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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Sep 01. 2022

망설이다 드디어 쓰는 '카스트' 제도 이야기 (2)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그러나 외국인은 정말로 이해하기 힘든....

'망설이다 드디어 쓰는 '카스트'제도 이야기(1) https://brunch.co.kr/@hobiehojiedaddy/155 에서 이어집니다.




[Q 6] 다른 종교에도 카스트 계급이 있나?


카스트 계급이 힌두교에서 파생되었으므로 얼핏 생각하면 힌두교도들만 카스트 계급이 있을거 같지만 실제로는 타 종교 신도들도 카스트 계급을 갖는다. 우리가 아는 카스트 제도가 실제로는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직업’이라는 뜻의 자티(Jati)라는 뜻에 더 가깝다는 것을 상기하면 힌두교가 아닌 다른 종교의 신자들도 당연히 자티를 갖는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약 10년간 인도 수상을 역임한 만모한 싱은 시크교도였지만 그 역시 ‘크샤트리아’의 세부 분류인 ‘카트리(Khatris)’ 자티에 속한다. 심지어 인간 평등을 기본적 철학으로 하는 이슬람교나 기독교 역시 인도에만 들어오면 맥을 못 추고 신도들의 계급을 카스트에 따라 구분한다.  


인도내 무슬림의 경우 크게 3개의 카스트로 나뉜다. 가장 상위 계급은 아슈라프(Ashrafs)로 불리며 문자 그대로 ‘고귀한 자’라는 뜻이다. 주로 아랍 또는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한 집안의 후손이거나 힌두교 상위 카스트에서 개종한 사람들이다. 아즐라프(Ajlafs)는 ‘평민’이라는 뜻인데, 주로 힌두교 하위 카스트에서 개종한 사람들이며, 아르잘(Arzals)은 ‘천민’이라는 뜻인데 주로 불가촉천민에서 개종한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아슈라프는 힌두교의 브라만 계급에 해당하며, 아즐라프는 크샤트리아라부터 수드라 계급까지, 아르잘은 불가촉천민 계급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인도의 기독교 역시 이슬람교와 유사하게 본인 또는 가문이 기독교로 개종했을 당시의 힌두교 카스트에 따라 현재의 위치가 정해진다. 천주교의 경우 기원 후 1세기 경 성 도마(Saint Thomas the Apostle)의 인도 방문을 전후하여 인도 남동부에 정착한 시리아 정교회 신도들의 후손이 가장 높은 계급으로 대접받으며, 개신교의 경우에도 개종전의 힌두교 카스트가 그대로 잔존하여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쯤 되면 카스트 제도는 종교에 상관없이 인도인 모두의 일생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Q 7] 카스트가 현대 인도의 정치와 경제에서 얼마나 영향력이 있나?


인도의 정치, 경제, 사회는 아직도 카스트의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단, 2019년 새롭게 개원한 제 17대 인도 하원(Lok Sabha)의 카스트 분포도를 한번 살펴보자. 상위 카스트가 약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OBC(22.1%), SC(15.9%), ST(9.6%)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상위 카스트와 하위 카스트가 약 3:7로 구성된 인도 전체의 인구 구성에 비슷하게라도 접근해 있는 선출직 공무원들의 경우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이와는 달리 임명직 공무원 특히, 고위직 공무원으로 갈수록 평소에는 만나보기도 힘든 미슈라, 샤르마, 바네르지, 바타차리아 같은 브라만 성들이 수두룩하게 포진해 있다. 상위 카스트에 속하는 사람끼리 서로 당겨주고 밀어준 결과이다. 민간 기업은 더하다. 2010년을 기준으로 인도 시가총액 약 80%를 차지하는 상위 1,000개 상장기업의 상임이사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상임이사의 93%가 상위 카스트였다. 바이샤 계급과 브라만 계급이 각각 46%와 44%를 차지한 반면, OBC는 3.8%, SC/ST는 불과 3.5%였다. 심지어 모든 상임이사가 단 한종류의 카스트 계급으로만 구성된 경우도 전체 회사 3개중 2개였다. 이 경우 회사의 대표이사는 물론, 심지어 회사를 감사하는 회계감사인을 선정할 때에도 동일한 카스트에 속한 대표이사나 감사인이 선정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전체 인구의 약 70%를 차지하는 하층 계급(OBC, SC, ST)은 절대로 뚫고 올라갈 수 없는 지극히 폐쇄적인 사회인 것이다. 


