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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Sep 15. 2022

정치인인지 폭력배인지... 인도의 정치 이야기(2)

범죄조직, 카스트 계급, 불법 정치자금이 활개치는 인도의 정치 지형

[# 1] 범죄자여도 상관없다... 나에게 이익을 가져다 준다면


정치학에서는 유권자들이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으면 훌륭한 정치인을 뽑을 것이라는 믿음이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다. 18세기에 이미 영국의 제레미 벤덤(Jeremy Bentham)은 ‘권력을 가진 정치인들에게는 유혹을 이겨낼 장치가 필요하며 가장 좋은 장치는 바로 시민들의 감독이다’라고 밝히면서 정치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가진 시민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한마디로 유권자들이 똑똑하다면 그들은 결코 자격이 안 되는 정치인들을 뽑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인도의 경우 1990년대 초반 이후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문맹률도 꾸준히 낮아졌다. 중고등학교 진학률도 높아지고 수많은 신문과 방송이 만들어지면서 인도의 유권자들도 ‘무지한 유권자’에서 ‘똑똑한 유권자’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이론에 따르면 이러한 ‘똑똑한 유권자’들이 늘어났으니 자격이 안 되는 정치인들은 선출되지 않아야 정상일 것이다. 자격이 안 되는 정치인의 가장 대표적인 부류라면 당연히 범죄경력을 가진 후보들, 그중에서도 정치인이 흔히 범할 수 있는 명예훼손이나 모욕과 같은 가벼운 범죄가 아닌 살인, 강간, 폭행 등과 같은 중범죄를 저지른 후보들일 것이다.


그런데, 인도는 이러한 전통적인 정치학 이론이 안 먹히는 나라들이 가장 대표적인 나라이다. 실제로, 2019년 5월에 있었던 하원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의 약 43%가 형사사건에 연루되어 있다. 이 중에서 살인, 살인미수, 성폭행 등 중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도 전체 당선자의 무려 29%였다. 하원의원 10명 중 3명이 입에 담기도 싫은 패륜적 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 게다가 범죄경력이 있는 당선인의 비율은 2004년 하원선거 때의 24%과 비교하면 거의 2배가 되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중범죄 혐의자의 비율은 이미 2배를 훌쩍 넘어버렸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 2] 사회적 분열과 취약한 거버넌스가 민주주의와 만나면?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한번 상상해 보자. 


우선, 인간의 생존을 위협할 수준의 빈곤이 수십 년에서 수백 년간 지속된 사회에서는 자기 가족, 자기 부족, 자기 카스트의 경제적 이익을 지키느냐 지키지 못하느냐가 삶과 죽음을 가르는 문제가 된다. 척박한 경제 환경 속에서는 남이 무언가를 가지면 나는 그것을 갖지 못하고 배를 곯거나 심하면 굶어 죽어야 하는 제로섬 게임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가 사회적 경제적 분열이 극심하다면 이러한 분열을 정치적 발판으로 활용하려는 세력들이 쉽게 지지를 얻을 수 있다. 민족, 카스트 계급, 지역 등을 기준으로 사분오열된 인도야 말로 이러한 ‘분열의 정치’가 꽃필 수 있는 완벽한 무대가 된다.


자 이제 화룡점정을 찍어보자. 


