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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Aug 13. 2022

당신이 살아있다는 증거를 대세요

'죽은 사람들의 모임'이 만들어진 이유...

[# 1] 자, 당신이 살아있다는 증거를 대세요...


우타르프라데시(Uttar Pradesh) 주의 아잠가르(Azamgarh)라는 도시에 살고 있던 22살의 젊은 청년 '랄 비하리(Lal Bihari)'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거주 증명서, 소득증명서 그리고 카스트 증명서가 필요하다는 안내를 받았다. 아잠가르에서 북쪽으로 약 85km 떨어진 자신의 고향 칼리아바드(Khaliabad)에 도착해 등기소에서 관련 서류를 떼려다가 그는 아주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바로 자기 자신이 1년 전에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농담이시죠? 저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어요. 제가 누군지 잘 아시잖아요.” 랄 비하리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그 상황을 빠져나오려 했지만 등기소 공무원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등기소 공무원은 서류 한 장을 펼쳐서 랄 비하리에게 보여주었다. 1년 전인 1976년 7월 30일 당시 21세였던 랄 비하리는 공식적으로 사망했으며 그가 소유한 땅도 삼촌의 손으로 넘어갔다고 되어 있었다. 살아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죽은 랄 비하리의 황당하고도 기가 막힌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우타르 프라데시주는 인도의 다른 주에 비해서 인구가 많고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많은 빈곤한 지역이다. 그러다 보니 손바닥만한 농경지에 여러 가족이 의존해 살면서 토지의 소유권과 관련한 크고 작은 소송도 그치지 않는 곳이다. 몇몇 사람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족 중 토지 소유권을 가진 누군가를 서류상으로 사망한 것처럼 신고해서 그가 가진 토지소유권을 빼앗는 잔꾀를 부리게 된다. 실제로 랄 비하리의 경우 그의 삼촌이 (우리나라 돈으로 6천원도 안 되는) 300루피로 공무원을 매수하여 랄 비하리의 땅을 빼앗은 것이었다. 이 강탈행위에 동참한 공무원은 랄 비하리와도 잘 아는 사이였는데 몇 푼 안 되는 돈에 자신의 양심을 팔아버린 것이었다.


[# 2]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을 죽은 사람으로 만드는 일은 쉬웠지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있는 사람으로 되는 일은 너무나도 힘들었다. 뇌물을 받고 살아있는 사람을 죽은 사람을 처리했다는 것을 공무원들이 인정할 리가 만무했다. 공직사회가 조직적으로 랄 비하리의 ‘부활 움직임’을 저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랄 비하리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별별 시도를 다 하게 된다.


우선, 자신의 땅을 빼앗은 삼촌의 자식을 유괴했다. 그렇게 되면 삼촌이 자신을 신고할 것이고 이는 곧 자신이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공인받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본성이 착했던 랄 비하리는 유괴한 자신의 조카에게 해코지를 하지는 못했다. 대신 영화관에 데리고 다니며 영화를 보여주며 시간을 때웠다. 한편, 랄 비하리의 의도를 눈치챈 그의 삼촌은 며칠이 지나도록 경찰에 아들이 실종되었다는 신고를 하지 않았다. 버티기에 들어간 것이다. 뻘쭘해진 랄 비하리는 조카를 다시 돌려보냈다.


이번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정신으로 동네 경찰관에게 500루피의 뇌물을 주고 자신을 경범죄 가해자로 지목하는 사건 조서를 써달라고 요구한다. 죽은 사람은 범죄를 저지를 수 없으니 이를 통해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엉뚱하지만 제법 논리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랄 비하리의 의도를 알아챈 경찰관이 뇌물을 돌려주면서 랄 비하리의 시도는 맥없이 무산된다. 그러자 이번에는 자기 아내가 유족 연금을 탈 자격이 있는데 여태까지 받지 못했다며 연금을 신청한다. 하지만 그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좀 더 널리 알리기 위해 주의회 의사당에서 소란도 피워보고 심지어 인도 수상에 출마하는 지역구에 두 번이나 출마해서 실제로 몇 천표 정도를 득표하는 기염을 통하기도 했다. 죽은 사람이 살아 있는 사람과 겨뤄서 표를 얻은 것이었다.


1980년 그는 자신의 이름에 ‘죽은 자’를 뜻하는 Mritak(मृतक)을 덧붙인 후 ‘우타르 프라데시 사망자 협의회(Uttar Pradesh Association of Dead People)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자신처럼 살아있는데도 죽은 사람으로 처리되어 억울하게 재산을 빼앗긴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아보겠다는 생각이었다. 그의 이야기가 처음에는 지역신문 그다음에는 전국단위 신문에 실리면서 우타르 프라데시를 포함하여 인도 각지에서 비슷한 사례가 알려지기 시작했고 랄 비하리가 만든 '사망자 협의회' 회원수는 2만명을 훌쩍 넘겼다.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멀쩡한 사람을 죽은 사람으로 만드는 어이없는 범죄 행위가 인도 전역에 걸쳐서 이렇게나 빈번하게 일어났던 것이다. 온갖 눈물겹고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노력 끝에 랄 비하리는 결국 1994년에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게 된다. 1976년에 법적으로 사망한 사람이 법적으로 다시 살아나는데 무려 18년이라는 세월이 걸린 셈이다.


