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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Aug 14. 2022

국뽕 유튜브 채널이 아쉬운 이유

너희들은 더 이상 앞서 달리는 말들의 엉덩이만 바라보지 않게 될 거야..

[# 1] 국뽕 유튜브 종류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네요..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이끌려 며칠 전부터 이른바 '국뽕 유튜브' 채널들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이런 국뽕 유튜브 채널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건대 이런 국뽕 유튜브 채널이 은근 중독성 있다.ㅎㅎ)


우선, 유튜버가 자신의 얼굴은 드러내지 않고 그저 일본이나 중국과 관련된 신문 기사 한두 줄을 길게 늘여 10여분 가량의 영상으로 만드는 채널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영상의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중국이나 일본을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담긴 내용이나 편집도 조악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이보다 좀 더 세련되게 진화한 국뽕 유튜브 채널도 많다. 중국이나 일본 현지에 거주하면서 제법 논리적으로 조곤조곤 자신이 사는 나라를 비판하고 한국을 칭찬하는 유튜버도 많았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수긍이 가는 내용도 적지 않았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 등장해서 '한쿡 음식 마씨써요', '써울은 지하철이 조하요', '써울은 안존한 도시예요' 등등을 외치는 채널도 제법 많았다. 한국인과 결혼해서 사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만든 채널도 한두 개가 아니었다. 할리우드의 유명 여배우가 일본 기자로부터 무례한 질문을 받고 사이다 발언을 했다는 이야기, 중국의 유명 배우가 한국에서 영화 작업을 하고는 감동을 받았다는 이야기, 오징어 게임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엔터테인먼트 산업계가 한국 작품을 주목하고 있다는 이야기... 계속 들여다보고 있으면 우리나라가 지상 최고의 낙원이고 다른 모든 나라는 우리보다 못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여권(passport) 파워가 세계 몇 등이라는 둥, 인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감동을 받았다는 콘텐츠는 그야말로 단골 중에 단골이요, 사골로 푸욱 우려먹을만한 내용이었다.


광복절이 다가오기 시작해서인지 최근 들어 유난히 늘어난 내용은 바로 우리나라 경제가 조만간 일본 경제를 추월하게 될 거라는 내용의 영상들이었다. 이미 지상파에서도 상당히 심도있게 다뤘던 내용인 데다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의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 '일본 쇠락설' 내지는 '일본 개발도상국설 추락설' 등이 최근 몇 년 사이에 급격하게 퍼지면서 이러한 내용을 담은 유튜브 클립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듯했다. 국뽕 유튜버들 뿐만 아니라 유명 대학의 교수, 경제전문가 및 경제 분야 기자들도 덩달아 '이제 일본은 곧 쇠락한다', '한국이 일본을 곧 추월한다', '2027년이면 1인당 GDP 기준으로 한국이 일본을 추월한다' 등등의 내용을 쏟아내고 있었다.


[# 2] 조금은 기술적이고 복잡하지만 미리 알고 있어야 할 내용들...


일단 듣고 있자니 기분은 좋아졌다. 솔직히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를, 그것도 일본을 따라잡게 된다는데 기분 나쁠 이유가 전혀 없으니까 말이다. 일본의 국가부채가 총 GDP의 250%가 넘는다는 둥(국가 전체가 2년 반 동안 벌어서 갚아야 국가부채를 다 상환할 수 있는 수준이니 꽤 심각한 수준이기는 하다), 일본은 아직도 도장을 찍고 팩스를 주고받는 등 1990년대에서 조금도 발전하지 못했다는 둥, 디지털화에서 뒤진 일본의 경제는 미래가 없다는 둥... 이거는 뭐 일본이 거의 동네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지경이다. 하지만, 국뽕 유튜버들이 침을 튀겨가며 쏟아내는 내용들을 듣고 있자니 마냥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아니, 좀 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기분이 무거워졌다고 해야 올바른 말일 거 같다.