이러한 나라에서 정부가 시민들에게 기본적으로 제공해야 할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보건/의료, 상하수도, 교통, 치안과 같은 기본적인 서비스를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는 유권자들의 입장에서는 범죄경력은 좀 있더라도 이러한 서비스를 나의 가족, 나의 카스트, 나의 부족, 나의 마을에 제공해주는 정치인에게 당연히 마음이 더 끌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십 년간 오염된 물을 마시며 전염병에 고통받던 유권자는 우리 마을에 상수도를 끌어다 준 정치인이 지방정부에게 어떤 압력을 가하고 건설업자를 어떻게 협박해서 상수도 공사를 가능하게 했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선거가 반복되면서 우리 동네의 뒷배를 봐주는 후보자는 당선과 낙선을 경험하게 되고 그때마다 유권자들은 완연하게 다른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즉, 우리 동네와 우리 카스트를 대표하는 사람이 낙선하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부족하기만 한 사회적 자원들이 우리 동네와 우리 카스트에 쓰이지 않고 다른 동네와 다른 카스트로 쓰여지게 되니, 이쯤 되면 선거는 생존을 위한 전쟁이 되어버린다. 달리 말하자면 사회적 분열의 정도가 심한 빈곤 국가에서 취약한 정부의 행정 서비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되면, 그러한 나라에서의 선거라는 것은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사람(또는 그런 사람들로 구성된 정당)을 찾아 나선 유권자들의 경제적 욕망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변질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도의 유권자들은 무지하지도 않았고 부족한 정보를 가지고 정치적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합리적으로 고민하고 인도라는 사회가 가진 한계 안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선택이란 바로 ‘범죄 경력이 있더라도 우리 동네에 이득이 될만한 힘깨나 쓰는 사람을 뽑자’라는 것이었으며, 인도의 사회적 분열과 부족한 행정서비스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서 범죄경력이 있는 정치인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범죄 경력이 있는 후보자의 경우 2019년 하원의원 선거 당시 당선 확률이 약 15.5% 정도인 반면, 범죄 경력이 없는 범생이 후보의 경우 당선 확률이 훨씬 낮은 4.7%에 불과했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인도에서는 선거에 당선되려면 제법 눈에 띄는 범죄 경력이 있어야만 한다. 그 범죄 경력이 유권자들에게는 ‘능력 있는 정치인’이라는 신호를 주기 때문이다.




[# 3] 도대체 정치인인지 범죄자인지...


지금까지 왜 유권자(소비자)들이 질이 낮은 상품(범죄경력이 있는 정치인)을 의도적이고 능동적으로 선택하는지를 수요 측면에서 살펴봤다면 이제는 이러한 사람들이 언제부터 왜 나타나기 시작했는지 공급 측면을 살펴보도록 하자.


인도 독립 이후 인도 정치를 사실상 좌지우지했던 의회당(Congress Party)은 1990년대까지 중앙 정치무대는 물론이고 주정부를 거의 대부분 장악하고 있었다. 정치 상황은 안정적이었고 그러다 보니 이따금 발생하는 부정선거나 선거 폭력사태는 이른바 힌디 벨트(Hindi Belt) 지역에 국한되어 있었다. 유력 정치인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폭력 조직도 의회당이라는 든든한 동아줄만 붙잡고 있으면 무슨 일을 하던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별다른 이변 없이 의회당 후보가 항상 당선되었고, 당선이 되면 자신들의 뒤를 봐주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지역 또는 카스트에 기반을 둔 정당들이 세력을 얻고 이들이 점점 더 많은 당선자를 내면서 인도의 중앙 및 지방 정치 지형은 바뀌게 된다. 이제 폭력세력은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된다. 의회당이 아닌 다른 정당이 당선되고 혹독한 정치적 보복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인도의 정치학자인 밀란 바이쉬나브(Milan Vaishnav)는 그의 저서 ‘범죄가 돈이 될 때(When Crime Pays)’에서 인도 정치판을 서성이던 폭력조직들이 이렇게 급변하는 정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직접 정치판에 뛰어들기 시작한 배경과 그 결과를 자세하게 서술했다. 그는 폭력조직들의 이러한 체질 변화가 마치 기업들이 산업을 ‘수직계열화’하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설명한다. 기업들이 부가가치가 낮은 원재료 가공업에서 점차 더 많은 돈벌이가 되는 제조, 설계 그리고 디자인과 마케팅으로 옮겨가듯이 폭력조직들은 정치조직으로, 폭력배들은 정치인으로 변신했다는 것이다.