[Q 8] 카스트가 현대 인도의 일상 생활에서도 얼마나 영향력이 있나?


미국 워싱턴에 소재하는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에서 2021년 6월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인도인들의 일상 생활에 아직도 카스트 제도는 뿌리깊게 남아 있다. ‘지난 12개월 동안 당신의 카스트로 인해 차별받은 경험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비율이 15% 가량을 차지했으며, ‘불가촉천민이 당신 이웃으로 이사온다면 용납이 되겠는가?’라는 질문에 20%가 넘는 인도인들이 ‘아니오’라고 답했다. 얼핏 보면 카스트에 따른 차별이 그리 심하지 않은 듯 보인다.


그런데, 실제로 누구와 친구가 되고 더 나아가 결혼 등 밀접한 관계를 맺는가를 질문하자 카스트에 따른 차별은 비로소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자신의 모든 친구 또는 거의 대부분의 친구가 자신과 같은 카스트 계급이라고 답한 비율이 무려 70%에 달했다. 심지어 남녀노소와 카스트 계급에 상관없이 일관된 비율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타 카스트와의 결혼을 금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변한 비율도 60%를 넘어섰다. 카스트 계급의 높낮이에 상관없이 전체 인도인중 60% 이상이 다른 카스트와의 통혼에 반대했다. 자녀가 다른 카스트의 이성과 결혼하면(특히, 높은 카스트의 남성이 낮은 카스트의 여성과 결혼하면) 이른바 '명예살인'이라는 끔찍한 이름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도 종종 있을 정도이다. 


여성가족부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외국인과 결혼하는 것을 수용할 수 없다’고 답한 사람들이 100명중 약 7명 정도였다. 이쯤되면 우리나라에서 국적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것보다 국적은 같지만 카스트가 다른 인도인끼리 결혼하는게 약 10배 정도 힘들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결론적으로, 일상생활에서는 카스트가 크게 작용하지 않거나 과거에 비해서 그 영향력이 현저히 줄었으나, 아직도 인도인들의 결혼에서는 큰 영향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Q 9] 카스트 차별은 인도에만 한정되어 있나?


2020년 7월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IT 기업인 시스코를 기소했다. 기소 이유는 시스코에서 근무하는 인도 출신 직원중 불가촉천민에 해당하는 직원이 더 높은 카스트에 속하는 다른 인도출신 직원에게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동안 회사가 적극적으로 직원 보호조치를 시행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오랜 기간의 훈련과 능숙한 영어 능력을 필요로 하는 IT 산업은 현실적으로 상위 카스트들의 전유물이다. 어렵사리 카스트 차별을 뚫고 인도도 아닌 미국에 있는 세계 유수의 IT 기업에 취업한 하위카스트 인도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결국 같은 인도인들로부터의 극심한 차별이었던 것이다. 


미국에서 직장생활하고 있는 불가촉천민 10명중 6명은 카스트에 근거한 차별적 농담이나 언급을 들은 적이 있었으며, 25%는 언어 또는 신체적 폭력을 경험했다는 충격적인 조사도 있었다. 인도인들이 많이 정착한 영국에서도 카스트에 따른 차별이 문제가 되자 심지어 유엔이 나서서 영국 정부에게 해결책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인도인이 있는 곳이면 그곳이 세계 어느 곳이든지 카스트에 따른 차별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고 끈질기게 존재한다는 자조적인 분석이 나오고 있다.


3,000년 전에 만들어진 카스트 제도는 힌두교와 그 기원을 같이하는 종교적 제도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힌두교 뿐만 아니라 타 종교에도 깊숙이 스며든 사회 계층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적 계급이자 정치적 파벌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인도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바다 건너 미국과 영국에서도 그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다. 카스트를 이해하면 인도를 다 이해한 셈이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외국인들 입장에서는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카스트 제도를 이해하는 것 자체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결론적으로 인도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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