첫 번째로, 몇몇 유튜버들은 구매력 기준(PPP) 1인당 GDP 금액으로 우리나라가 이미 몇 년 전부터 일본을 추월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몇 년만 지나면 그 차이가 더 벌어질 거라고 신이 나서 이야기하고 있다. 2020년 양국의 1인당 GDP(구매력 기준)가 대략 4만 5천불 정도로 엇비슷하니 일단 틀린 말은 아니다. 국뽕 유튜버들 입장에서도 유튜버 시청자들이 듣기 좋은 이야기이니 힘주어 강조하고 싶을 거다. 하지만, 이들 국뽕 유튜버들은 한 가지 사실을 (의도적이던 의도적이지 않던) 절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바로 대만의 구매력 기준 1인당 GDP가 우리나라보다 거의 1만불 이상 높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대만의 1인당 GDP(구매력 기준)은 이미 약 5만 4천불 수준이다. 우리나라를 넘어선 지 오래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인도의 경우에도 2,000불에 불과한 1인당 GDP를 구매력 기준으로 환산하면 순식간에 7,000불에 육박한다. 인도의 물가가 낮기 때문이다. 좀 더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은 (나라가 전체적으로 못살기 때문에) 물가가 낮은 국가들이 자신들의 생활수준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을 때 써먹는 개념이다. 그러니, 구매력 기준으로 1인당 GDP가 일본을 추월했느니 못 했느니 이런 이야기를 그렇게 까지 자랑스럽게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정정당당하게 경상가격 기준 1인당 GDP로 겨루는 게 진검승부라는 이야기이다. 참고로 세계은행(World Bank)이 추정한 2021년 기준 일본의 경상가격 기준 1인당 GDP는 39,285불, 우리나라는 34,757불로서 약 4,500불 정도 차이가 난다.


둘째로, 환율의 변동으로 인해 미 달러화로 표시된 금액에서 왜곡이 일어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2012년의 경우 일본의 1인당 GDP는 약 49,145불이었고, 우리나라는 약 25,466불이었다. 쉽게 말해서 우리나라가 일본의 딱 절반 수준이었다. 그런데 정확하게 10년이 경과한 지금 양국의 차이는 불과 4,500불로 줄어들었다. 10년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우리나라가 일본의 절반 수준에서 일본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경제가 성장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2012년 특히, 2012년 하반기는 USD/JPY 환율이 1불당 70-80엔 내외를 오르락내리락하던 엔화 초강세의 시기였다. 그렇다 보니 미 달러화로 환산된 일본의 1인당 GDP가 엄청나게 높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2022년 8월인 지금 환율은 1불당 약 133엔 내외를 기록하고 있다. 엔화가 기록적인 약세인 것이다. 그렇다 보니 미 달러화로 표시된 일본의 1인당 GDP가 매우 낮아 보이는 것이다. 실질적 생활수준은 많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미달러화로 환산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 3] 국뽕 유튜버들의 채널이 마냥 좋지만은 않은 좀 더 근본적인 이유들...


셋째로, 양국 경제의 미래 경쟁력과 전체적인 성장의 방향성을 고려해 본다면 국뽕 유튜버들의 주장에 나도 동의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나의 부모 세대는 일본 식민지배를 받았고, 나와 내 아내의 세대는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열심히 노력해서 일본을 뒤쫓는 '부지런한 2등 국가'를 만들었다. 조만간 나와 내 아내의 세대는 노동시장에서 은퇴하고 호비와 호지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에게 우리나라를 물려줄 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다음 세대가 살아갈 한국은 어떠한 나라라면 좋을까? 내가 국뽕 유튜버들을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던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자. 국뽕 유튜버들이 그렇게 소리 높여 외치던 대로 우리나라가 1인당 GDP 기준으로 일본을 따라잡았다고 가정해 보자. 그럼 그다음에 뭐를 할 건가? 한마디로 so what? 어쩔티비 저쩔티비? 그래서 어쩌자는 건데?.. 이 질문에 대해서는 어떠한 국뽕 유튜버들도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었다.


