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교와 한국학교의 학기말 모습은 이렇게 달라요..
3월에 학기를 시작해서 이듬해 2월에 마치는 한국과 달리 대부분의 서양 학교들은 8월이나 9월에 학기를 시작해서 이듬해 5월이나 6월에 학년을 마친다. 호비와 호지가 다니는 학교도 이번 달 초에 모든 수업을 마치고 여름방학에 들어갔다. 평소에는 5월 말에 여름방학이 시작되곤 했는데, 올해는 다소 늦게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국제학교에서는 학기말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우선 가장 중요한 행사는 단연코 고등학교 졸업식이다.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경우 별다른 졸업식 행사를 하지 않는 대신 고등학교 졸업식은 리허설을 포함해서 제법 그럴싸한 행사를 연다. 학부모들도 한껏 차려입고 졸업식에 참석한다. 수십 년 전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와 내 아내의 눈에는 국제학교에서 열리는 졸업식(유튜브로도 생중계되어서 우리 가족은 거실에서 편안하게 유튜브로 시청했다)은 신기한 것 투성이었다.
'라떼의 졸업식'은 대략 이런 모습이었다.
재학생은 물론 졸업생은 모두 연단 아래 앉아 있고, 정작 학교와 상관없는 높으신 양반들(교장선생님, 학교재단 이사장, 교육감, 심한 경우는 구의원, 시의원까지...)이 연단의 위를 독차지하고 떠억하니 앉아 있곤 했다. 학교 재정이 안 좋아 실내 체육관이 없는 학교에서는 날씨도 쌀쌀한 2월에 달달 떨면서 운동장 한복판에서 찬 바람을 견뎌야만 했다. 졸업생 대표가 연설이라도 한마디 할 기회가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 연설마저 대부분 학교 선생님들이 두세 번 검열을 마친 밋밋한 내용이었다. 1등은 교육감상, 2등은 교장상... 이렇게 등수에 맞춰 상장을 받는 게 당연한 거였고, 그나마 내신성적이 1등인 학생이 운 나쁘게 그해 대입에 실패하면 교육감상을 (대입에 성공한) 내신 2등에게 넘겨주는 일도 가끔 일어나곤 했었다.
아이들이 다니는 국제학교의 졸업식은 사뭇 달랐다.
일단, 연단 위에는 그날의 주인공인 졸업생 전원이 앉아 있었다. 멋지게 가운을 차려입고 학사모를 쓴 졸업생 이외에 어떠한 사람도 연단 위에 앉지 않았다. 한 명 한 명 졸업생 이름이 호명되었고 이들은 졸업장을 받고는 교장선생님과 멋진 사진 한방을 찍고나서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연단 밑에 앉아 있는 학부모들은 큰 박수를 쳐가며 졸업생들을 축하해주었다. 졸업식이 시작하기 전 재학생들로 구성된 아마추어 락밴드의 공연도 흥겨웠다. 졸업생 대표는 한껏 유머를 곁들인 연설로 자리에 참석한 선생님과 학부모들을 웃게 만들었다. 졸업식이 모두 끝나고 아이들이 쓰고 있던 학사모를 힘껏 집어던지는 모습, 행사가 끝나고 퇴장하는 졸업생들을 향해 교사들이 박수를 보내는 모습도 감동적이었다.
12학년 학생들의 졸업식이 물론 가장 인상적이었지만, 다른 학년 학생들에게도 학기말에는 이런저런 공식, 비공식 행사가 제법 많다.
국제학교의 특성상 몇 년간의 계약 기간이 끝나고 학년말에 학교를 떠나서 다른 학교로 가는 교사들도 많았는데, 이런 선생님들을 위한 짧은 영상을 만드는 일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하는 중요한 연중행사 중 하나였다. 호비 역시 자기가 좋아했던 선생님 한 분을 위한 짧은 영상을 만들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매년 발간되는 학생앨범(school yearbook) 역시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편집한다. 학기가 끝날 때쯤 제법 두툼하고 묵직한 앨범을 받아 들고는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1년 동안 있었던 일을 추억해보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에게는 '졸업식'이라 불릴만한 행사는 없지만 작은 행사가 한두 개 있어서 이들의 승급을 축하해준다. 일단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서로 다른 건물에 자리하고 있는데,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에게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연결하는 구름다리(다리 길이라고 해봤자 20여 미터에 불과하기는 하지만...)를 걸어서 건너는 의식이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된다는 상징적인 의식이다.
고등학교 학생들에게는 Step-up Ceremony라는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다니는 고등학교의 강당에서 12학년이 가장 높은 층, 11학년과 10학년이 그다음 층, 9학년은 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곤 하는데, 학기말에 1학년 선배들이 앉던 자리에 옮겨 앉는 짧은 행사를 가졌다. 이 역시 아이들로 하여금 성장과 성숙에 부응하는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상징적인 행사라고 하겠다.
한국 학부모 입장에서 약간 이상하다고나 할까 좀 야박한 상황도 좀 있긴 하다.
일단, 학기말은 물론이고 학기 중에 이런저런 상장이 심심치 않게 수여되는 한국 학교와는 달리 호비와 호지가 다니는 미국계 학교는 상장에 매우 인색하다. 1년이 지나고 각 과목별로 딱 한 명의 최우수 학생을 뽑는다. 그나마 한국과 같은 뻑적지근한 상장 수여식도 없고, 일주일에 한 번씩 학생과 학부모에게 발송되는 이메일의 가장 구석에 작은 링크로 붙어 있어서 그 링크를 클릭해보지 않는 한 누가 상을 받았는지를 알래야 알 수도 없다.
학교에서 빌린 책을 전부 반납하지 않으면 아이들 성적을 포함한 모든 학교 생활이 기록되어 있는 웹사이트인 '파워스쿨'이 닫혀버리는 것 또한 다소 야박하게 느껴졌다. 다행히 호비와 호지가 빌려온 책을 까먹지 않고 반납한 덕분에 학기말에 아이들 성적은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해외 주재원 가족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학교의 특성상 학기가 끝나고 다른 나라로 떠나는 학생들도 제법 많다. 이런 아이들은 떠나기 전 자기와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을 불러서 짧게나마 파티를 하기도 했다. 중고등학생들이 하는 파티니 뭐 특별한 거는 없고 자기 집에서 간단한 음식을 먹으면서 같이 동영상을 찍거나 하는 정도였다. 워낙에 만남과 헤어짐에 익숙한 주재원들의 자녀이다 보니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부대끼며 같이 수다 떨던 아이들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다른 나라로 떠난다는데도 그다지 섭섭해하지 않는 듯했다. 한편으로는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뭐랄까... 안쓰러운 것 또한 사실이었다.
어차피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로 다 연결된 세상... 만날 생각만 하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으니 호들갑 떨면서 이별을 슬퍼할 이유가 없어서일까? 힘들고, 정신없고, 번잡하고, 괴로웠던 한 해가 그렇게 마무리되고 아이들은 각자 자기가 있어야 할 곳 그리고 떠나가야 할 곳으로 그렇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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