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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Sep 13. 2022

나도 당신을 따라 죽겠어요.. 인도의 정치 이야기(1)

겉으로 보면 멀쩡히 잘 돌아가는 인도 민주 정치의 속 이야기

2014년 9월, 인도 남부 타밀나두 주의 주지사(Chief Minister)였던 자라얌 자야랄리타가 부정축재 혐의로 4년형을 선고받자 최소 16명이나 되는 그녀의 열혈 지지자들이 분을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끊었다. 2016년 12월에 그녀가 심장질환으로 사망하자 불과 일주일 만에 약 280명이나 되는 지지자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자야랄리타의 소속 정당이었던 AIADMK는 친절하게 자살한 사람들의 명단을 직접 발표했다. 며칠 후 AIADMK는 자야랄리타의 죽음 이후 597명이 ‘슬픔에 겨워’ 죽음에 이르렀다면서 유가족들에게 30만 루피(약 500만원)의 위로금으로 전달하겠다고 발표했다. 


유명 영화배우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했던 그녀는 1991년 6월 처음 타밀나두의 주지사가 된 이후 2016년까지의 25년 중에서 14년간 주지사로 나머지 기간은 야당 당수로 재임하면서 그야말로 타밀나두의 여왕으로 군림했다. 수사를 통해서 밝혀진 부정축재 규모만 3,900만 달러(약 470억 원)에 달할 정도로 부패한 정치인이었지만 엄청난 카리스마와 포퓰리스트적인 정책 덕분에 열혈 지지자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자, 여기서 필자를 포함해서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제 아무리 자신이 열렬하게 지지하는 정치지도자라 하더라도 그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거나 사망했다고 해서 내 몸에 불을 지르거나 목을 매달아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인도에서는 왜 이런 일이 아직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걸까? 세계에서 가장 큰 민주주의 국가인 인도에서는 정말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걸까? 인도 정치의 진짜 모습을 들여다보자.




[# 1] 겉으로 보면 멀쩡하게 잘 돌아가는 민주주의 국가


유명 경제전문지인 이코노미스트(Economist)의 자매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conomist Intelligence Unit)이 발표하는 ‘민주주의 지수’에 따르면 인도의 민주주의 수준은 세계 167개국 중 46위 수준이다. 20여 개의 아시아 국가들끼리만 따져보면 대만(8위), 한국(16위), 일본(17위) 등에 이어 6위를 차지했다. 이렇듯, 인도는 1947년 독립 이후 제법 안정적인 민주정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걸핏하면 군사 쿠데타가 밥먹듯이 일어나는 인접국 파키스탄과는 달리 쿠데타 한번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 꺼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인도의 민주정치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매우 다르다.


첫째로, 인도 민주주의 정치를 분야별로 세부 분석한 다른 조사기관들의 보고서를 살펴보면 인도는 ‘부분적으로만 자유로운’ 민주주의 국가이며 ‘선거제를 갖고는 있지만 사실상 독재국가(electoral autocracy)’라는 냉정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미국 워싱턴에 소재한 비정부기구인 프리덤 하우스는 ‘정치적 권한’과 ‘시민 자유’를 기준으로 전 세계 국가가 얼마나 자유로운 국가인지를 평가해오고 있다. 최근 발표한 세계 자유 스코어(Global Freedom Score)에 따르면 인도는 ‘소수 민족이나 그룹의 정치 참여 기회’, ‘언론 독립과 자유’, ‘종교 자유’, ‘학문의 자유’, ‘사법부의 독립’ 등 다양한 부분에서 낮은 점수를 얻으면서 ‘부분적으로 자유로운 국가’로 분류되었다. 전 세계 210개 국가 중 인도의 순위는 91위였다. 


