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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Nov 06. 2022

서울중앙지검에서 내 인생 최초의 검찰조사를...(1)

내 인생의 첫 OOO 시리즈 1탄~~

회사를 다니다 보면 태어나서 처음 하게 되는 일이 제법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첫 경험은 비교적 또렷하게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게 된다. 임원들 앞에서의 첫 발표, 최초의 해외출장, 처음으로 상사에게 '깨진' 일, 생애 첫 승진(또는 승진 누락), 첫 해외 수주(또는 해외 수주 실패), 첫 소송이나 중재와 같은 송사, 첫 노사분규 등등... 게다가 그 일이 대부분의 직장인은 경험할 일이 별로 없는 검찰 소환조사 그것도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서울 중앙지검 소환조사라면  기억은 아마 오랫동안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도로 발령받기 몇 년 전, 서울에 있는 회사 본사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당시 야간 대학원 과정에 재학 중이라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그야말로 시계가 오후 6시를 가리키자마자 사무실에서 빠져나와 학교로 달려가야만 하는 '샐리던트(salident)' 생활을 거의 2년 가까이 계속해오고 있었다.


그날은 전공필수 수업 중 하나가 있는 날이었는데, 하필이면 중간고사 대신 약 45분에 걸친 사례 발표 및 Q&A 시간을 가진 후 그 점수를 중간고사 점수로 대체하기로 되어 있는 날이었다. 한마디로 수업을 빠질래야 빠질 수 없는 날이었다. 마음이 급해져서 6시가 다가오기 전부터 시계를 흘깃거리며 앉아 있었는데, 내 팀의 팀원 중 한 명인 김차장이 상당히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내 자리로 다가와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팀장님. 방금 전에 전화를 한통 받았는데요. 서울 중앙지검에서 OOO사에 대한 대출 문제로 저희에게 자진 출석하여 참고인 조사를 받을 것을 요청했습니다."

"검찰에서? OOO사 때문에? 아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얼마 전부터 OOO사가 불법 정치자금을 조성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건 팀장님도 소문 들어서 알고 계시죠? 그리고, 그 회사에게 저희 은행이 대출 300개 깔아주고 있는 거 아시죠? (은행원들은 습관적으로 1억 원을 1개라고 부른다)"

 "소문은 들었어요. 하지만, 우리 대출건은 매년 신평만 마치면 사실상 자동 리볼빙되는 건이잖아요. 게다가 그 회사는 우리 금리가 비싸다고 몇 달째 전혀 인출도 안 해서 현잔도 제로잖아요.."(은행들은 대부분 1년에 한 번씩 회사에 대한 신용평가를 실시하며 이를 기반으로 회사에 대한 대출금리를 정한다. 신용평가 이후 등급에 특별한 변동이 없으면 회사의 신청서만 받아서 대출 상품을 1년 연장해준다. 만약 그 회사가 실제 대출을 인출하지 않으면 현잔, 즉 현재 잔액은 당연히 0원이다.)

"네. 그렇긴 한데요. 검찰에서는 저희 은행이 그 회사 앞으로 승인한 대출이 부정한 방법으로 승인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네? 아니... 소설을 써도 그런 터무니없는 소설을.. 하.. 나참"


이미 시계는 여섯 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제시간에 학교에 도착하려면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김 차장의 이야기를 듣자 하니 검찰 수사관이 몇 분 전에 전화를 걸어서 매우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자진 출두'를 요청했다는 거였다. 대출과 관련된 자료를 지참하여 자진 출두하지 않으면 '참고인' 자격으로 정식 소환하는 절차에 들어갈 건데, 그러면 피차 피곤하니 알아서 나오라는 이야기였다.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이번 중간고사 시험을 보지 못하면 이 과목에서 몇 점을 맞을지 이 과목을 패스할 수 있을지 조차도 알 수 없다. 그렇다고 '난 시험 보러 가야 하니 당신이 알아서 검찰에 출두해서 조사받으쇼'라며 부하직원을 사자굴로 밀어 넣을 수는 없었다.


"일단, 내가 빨리 가서 시험 보고 중앙지검으로 갈 테니 그동안 김 차장이 답변하고 있어요. 내가 최대한 서둘러서 시험을 끝내볼게요..."




학교에 도착했지만 난관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당초에 다른 학생 한 명이 발표를 마친 후 내가 발표를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수업이 시작되기 직전 담당교수에게 조용히 다가가 사실 그대로 이야기하고 발표 순서를 당겨달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검찰에 출두한다고요?' 교수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 교수도 수십 년간 교직에 재직하면서 시험 날짜나 순서를 바꿔달라는 요청을 제법 받았겠지만 아마도 '검찰에 출두해야 해서 시험 순서를 조정해야 한다'는 요청은 내가 처음이 아니었을까 한다.


정신없이 구술시험을 끝내고 교문을 빠져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퇴근시간을 제법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안암동에서 서초동까지의 거리는 제법 멀었다. 마음은 급한데 꽉 막힌 서울의 밤거리는 답답하기만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듬성듬성 불이 켜져 있는 중앙지검 정문에 겨우 도착했다. 경비실을 통과하여 당초에 안내받은 담당 검사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 넓지 않은 사무실은 불필요한 인테리어는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미니멀리즘의 끝판왕이었다. 수사관 2명과 담당 검사 1명만으로도 이미 꽉 찬듯한 조사실에 우리 팀 김 차장을 포함하여 당초에 대출한도 승인을 냈던 직원을 포함하여 우리 회사 직원 4명이 담당 검사 건너편에 일열횡대로 앉아 있었다. 40대 아저씨들이 검은색 양복을 입고 딱딱한 철제의자에 주눅들어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엄숙하다 못해 위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에 그다지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앉으세요', '신원 확인하겠습니다'... 이런 사무적인 말투들 몇 마디면 충분했다. 쭈뼛거리는 내 대답을 받아 적는 담당 검사의 타이핑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조용하다 못해 적막한 조사실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오로지 타이핑 소리 그리고 데스크톱의 팬이 돌아가는 소리뿐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말로 형언하기 힘든 중압감이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우리 은행이 그 회사에 부정한 방법을 대출승인을 해줄 이유도 없었고 나의 전임자 직원들이 그런 일을 할 이유도 없다는 것을 100%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확신과 조사실의 분위기는 별개의 문제였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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