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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Jun 04. 2022

뉴델리의 강아지는 어쩌다 인도의 유명가수를 죽였나?

인도 도시 이야기 (5) 뉴델리와 펀잡

2022년 5월 말.


인도의 수도인 뉴델리에서 공무원 전체 서열 3위에 해당하는 행정부시장으로 멀쩡하게 잘 근무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인도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인 북서부의 라다크(Ladakh)로 발령이 났다. 그의 아내도 역시 고위 공무원이었는데, 북동부에 위치한 아루나찰 프라데시로 발령이 났다. 말단 공무원도 아니고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엄청난 세력을 뿜뿜하는 인도의 고위 공무원이, 그것도 부부 모두가 고위 공무원이었던 이들은 왜 갑자기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한직으로 발령 났을까?


바로 '개(dog)'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뉴델리 한 복판에 있는 공립 스타디움에서 잘 훈련하고 있던 운동선수들을 우르르 내쫓고는 텅 빈 경기장에서 평화롭게 자기 개를 산책시키는 어이없는 행태'를 며칠이나 반복하다가 언론에 발각된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비유하자면 서울시 행정부시장이 잠실 주경기장에서 훈련하고 있던 국가대표 선수들을 경기장 밖으로 쫓아내고서는 텅 빈 경기장 안에서 유유자적 자기 강아지를 산책시킨 셈이라고 보면 되겠다.




인도에는 속칭 VVIP 컬처라는 게 있다.


유명 정치인, 고위급 공무원들 그리고 대기업을 소유한 부호들이 마치 법 위에 존재하는 사람들인 양 일반 국민들이 지키는 각종 규칙을 가볍게 무시하고 제 멋대로 행동하는 행태를 말한다. 50살 먹은 뉴델리 행정부시장은 22세의 젊은 나이에 인도에서 가장 어렵다고 하는 일반행정고시(Indian Adiminstrative Service)를 통과하고 1994년에 공직에 입문했다. 2020년 기준으로 약 100만 명이 1,000개의 자리를 놓고 겨루는 시험이니 가히 세계 최고의 경쟁률을 자랑하는 시험이라고 하겠다. 이런 무지막지한 시험을 통과한 이들에게는 앞날이 보장된 거나 마찬가지이다.      


시험에 합격한 후 보통 10년 정도를 지방정부에서 근무해야 하는데, 강아지를 산책시키던 이 문제의 인물의 경우 인도 내 낙후된 지역 근무는 요리조리 피해 가면서 상당 기간을 수도 뉴델리에 있는 요직에서 근무했다. 수도 델리에서 좋은 보직을 거쳐 더 좋은 보직으로 옮겨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뇌물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가져다주었을지는 오로지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자신들은 '법 위에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국립경기장에서 인도 국가대표 선수가 훈련을 하든 말든 상관이 없어진다. 그들의 훈련보다 나와 내 아내가 강아지를 끌고 평화롭고 산책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해진다. 게다가 나에게는 선수들을 모두 내쫓고 혼자서 경기장을 독차지할 권한도 주어져 있다. 아무것도 나를 막을 것은 없는 것이다. 내가 눈치만 슬쩍 주면 경기장 관리책임자들이 알아서 선수들을 모두 내보내고 경기장을 문을 걸어 잠글 테니 내가 딱히 목소리를 높이거나 화를 낼 이유도 없다. 모든 사람들이 알아서 내 앞에서 설설 기니 말이다. 어디 이들 부부뿐이겠는가? 지금 이 시간에도 인도 전역에서 유명 정치인, 고위 공무원, 백만장자들이 각종 특권과 특혜를 누리며 일반 국민들 위에 군림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위세에 눌려 그 누구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공무원 부부는 지독히도 운이 없었다. 훈련 도중에 번번이 쫓겨나가던 선수 중 일부가 불만을 품고 언론에 제보를 했고, 이 제보를 받은 언론사가 텅 빈 운동장에서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이들 부부의 동영상을 찍어서 인도 전역에 방송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들 부부는 물론 이들 부부가 소유한 개까지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정말 코미디스러운(이라고 써놓고 '인도스러운'이라고 읽는) 상황은 그다음부터 펼쳐졌다. 인도 행정부시장은 뉴델리 시장이 아닌 중앙정부에서 임명하는 자리이다. 즉, 뉴델리 시장이 임명하거나 해임할 수 없는 자리라는 이야기이다. 게다가 중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IAS 출신 공무원의 신분은 보장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인도 중앙정부는 황급하게 이들 부부를 각각 인도의 북서부 끝과 북동부 끝의 2개 주로 발령을 내버렸다.