40점 만점의 ‘정치적 권한’에서는 비교적 높은 33점을 기록했지만, 60점 만점의 ‘시민 자유’에서는 33점에 그치면서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상당히 제한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더욱더 안타까운 것은 2017년 100점 만점에서 77점을 기록하며 ‘자유로운 민주주의’ 그룹에 속했던 인도가 해가 갈수록 점수가 떨어져 이제는 60점대 중반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집권 2기에 들어서면서 사회 전체에서 노골화되고 있는 힌두교 근본주의 운동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스웨덴에 소재하고 있는 정치 전문 연구소인 V-Dem Institute가 발표한 ‘2022년 민주주의 보고서’에서도 유사한 내용이 지적되고 있다. 게다가 V-Dem Institute는 인도를 엘살바도르, 말리, 터키, 브라질 등과 함께 ‘최근 10년간 가장 독재화된 10개 국가(Top 10 most autocratizer country)’중 하나로 꼽았고, BJP와 같은 집권여당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이러한 ‘독재 국가화 경향’이 더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마디로 최근의 인도 정치 상황을 분석해보자면 정치 제도 측면에서는 각종 자유가 제법 잘 보장되어 있지만, 2014년 이후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취임한 이후 점점 더 시민들의 자유가 제한받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실제 정치 현실은 어떨까? 한 걸음만 더 들어가 보자.




[# 2] 입당, 탈당, 연정, 그리고 연정 붕괴로 이어지는 정신없는 행태


일단 14억 명이나 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민주주의 국가이다 보니 활동하는 정당의 개수부터 압도적이다. 2022년 현재 8개에 달하는 전국 단위 정당, 54개의 지역 단위 정당, 그리고 수백 개에 달하는 군소 정당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인도 의회(Lok Sahba)에 후보자를 한 명도 내지 못한 초미니 정당까지 합치면 그 수가 2,000개가 넘어간다. 한 마디로 정당이 많아도 너무 많다.


인도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어서 543명으로 구성된 인도 국회(Lok Sabha)의 다수당 당수가 총리가 된다. 한편, 28개의 주에는 주의회(Legislative Assembly)도 구성되어 있는데, 주의회 선거에서 승리한 다수당의 당수가 주지사(Chief Minister)가 된다. 가장 대표적인 전국 단위 정당이라면 현재의 집권당인 인도인민당(BJP, 1980년 4월 창당)과 1980년대까지 사실상 인도 정치를 좌우했으나 현재는 급격하게 세력이 위축된 의회당(Congress Party, 1885년 12월 창당)이 대표적이다. 한때 ‘지역단위 정당’이었으나 꾸준하게 지지기반을 확대하여 ‘전국단위 정당’으로 승급한 정당들도 있다. 인도 북동부의 웨스트 벵갈을 기반으로 한 전인도트리나물의회당(All India Trinamool Congress), 인도 북중부의 우타르 프라데시를 기반으로 불가촉천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대중사회당(Bahujan Samaj Party) 등이 그들이다.


이렇게 정당의 숫자가 많다 보니 각 정당 간 연정도 활발하고 연정 붕괴도 그에 못지않게 활발하다. 연정 붕괴는 보통 의원들의 탈당과 당적 변경으로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인도 정치인들이 당선 가능성을 따라 이 정당에서 저 정당으로 옮겨 다니는 일이 워낙에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다이나믹해도 너무 다이나믹하다. 나이가 좀 지긋한 인도인이라면 ‘아야 람 가야 람(Aya Ram Gaya Ram)’이라는 표현을 기억하고 있다. 1967년 주의회가 처음 도입된 하리아나(Haryana)주에서 2주 만에 당적을 세 번이나 바꾸면서 일약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한 정치인 때문에 만들어진 말이다. 우리말로는 ‘라마 신이 왔다가 갔다가 한다(Ram has come Ram has gone)'라는 뜻인데, 특정 정당에 머물지 않고 당선 가능성이나 입각 가능성을 따라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철새 정치인들을 빗대어 부르는 말이다. 정치인들의 탈당과 당적 변경을 막기 위한 법률까지 1985년에 도입되었지만 지금도 이 법의 각종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한 당적 변경은 지금까지도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