의회당의 세력 약화와 더불어 폭력배들이 정치인으로 변신하는데 영향을 미친 요인들이 몇 가지 더 있다. 첫째, 이념적 대립이 분명하지 않고 당선 가능성이 중시되는 인도의 정치 문화도 폭력조직과 연루된 정치인이 성장하는데 좋은 환경이 되었다. 정당의 입장에서는 전과 기록이 주렁주렁 달린 정치인이라 하더라도 특정 지역이나 카스트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 인도의 정치자금법이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의회당은 정치인들에 대한 기업인들의 영향력 행사를 막겠다는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1985년까지 정치인들에 대한 기부 행위를 사실상 금지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는 오히려 정치자금을 음성화 시켰고 결국 인도의 정치자금법은 인도의 정치인중 그 누구도 지키지 않는 법이 되고 말았다. 셋째, 인도 독립 이전부터 자신의 마을이나 카스트, 부족을 위해 저항하다가 감옥에 가는 사람들을 의인으로 취급하는 인도 특유의 문화도 이러한 분위기를 키웠다. 엄연히 살인이나 폭력행위를 저지른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마치 마을이나 카스트 그리고 부족을 수호하는 ‘로빈 후드’처럼 대접하는 분위기가 아직도 만연하다.




[# 4] 추가로 밝혀진 사실들..


그렇다면 이러한 ‘로빈 후드’ 정치인들은 뽑아주면 그가 속한 마을이나 카스트는 부유해지는 것일까? 2019년 개발경제학 분야에서 권위 있는 한 학술지에 정교한 통계학적 방법론을 동원하여 범죄 경력이 많은 정치인을 선출한 마을이 과연 경제 성장이라는 선물을 가져다 주었는지를 평가한 논문이 실렸다. 결과는 놀랍게도 부패한 정치인이 선출된 지역은 오히려 다른 지역보다 약 2.4% 정도 낮은 경제성장률을 보였으며, 정치인이 연루된 범죄가 강력범죄이거나 금융범죄일수록 성장률 격차는 더 커진다는 연구 결과였다. 언뜻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이런 결과는 도대체 왜 생기는 것일까?


조금만 생각해보면 금방 이유를 알 수 있다. 대개 이런 부패한 정치인들은 으리으리하고 눈에 확 띄는 대규모 건설공사들 예를 들어 도로나 교량과 같은 공사를 자기 고향 마을에 유치하는데 주력한다. 신문기자들을 불러다 놓고 멋진 행사를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이런 공사를 수주하는 기업이 부패 정치인과 연결되어 있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건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일용직 고용도 발생하고 잠깐 동안 경제가 좋아지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지역에서는 오히려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의미의 빈곤퇴치 예를 들어, 문맹률 감소나 전기 보급률 증가와 같은 효과가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부패한 정치인들이 눈에 띄는 행사에 집착하는 동안 실제로 가난을 퇴치하는 일은 점점 실현하기 어려운 목표가 된다는 말이다.


유권자들에게 정치인들과 관련된 정보를 더 많이 알려주기만 하면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인들이 자연스럽게 퇴출될 것이라는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정치학 이론은 인도의 정치 환경에서 맥을 추지 못 한다. 극심한 빈곤이 지속되는 나라가 지리적, 사회적, 계층간 분열을 치유하지 못한 채 제대로 된 행정 서비스마저 제공하지 못하면 결국 유권자들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후보를 - 비록 그 후보가 중범죄자라 하더라도 - 택한다는 냉정하고 씁쓸한 현실이 지금 인도에서 벌어지고 있다. 유권자들의 교육 수준과 경제 수준은 꾸준히 높아졌지만 그렇게 높아진 교육 수준과 정보 획득 능력을 활용해 ‘로빈 후드’ 정치인을 능동적으로 찾아서 투표하는 유권자들이 살고 있는 나라... 


그게 바로 지금 현실 속 인도이다.


///


* 사진 : 케랄라주 출신 인도의회당(Congress Party) 소속 하원의원인 Dean Kriakose로서 2019년 당선 당시 가장 많은 형사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밝혀졌는데, 과실치사, 가택침입, 강도, 협박 등 총 204건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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