일본을 앞질렀으니 ‘이제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라고 선언하고 국민 전체가 '화이어족'이 되어서 은퇴하자는 건가? 일본을 앞지르면 이 세상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고 지상천국이라도 구현된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일본을 앞지르는 순간 우리나라는 국제사회로부터 더 크고 더 중요하고 더 어려운 역할을 요구받게 될 것이고 그것을 피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당장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해외 원조의 예를 들어보자. 우리나라는 1년에 약 4조 원 정도를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에 원조해주고 있다. 방글라데시 같은 아시아 국가는 물론이고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아프리카 빈국에게도 우리나라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조성한 공적 원조가 제공된다. 일본의 경우는 어떨까? 인도라는 나라 하나에만 매년 (우리나라 돈으로) 약 3조 원가량을 원조하고 있다. 일본은 인도 한 나라에만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 제공하는 금액에 맞먹는 엄청난 금액을 원조하고 있다는 말이다. 일본이 전 세계에 제공하고 있는 원조 총액은 차마 여기 적지 않으련다. 비교하면 너무 쪽팔리니까. 관심 있는 분들은 구글에서 찾아보시기 바란다. (일본과 1인당 GDP 차이가 4,500불에 불과할 정도로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되었는데 아직도 우리나라의 많은 기성세대들은 “우리나라에도 가난한 사람들 많은데 왜 그런 사람 안 도와주고 외국에 원조를 주냐?”는 답답한 소리를 한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부모세대를 끔찍한 배고픔과 전쟁 피해로부터 구원해준 것이 외국으로부터 제공된 막대한 원조라는 사실 자체를 까맣게 잊어먹고 있다.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 도움받은 거를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에게 되돌려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는 거다. 배은망덕도 이만한 배은망덕이 없다.)


[# 4] 우리의 자녀 세대가 무거운 왕관을 쓰게 되었을 때...


자, 짧게 줄여서 요점만 이야기해보자.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소득이 앞서게 된다는 것은 노쇠하고 병든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부담했던 여러 가지 의무를 자신의 어깨로부터 하나둘 내려놓기 시작할 때 그걸 우리나라가 대신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의 원조에 의존해왔던 그 수많은 빈곤국가에 막대한 원조를 제공할 국제적인 책무, 전제주의 정권이 동북아시아에 더 이상 세력을 확장하지 못하도록 국제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 기후변화와 환경보호, 여성인권 신장과 장애인 차별 철폐, 소수자 보호와 같은 글로벌한 이슈에서 좀 더 적극적인 역할도 요구받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일본이 그동안 써왔던 아시아의 1등 국가라는 왕관을 우리나라가 물려받게 될 텐데, 그 엄청난 왕관의 무게를 우리의 자녀 세대가 견뎌야 한다는 의미이다.


나는 호비와 호지 그리고 그들의 친구 세대가 무거운 왕관을 기꺼이 머리에 쓰고 행복한 고민을 하는 세대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제 그들이 세계를 누비는 때가 오면 G7 국가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가로 일본을 빼고 우리나라를 넣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국제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다. IT 분야를 포함하여 다양한 신산업 분야에 있어서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은 믿을만한 거래처이자 파트너로서 노쇠한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것이다. 국제사회가, 글로벌 NGO들이, 그리고 세계의 유수한 오피니언 리더들은 우리나라가 좀 더 진취적이고 진보적인 자세로 이른바 '글로벌 이슈'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어젠다를 선도해 줄 것을 희망하게 될 것이다.


우리 호비와 호지의 세대가 이런 요구를 받게 될 때, 겁먹지 말고, 쫄지 말고, '이런 문제들은 우리나라처럼 작은 나라가 관심 가질 문제가 아니야'라는 '소국 마인드'도 갖지 말고, 마치 나의 일처럼 달려들어서 고민하고 궁리하고 대안을 제시하여 다른 나라들을 이끌어가기를 희망한다. 우리 세대가 앞서 달리는 말(horse)들을 뒤따라가기 바쁜 말들이었다면 호비와 호지의 세대는 다른 말들을 이끌며 맨 앞에서 시원하게 달리는 야생마의 우두머리가 되기를 희망한다. 우리 세대들은 평생 동안 눈앞에 달리는 다른 말들의 엉덩이밖에 보지 못했지만 호비와 호지의 눈앞에는 (다른 말들의 엉덩이가 아닌) 끝없이 펼쳐진 넓은 광야와 눈이 부시게 넓은 설원 그리고 파도가 넘실거리는 푸른 바닷가가 펼쳐져 있기를 기대한다. 남들이 간 길을 뒤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몸소 다른 사람들을 이끌며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 어떠한 발자국도 없는 눈 위에 첫 발자국을 내딛는 것, 그것이야 말로 오직 왕관의 무게를 견뎌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멋진 모험이고 진정한 행복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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