의원들의 집단 탈당과 연정 붕괴는 1960년대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최근까지 마하라슈트라에서는 힌두교 근본주의 정당인 쉬브 세나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인도인민당(BJP)과 연정을 맺고 오랫동안 주정부를 구성해왔었다. 하지만, 2019년 쉬브 세나는 돌연 연정을 깨고 전혀 상반된 정치적 지향점을 갖는 인도의회당(Congress)과 새롭게 연정을 맺었다. BJP와 권력분점을 포함한 여러 문제에서 불협화음을 일으키다가 결국 결별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2022년 6월말 쉬브 세나 소속의 유력 정치인 한 명이 소속 의원 약 2/3를 이끌고 당을 빠져나와 과거 연정 파트너였던 BJP와 새롭게 연정을 맺고 주지사 자리에 올랐다. 의원들의 집단 탈당과 BJP와의 재결합의 이면에 BJP의 집요한 정치 공작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점은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 3] DJ와 YS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엄청난 수준의 개인 숭배


정치인 1인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성향도 심하게 나타나는데, 특정 지역이나 특정 카스트 집단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지역 정당’의 경우 이런 성향이 더욱 심하다. 웨스트벵갈주의 주지사를 2011년부터 10년 넘게 연임하고 있는 전인도트리나물당(AITMC)의 마마타 바네르지(Mamata Banerjee), 우타르 프라데시를 기반으로 하는 대중사회당(BSP)의 마야와티 다스(Mayawati Das) 등이 그러한 예이다. 선거 유세가 있을 때마다 수천 명에서 수만 명은 거뜬히 동원할 정도로 이들의 영향력과 카리스마는 대단하다.


정치인에 대한 열혈 지지자들의 존경과 숭배가 도를 지나치게 되면 이해하기 힘든 행태로도 나타난다. 2015년 2월, 자야랄리타의 열혈 지지자이자 액션 스타인 쉬한 후사이니(Shihan Hussaini)는 선거에서 자야랄리타가 승리하기를 기원하면서 스스로 십자가에 자신을 매달았다. ‘엄마’를 의미하는 Amma가 쓰여진 티셔츠를 입고 손바닥에는 큼지막한 대못이 박힌 채로 몇 분을 버틴 그의 모습은 TV 카메라에 잡혀 고스란히 인도 전역에 생중계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 전에는 자신의 피를 뽑아 자야랄리타의 초상화를 그리는 등 정치적 지지와 종교적 광기의 중간쯤 되는 행동을 되풀이해 왔었다. 물론, 그가 정신 나간 미치광이라서 그런 행동들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쇼를 한번 벌일 때마다 타밀나두 정부로부터 싼값에 땅을 불하받아 액션 스쿨을 짓거나, 관변단체의 장을 맡게 되는 등 보상도 적지 않았다. 한 마디로 바라는 게 있어서 한 행동이었다.


아무리 TV 매체가 자극적인 뉴스를 쫓아다닌다고는 하지만, 수천 명에서 수만 명에 이르는 유권자들이 유세현장에 운집하여 열광적으로 후보자의 이름을 연호하는 인도의 선거 유세 모습을 보면 놀랍기만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 많은 사람들이 정말 아무런 금전적 혜택을 받지도 않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일까?’, ‘혹시라도 우리나라의 60년대처럼 몇 푼 안 되는 돈을 받고 표를 던지는 ‘막걸리 선거’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민주주의라는 연약한 꽃은 빈곤하고 거버넌스가 갖춰지지 않은 인도 같은 나라에서는 피어나기 어려운 사치품에 불과한 것일까? 그 분석은 '인도의 정치 이야기(2)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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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쉬한 후사이니(Shihan Hussaini)가 자야랄리타의 선거 승리를 기원하며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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