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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Jul 05. 2022

“아이들에게 목걸이랑 반지 하나 선물해줘야겠어요.”

이렇게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완성해서 어른이 되어가네요.

아이들이 자라면서 아이들 생일에 부모들의 할 일이 많이 달라진다. 아이들이 어리면 모든 것은 어른들이 알아서 결정하고 진행한다. 좀 심하게 말해, 첫돌은 물론이고 서너 살이 될 때까지도 아이들의 생일에 실제 주인공들은 어른들이다.(아직도 ‘첫돐이라고 써야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신다면 그대는 옛날사람..ㅠㅠ ‘표준어 규정 제6항’에 따라 ‘첫돌’과 ‘돌잔치’가 표준어로 통일된 지 꽤 오래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한 살짜리 아이의 미래를 예측한답시고 아이들 앞에 이러저런 물건들을 늘어놓고(옛날에는 쌀, 붓, 돈, 실 등을 놓아두는 애교스러운 수준이었다면 요새는 마이크, 골프공, 마우스도 등장했단다) 부모가 마음에 드는 물건을 아이가 집어 들 때까지 돌잡이를 시키곤 한다.


“철수야. 왜 자꾸만 촌스럽게 쌀을 집어? 다른 것 좀 집어봐.. (아이 앞으로 지폐를 슬쩍 밀어 넣으며…)”


아이들이 경험과 생각이 넓어지면서, 가족들의 경험과 감정의 폭이 깊어지면서 아이들의 생일을 기념하는 방식도 바뀐다. 간단하게 외식만 하고 끝내는 경우에서부터 조금은 비싸고 근사한 선물을 사주거나 아예 아이들에게 여행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선물하는 데까지 발전한다.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들 중에서는 가끔 생일을 가족이 아닌 자기 친구들하고 보내고 싶다고 당당하게 선언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자, 그렇다면 아이들이 미성년자라는 시기를 벗어나 자기들 딴에는 어른 대접을 받(고 싶어하)는 18살 생일이 되면 무슨 선물을 해주어야 하는 걸까?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처럼 회사와 집을 오가는 생각 없는 아빠(필자)는 그런 고민을 전혀 하고 있지 않았는데, 엄마(필자의 아내)는 첫째 딸 호비가 18번째 생일을 맞기 한참 전부터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나 보다. 첫 아이의 생일 몇 주전부터 여기저기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고 있길래 무심히 흘려보았는데, 호비의 생일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첫째 딸 생일이 다가오는지 안 오는지도 모르고 있는 나에게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혼잣말 한마디를 툭 내려놓는다.


"그냥 생일도 아니고 열여덟 살 생일인데 뭐 좀 제대로 된 선물 사줘야 할 텐데..."


20년 같이 살다 보니 '척' 하면 '착'이다. 아내가 보내는 신호를 나도 단박에 눈치를 챘다. 호비의 생일 선물을 고르기 위해 아내의 고민은 이미 끝났고, 선물도 이미 결정했으며, 나에게 "이거 어때?"라고 물어볼 일만 남았으니 눈치 없이 "그거 별로인데."라고 말하지 말고 무조건 "응. 그거 좋은 생각이야."라고 대답해야 할 '답!정!너!의 시간'이 다가왔다는 신호이다.


아내가 결정한 첫아이 열여덟 번째 생일 선물은 작은 목걸이였다.


가족 전체가 외출 삼아 다른 한국인 주재원 가족들이 추천해준 보석상에 들렀다. 매장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사방 벽면에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는 목걸이, 귀걸이, 브로치, 반지 등등을 보자 첫째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다. 몇 달만 지나면 16살 생일을 맞는 둘째 호지도 꼼꼼하게 보석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눈치 빠른 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호지가 알아챈 것이다. 아빠와 엄마에게 말만 잘하면 자기도 얼마 남지 않은 생일 선물로 목걸이나 반지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꽤 오랜 시간 고민하고 엄마와 의견을 나눈 호비는 0.1캐럿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는 얇은 목걸이를 선택했다.(다이아몬드는 등급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게다가 이곳은 인도이다. 수십만 원 이내의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것도 많다.) 보석상 주인은 '튼튼하게 제작되었으니 잘 때나 샤워할 때 풀어놓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했지만 집으로 돌아온 호비는 목걸이를 풀어 곱게 모셔놓았다.


'내일 학교 갈 때 목걸이 하고 가야지...'


몇 달이 지나 돌아온 호지의 16번째 생일.

언니 생일에 갔었던 보석상에 다시 들렀고, 호지 역시 꽤 오랜 시간을 고민하고는 작은 반지 하나를 골랐다.




플라스틱 장난감 반지만 사줘도 깔깔거리며 세상을 다 얻은 듯 좋아하던 호비와 호지는 이제 제법 의젓하고 진지하게 자신이 선호하는 디자인의 보석을 고르는 나이가 되었다. 뚜렷하고 개성 강한 자신만의 기호가 생긴 것이다. 한 편으로는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신만의 기호와 의견이 갈수록 뚜렷해지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낯선 감정과 섭섭함이 느껴진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엄마 아빠와 24시간을 같이하며 세상 모든 일에 의견을 구하곤 했던 아이들이 이제는 자기 방에 한번 틀어박히면 몇 시간이고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며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다. 뭐라고 한두 마디 말을 꺼낼 때 엄마 아빠의 의견에 따르는 것은 고사하고 부모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기만 하면 감사한 실정이다. 아이들이 방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만의 동굴로 처음 들어가던 때의 섭섭함은 사라졌지만 나와 내 아내는 여전히 아이들의 빈 자리가 그립다. 훌쩍 자라 버리기 이전의 아이들을 다시 보고 싶다. 부모와 자식 간의 감정은 이렇게도 복잡하고 오묘한가 보다.


조금 게으르고 덜렁거리는 성격을 빼면 나무랄 곳이 없는 첫째,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의견이 강한  빼고는 모든  만점인 둘째... 이렇게 아이들은  조금씩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기호를, 자신이 미래를 완성해가며 아이에서 소녀가 되었고 이제 소녀에서 어른이 되어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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