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무도회(Prom)가 끝나고 난 후...

이렇게 또 아이들은 한 발짝 부모에게서 독립했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 머리를 맞대고 앉은 아내와 호비와 호지가 몇 시간째 꼼짝도 안 하고 있다. 화면으로는 갖가지 색깔의 화려한 드레스가 스쳐 지나가고 우리 집안의 3명의 여성들은 제각기 한 마디씩 드레스에 대해서 평을 한다.


"색깔이 별로인데..."

"너무 길이가 길다."

"이건 가슴이 너무 파여서 안돼. 탈락..."

"디자인이 너무 복잡한데..."


여성복이라면 치마와 바지를 간신히 구별하는 수준인 나는 이들의 대화에 끼어들 틈이 없다. 한 시간이 넘도록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이더니 결론을 내지 못하고 결국 '내일 다시 살펴보자'면서 세명은 각자 자기 방으로 사라져 버린다. 백화점에 들어가면 무조건 물건을 사고 나와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 같은 남자들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불가이다.


그리고 다음날... 세명은 다시 머리를 맞대고 드레스를 고르기 시작한다. 첫째 호비는 살짝 과감한 옷을 입고 싶어 하고, '유교 걸'인 나의 아내는 그런 옷이 화면에 뜰 때마다 '안 돼'를 외치고, 둘째 호지는 자기 나름대로 한 두 마디 의견을 내놓고... 어제의 대화가 다시 되풀이된다. '색깔이 별로이다', '길이가 길다', '가슴이 파여서 안된다.'....





국제학교 특히나 미국계 학교에 자녀들을 보내는 부모들에게 가장 낯선 학교 행사는 졸업 무도회(prom)가 아닐까 한다. 정장을 빼입은 남학생들과 드레스를 멋지게 차려입은 여학생들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펼치는 즐거운 파티... 원래는 고등학교 졸업반 아이들만 참석하는 무도회인데, 호비와 호지가 다니는 학교를 포함해서 학생수가 그리 많지 않은 몇몇 미국계 학교에서는 11학년에게도 참석할 기회를 준다. 3월로 예정된 졸업 무도회 날짜는 제법 일찍 공지되었다. 자신과 같은 11학년의 대부분이 졸업 무도회에 참석할 거라는 것을 알게 된 호비는 적극적으로 무도회 준비를 시작했다.


옆에서 지켜보니 이것저것 자질구레하게 준비할게 많았다. 드레스도 사야 하고, 손바닥만 한 핸드백(아내가 뭐라고 이름을 불렀는데 까먹었다)도 준비해야 하고, 드레스에 어울리는 하이힐도 장만해야 했다. 청바지에 운동화만 신고 다니던 호비에게는 모두 다 생전 처음 사는 물건들이니 당연히 아내가 이것저것 도와줄 겸 자연스럽게 참견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돌아온 무도회 당일.


친하게 지내는 친구 집에 먼저 모여서 자기들끼리 서로 화장해주고, 헤어스타일 다듬고 나서 학교로 가야 한다며 호비는 외출 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재미있게 놀다 와'라는 부모의 말은 들은 척 만 척... 쌩하니 차에 올라타서는 뒤도 안 돌아보고 친구 집으로 가버린다. 집에 남은 둘째 호지는 살짝 부러운 듯 '언니는 좋겠다'라는 말을 살짝 내뱉는다.


18년 전 나와 내 아내에게 기적처럼 찾아온 귀하고 소중한 생명이 두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우리를 감동시킨 것이 엊그제인 것 같은데, 어느샌가 자기 몸집만 한 가방을 짊어지고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다시 한번 눈을 끔뻑했더니 그 아이는 3년 동안 살던 프랑스를 떠나며 한없이 아쉬워하는 사춘기 중학생으로 커 있었고, 고개를 다시 한번 들어보니 이제 그 아이가 인도 뉴델리 한복판에서 장성한 고등학생이 되어 있다. 무도회를 가겠다며 집을 나서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한 걸음씩 아이는 우리 부부에게서 멀어져 가는구나'라는 생각에 공연히 마음이 쓸쓸해지기 시작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각. 프롬을 신나게 즐긴 첫째 아이가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집에 돌아왔다. 생전 처음 신었던 하이힐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벗어 던졌다. 엄마와 아빠에게 건성으로 인사하고는 친구들과 카톡을 주고받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 파티는 끝났지만 여흥은 끝나지 않았나 보다. 그날 밤, 프롬에 같이 참석했던 한국애들과 수다를 떠느라 큰 아이 방의 불은 늦은 시간까지 꺼지지 않고 있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조금씩 이별하는 과정이라고 했던가. 이제 호비에게는 고리타분한 잔소리를 하는 부모보다 몇 배는 즐겁고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이 생겼고, 새롭고 놀라운 지식으로 자신들을 이끌어주는 훌륭한 선생님들이 생겼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자라고 정신이 성숙하는 게 너무나도 행복한 일이지만, 그러나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이 아름답고 행복한 여행의 종착점은 아이들의 독립이 될 것이고, 그것은 절대로 피하지 못할 것이다. 행복하고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글프고 섭섭하다.


프롬을 마치고 아이는 또 한 뼘 자란 듯하고, 이렇게 또 한 발짝 아이들은 나와 아내의 품에서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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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by Marcel Strauss on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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