이름하야 'punishment posting'... 징벌적 발령이란다...


자. 그렇다면 이런 발령을 받게 된 그 2개의 주는 어떠한 반응을 보였을까?


몇몇 의식 있는 사람들은 '왜 뉴델리에서 사고 친 공무원들을 우리 지역으로 보내는가?'라며 불쾌감을 표시했지만, 이들 2개 주의 좀 더 솔직한 속마음은 이번 사태를 분석한 토론 프로그램의 말미에 튀어나왔다. 그 토론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루나찰 프라데시(공무원의 아내가 발령 난 지역)의 토론자가 이렇게 말했다.


"IAS 출신 공무원은 최고의 인재입니다. 우리 지역에 그분이 오는 것을 환영합니다.".


어차피 이들 부부가 강아지를 산책시키다가 물의를 일으킨 것은 금방 잊혀질테고, 이들 IAS 공무원이 가진 막강한 네트워크를 잘만 활용하면 자기네 지역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계산이었다.




VVIP 컬처가 문제가 되자, 호들갑스러운 '보여주기식 행정'이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도 정부가 재빨리 행동에 나섰다. 그동안 관례적으로 주요 민간인(예 : 기업인, 대중문화 인사 등)에게 제공하던 인도 경찰의 경호 서비스를 대폭 축소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렇다. 인도에서는 유명한 민간 인사에게도 경찰들이 경호를 제공한다. 워낙에 범죄율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렇게 경호를 대동하고 다니는 것이 자신의 지위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민간 인사들도 매우 빈번하게 자신의 연줄을 이용해서 경찰들에게 경호를 요구한다).


인도 북서부의 곡창지대인 펀잡주에서만 경찰의 경호를 받는 민간 유명인사들이 대략 400명이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경호가 대폭 축소된 바로 그다음 날.


인도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이민 간 후 유명 래퍼로 이름을 날리던 28살의 'Sidhu Moose Wala'라는  젊은이가 자신의 고향인 펀잡주를 방문했다가 28발의 총을 맞고 숨을 거뒀다. 유튜브에 올라있는 동영상의 누적 조회수가 무려 40억 뷰에 달하는 서남아시아 최고 인기의 래퍼가 백주대낮에 길거리에서 라이벌 갱들의 보복살인에 희생된 것이다. 사건이 발생하던 바로 그 순간 이 래퍼에 대한 경호 수준이 대폭 낮아져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경호 인력이 대폭 축소되었다는 것을 알아챈 라이벌 갱 조직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뉴델리에서 강아지를 산책시키던 부부가 인도의 서쪽 끝과 동쪽 끝으로 발령 나자 '그럼 강아지는 누가 데려가냐?'면서 이들 부부를 비꼬던 밈(meme)을 만들어내던 인도의 네티즌들... 이제는 뉴델리의 강아지로부터 시작된 나비효과가 엉뚱하게도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에서 래퍼가 살해되는 일로 불똥이 튀자 이 유명 래퍼를 추모하는 글과 밈을 만들어서 인터넷에 올리고 있다.


언제나 어디서나 그렇듯...


이 세상 모든 일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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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India Express. 2022. 5. 26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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