집권여당 '의회당'은 이번 선거에서 그야말로 궤멸에 가까운 패배를 맛보았다. 사실상 '의회당'과 그 추종세력의 정치적 생명이 끝난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 2] 힌두교 근본주의 세력(RSS)과 집권여당(BJP)의 끈끈한 관계


현재 인도 총리인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총리가 소속된 BJP는 공식적인 창당일은 1980년 4월이지만 그 이념적 뿌리는 1925년에 조직된 RSS(Rashtriya Swayamsevak Sangh, 전국자원봉사자협회 정도로 해석된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자원봉사자협회'라는 평이한 이름을 갖고 있는 이 조직을 우습게 봐서는 안된다. 이 조직을 정확하게 이해해야만 현대 인도의 정치와 사회를 이해할 수 있다. 인도 전역에 약 6백만 명의 회원을 가진 이 조직의 이름은 평범해 보이지만, 실상은 극우 힌두 우월주의자들의 조직이다. 마하트마 간디의 평화주의적 사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를 살해한 범인 또한 RSS와 연계되어 있었다. 현재 BJP의 주요 인물들은 공공연하게 이 조직과 연계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인도 중산층의 마음을 파고들기 시작한 BJP는 1947년부터 아버지(자와할랄 네루), 딸(인디라 간디), 손자(라지브 간디)로 이어지는 무려 37년간의 인도 의회당(Congress Party)의 집권 시대를 끝내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조금 더 일반화해서 표현하자면, 영국에서 교육을 받은,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하지만 사회주의적 사상에 경도되었던 과거의 집권세력이 인도 국내에서 교육받거나 대개의 경우 대학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영어 사용에 익숙하지 않고 현지어(vernacular)에만 익숙한, 힌두교 우월주의 세력에 의해 교체되어 가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 3] 우타르 프라데시, ‘문제적 남자’를 다시 주지사로 뽑다


이번 선거에서 인도 사람들이 가장 주목한 지역은 단연코 우타르 프라데시이다. 2억 명이 넘는 엄청난 인구, 전체 28개 주 중에서 네 번째로 넓은 면적에 농업을 주요 산업으로 하는 비교적 소득이 높지 않은 지역이다. 워낙에 넓다보니 유명한 도시들이 많다. 필자처럼 인도에 거주하고 있는 해외 주재원이라면 뉴델리 인접한 위성도시인 노이다와 그레이터 노이다(이곳에 우리나라 기업인 LG가 위치해 있다)가 떠오른다. 그리고, 인도를 잠시 방문하는 여행객이라면 절대로 빼먹을 수 없는 타지마할이 소재한 아그라, 그리고, 한번 방문하면 사랑에 빠지거나 아니면 증오하게 된다는 도시 바라나시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인도 현지인들에게 우타르 프라데시는 좀 남다른 곳이다. 일단, 현재 이곳의 주지사는 요기 아디티야나트(Yogi Adityanath)라는 현직 힌두교 승려이다. 1972년생으로 나이도 이제 50대 초반인데, 2017년 불과 40대 중반의 나이에 주지사의 무덤이라는 이곳의 주지사 자리에 올랐다. (1985년 이후 우타르 프라데시에서 재선에 성공한 주지사는 없었다. 그 때문에 주지사들의 무덤이라 불렸다.) 40년 만에 인도 최대의 정치적 격전장에서 당당하게 살아 돌아 옴으로써 집권 여당인 BJP에서 그의 정치적 위상은 몇 곱절 높아졌다.


2017년 당시, 힌두교도가 아닌 사람들은 모두 바닷물에 빠져 죽어야 한다는 둥, 이슬람 성전마다 힌두교 신상을 설치해야 한다는 둥 듣는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할 만한 극단적인 힌두 우월주의 발언으로 대중적 인기를 모았던 사람이 요기 아디티야나트였다. 그런 그가 인도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구도 많고, 따라서 이 지역에서 선출되는 국회의원수도 많고, 따라서 정치적인 중요성이 가장 큰 이곳의 주지사가 되었을 때부터 이미 몇몇 인도인들은 이 힌두교 승려/정치인을 우려가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북부 내륙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외국인 투자에서 항상 소외되고 그 덕분에 농사짓는 것 밖에는 할 게 없는 빈곤한 지역, 여기에 갠지스 강과 바라나시를 끼고 있어 종교적 근본주의가 자라날 천혜의 환경을 갖춘 곳에서 5년간 주지사 노릇을 하면서 그는 더욱더 우경화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힌두 근본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적 움직임에 대해서 우타르 프라데시 유권자들은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 것이다.




[# 4] 어머나, 우리 '인도'가 달라졌어요...


언제부터인가 인도라는 나라가 바뀌어가고 있다. 종교적 관용과 다원주의를 그 특색으로 하는 힌두교의 근본정신은 사라지고, 인도를 더 이상 인도(India)로 부르면 안 되고 힌두스탄(힌두교도들이 사는 땅이라는 뜻)으로 국명을 바꾸자는 둥, 이슬람과 기독교도들에게는 인도 시민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둥, 서슬 퍼런 차별의 칼날을 앞세운 '힌두이즘'만 남은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국가를 통합하고 국민들을 끌어안아야 할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뒷짐만 진채 모른 척이다. 어차피 전체 인구의 약 85%가 힌두교도이니 소수에 불과한 이슬람교도와 가독교도 등을 궁지로 몰아붙일수록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권여당의 지지도는 더 올라갈 테니 굳이 나설 필요가 없는 것이다.


총리를 포함한 정부 공직자가 하원 의원직도 겸임할 수 있는 내각제 국가인 인도. 그렇다면 지금 총리인 나렌드라 모디는 어느 지역구를 대표하는 하원의원일까? 한번 맞춰보시기 바란다. 그렇다. 그는 2014년부터 우타르 프라데시주 바라나시를 대표하는 하원의원이다.(인도에서의 상원의원은 크게 실권은 없는 약간 명예직 같은 자리이다) '왜 바라나시를 선택했을까?'라는 질문이 떠오르셨다면 질문이 좀 틀렸다. 왜냐하면 정확한 질문은 '왜 바라나시일 수밖에 없었을까?'이어야 한다. 힌두교 근본주의자에게 가장 중요한 도시, 힌두교에 대한 믿음이 깊은 신도들은 생을 마감하기 위해 죽기 직전에 제 발로 걸어오는 신성한 도시, 이 도시에서 화장되어 도시를 관통하는 갠지스 강에 뿌려지면 환생의 악순환을 끊고 해탈한다는 믿음의 도시... 바라나시가 바로 그런 도시이기 때문에 나렌드라 모디가 이 도시에서 출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얼핏 보면 그저 평범한 관광도시 내지는 종교 성지로 보였던 도시이지만, 지금처럼 인도라는 나라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힌두교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점령되어 가는 시기에는 지극히 종교적인 바라나시라는 도시가 지극히 정치적인 도시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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