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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Jul 08. 2022

영국 총리가 사임했는데 인도인들이 환호하는 까닭은?

머슴집 아들내미가 주인집 안방을 차지할 수 있을까?

영국의 트럼프로 불리며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스캔들에 휘말려온 보리스 존슨 총리가 2022년 7월 7일 결국 사임을 발표했다. 그는 6월초에 있었던 불신임 투표에서 살아남았지만 자기가 속한 보수당 소속 의원 중 무려 41%가 그에게 반대표를 던지면서 지도력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리스 존슨 내각의 주요 부처 장관들이 그의 지도력에 의문을 품고 줄줄이 사표를 내면서 보리스 존슨 총리의 정치적 운명은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결국 탈도 많고 말도 많았던 보리스 존슨 총리가 물러나겠다고 두 손을 든 것이다.


실제로 보리스 존슨 총리의 정치 생명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존슨 총리의 지도력에 공개적으로 의문을 표하면서 주요 부처의 장관 2명이 던진 사직서였다. (장관 몇 명이 그만둬도 아무 탈이 없는 대통령제와는 달리 의원내각제 정부에서는 내각을 구성하는 장관들이 줄사퇴를 하며 자기 당 소속 총리를 낙마시키는 반란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이들은 보건부 장관과 재무부 장관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직간접적으로 인도와 관련되어 있다.

왼쪽은 리시 수낙, 오른쪽은 사지드 자비드




우선, 보건부 장관은 사지드 자비드(Sajid Javid, 위 사진에서 오른쪽에 있는 사람)라는 사람인데, 2018년부터 내무부 장관, 재무부 장관 및 보건부 장관 등 주요 보직을 두루 맡아왔던 사람이다. 그는 랭커셔주의 로치데일이라는 곳에 정착한 파키스탄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금수저 출신이 대부분인 다른 보수당의 의원들과 달리 자비드 장관은 평범한 중산층 출신이다. 그의 가족들은 1960년대까지 파키스탄령 펀잡 지역에서 농사를 짓다가 가난을 피해 영국으로 이사 온 이민자 가족이었고 자비드 장관의 아버지는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오랫동안 버스를 운전했다.  


재무부 장관인 리시 수낙(Rishi Sunak, 위 사진에서 왼쪽에 있는 사람)은 인도계이다. 그의 조부모도 펀잡 지역(그 당시에는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할되기 전이었다) 출신인데, 영국령 케냐와 탄자니아 등지에서 살다가 그 지역이 영국에서 독립하자 영국으로 이주했다. (영국인들을 따라 많은 인도인들은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영국령 식민지에 정착해 살아가곤 했었다. 영국이 낳은 최고의 가수 중 한 명인 프레디 머큐리의 아버지 역시 탄자니아에 있던 영국 식민정부의 하급 관료였고 이후 탄자니아가 독립하면서 영국으로 이주하였다.) 조부모들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속에 리시 수낙의 아버지는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고 약사인 아내를 만나 리시 수낙을 낳았다. 사지드 자비드와 마찬가지로 리시 수낙 역시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는 금융계에 몸담았었다.


인도에 인포시스라는 매우 큰 정보통신업체가 있고 그 업체를 창업한 사람은 나라얀 무르띠라는 사람이다. 인도인들이라면 모두 그 이름을 알고 있는 이 사람은 '인도 IT 업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리시 수낙은 나라얀 무르띠의 딸과 2009년 만나 결혼했다. 이쯤 되면 리시 수낙은 금수저를 넘어 거의 다이아몬드 수저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42살의 젊은 나이에 잘 생긴 외모, 스포츠맨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날씬한 몸매까지 겸비했으니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높을 수 밖에 없다.




이제 독자분들은 영국 총리가 사임을 표했는데 왜 인도인들이 흥분하고 있는지 눈치채셨을 것이다. 바로 보리스 존슨 총리의 후임으로 인도계 영국인인 리시 수낙이 선출되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에 들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러한 리시 수낙이 다른 사람도 아닌 (인도의 철천지 원수라 할 수 있는) 파키스탄 이민자의 아들과 영국 총리 자리를 놓고 겨루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더 흥분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게는 다 져도 되지만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이 절대로 일본에 져서는 안 되듯이, 인도의 크리켓 팀이 다른 모든 나라에는 패배해도 되지만 절대로 져서는 안 되는 팀이 파키스탄이다. 그렇다 보니 후임 영국 수상 자리를 놓고 앞으로 몇 달 동안 벌어질 다툼에 인도 사람들이 벌써부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인도의 주요 언론들은 리시 수낙이 어떤 사람인지를 다루는 뉴스를 연신 쏟아내느라 정신이 없고, 인도의 주요 TV에 오늘 하루 동안 리시 수낙의 얼굴이 얼마나 많이 등장했는지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이다. 리시 수낙을 소개하는 언론 보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도계' 정치인이라는 설명... 아무래도 팔은 안으로 굽나 보다. 그의 유력 경쟁자인 사지드 자비드는 코빼기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반면, 인도가 아닌 미국이나 영국 등 다른 나라의 언론들은 리시 수낙이나 사지드 자비드를 제외하고도 제법 가능성이 높은 다른 후보들도 비중 있게 다루면서 균형 잡힌 보도를 내보내고 있다. 만약, 인도인들이 바라는 대로 리시 수낙이 영국 총리가 된다면 200년간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머슴 집 아들내미가 주인집 안방을 차지하는 기분 좋은 복수극이 완성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사지드 자비드가 영국 총리가 된다면?


글쎄...


일본 축구팀한테 지고 나서 그다음 날 우리나라 분위기 어떤지 대충 아시지 않나? 잘은 모르지만 아마 그와 비슷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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