[# 3] 안타까운 인도의 부패 현실


세계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발표한 2020년 세계 부패 바로비터(Global Corruption Barometer)라는 자료에 따르면 인도 국민 중 최근 12개월 안에 단 한 번이라도 뇌물을 제공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100명 중 39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경찰(42%)과 전기, 가스 등 각종 공공서비스 제공자(32%)에게 뇌물을 제공한 사례가 빈번했으며 신분을 증명하기 위한 각종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 뇌물을 제공한 사례도 41%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립학교나 공공병원에서 서비스를 받기 위해 뇌물을 제공한 사례도 100명 중 20명을 거뜬히 넘었으니, 이쯤 되면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밀착된 거의 대부분의 서비스에서 뇌물이 없으면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세계투명성기구가 세계 180개 국가를 대상으로 점수를 매긴 부패지수에서 인도는 180개 나라 중 86등을 차지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빈국인 레소토나 베닌(이상 공동 83위), 가나(75위) 또는 세네갈(67위)도 인도보다는 상황이 나은 편이다.


경제가 발전하면 일상생활에서 소액의 뇌물을 여러 사람으로부터 공공연히 받아 챙기는 이른바 ‘수직적 부패(vertical corruption)’가 사라지고 그 대신 소수의 대기업으로부터 은밀하게 거액을 받는 ‘수평적 부패(horizontal corruption)’가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인도의 경우 경제가 1947년 이후 느리지만 꾸준히 발전하면서 수평적 부패 즉, 대기업으로부터 거액을 받아 챙기는 부패는 생겨났지만 수직적 부패는 사라지지 않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고위 공무원들은 대기업으로부터 거액을 받아 챙기고 하위직 공무원들은 그들 나름대로 여전히 일반 시민들로부터 푼돈을 받아 챙기는 양상이 계속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하위직 공무원이 멀쩡한 사람을 사망자로 처리해주는 대가로 받은 돈은 지금의 물가로 환산한다면 불과 몇만 원에 불과한 돈이었다. 그 공무원과 가족은 그 돈으로 근사한 식당에서 저녁 한 끼 정도 외식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사망자로 처리된 사람은 돈으로도 환산할 수도 없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제대로 된 경제활동도 하지 못한 채 귀한 시간과 돈을 들여 자기가 살아있는 사람이라 것을 증명하는데 18년이라는 긴 시간을 써버린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수천 명에서 수만 명에 이르는 상황이니 사회 전체가 입은 손해는 얼마나 막대할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랄 비하리 같은 경우에는 엄청난 시간과 돈을 들여서 끝끝내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그 와중에 어느 누구도 죽거나 다치지 않았다. 하지만, 부정부패로 인해 일반 시민들의 안전을 치명적으로 위협하는 일들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 4] 부정부패가 결국에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으로 되돌아 온다면...


2004년 10월부터 2005년 4월까지 마리안느 버트랜드(Marianne Bertrand)와 그녀의 동료들은 인도 뉴델리에서 운전면허를 취득한 822명을 추적 조사하였고 그 내용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경제전문 학술지에 실렸다. 이들 연구진이 밝힌 내용은 한심한 수준을 넘어서 충격적이었다. 첫째로 운전면허를 획득한 사람들의 약 71%는 시험도 보지 않고 면허를 딴 것으로 밝혀졌다. 운전면허를 따게 도와주는 ‘중개인’들과 운전면허 담당 공무원들에게 크고 작은 뇌물을 가져다주고 면허를 받은 것이다. 둘째로, 이들 연구진은 면허를 획득한 사람들에게 무작위로 실제 주행시험을 치러보았는데 약 62%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운전할 만한 실력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 중 약 절반 정도는 자동차와 운전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너무 모자라서 감독관은 이들이 애초에 차를 몰고 도로로 나가는 것을 막아야만 했다. 이렇게 엉망으로 운전면허가 발급되고 있으니 전 세계 차량 중 단 1%만이 인도에서 운행되고 있지만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의 11%가 인도에서 나올 정도로 교통사고당 사망자수가 높을 수밖에 없다. 뇌물 관행이 시민 한두 명의 일상생활을 불편하게 만드는 정도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안전을 위협하고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리도 부정부패가 인도 사회의 곳곳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공무원들의 처우가 워낙 열악해서 먹고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부패를 저지른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복잡하고 구시대적인 관료주의적 제도와 공무원들에게 부여된 지나친 재량권이 부정부패를 양산한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임시변통의 정신(인도에서는 이를 주가드(Jugaad)라고 부른다)’ 때문에 부정부패가 만연한다고 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이런 모든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짧으면 3년에서 길면 5년 정도 손님처럼 살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필자와 같은 주재원의 입장에서 뿌리 깊은 인도의 부정부패의 규모와 원인을 어찌 파악할 수나 있겠는가? 그저 이러저런 부정부패 뉴스를 접할 때마다 놀라고 안타까워할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랄 비하리의 최근 근황 토크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기가 막힌 인생 이야기가 워낙에 유명해지다 보니 의도치 않게 국제적인 유명인사가 된 그는 2003년 ‘가짜노벨상(Ig Nobel Prize)’에서 ‘평화상’ 부분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이그노벨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하버드대학교 학생들은 랄 비하리가 ‘법률적으로 사망처리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하게 생존한 공로, 관료주의의 무능과 가족의 탐욕에 맞서서 사후에도 생동감 넘치는(ㅋㅋ) 저항을 펼친 공로, 마지막으로 '사망자 연합회'를 창립한 공로’ 등 총 세 가지 공로를 수상 이유로 밝혔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2021년 영화로도 제작되어 ZEE5라는 인도 토종 OTT 스트리밍 서비스로도 제공되었다. 영화의 제목은 힌디어로 ‘Kaagaz’, 바로 ‘서류더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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