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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Sep 29. 2022

해외 거주 인도인(NRI)의 이면...

때로는 부유한, 때로는 비참한 해외 거주 인도인들의 삶...

[# 1] 모디 총리의 미국 방문 시 스타디움을 가득 채웠던 인도 출신 교민들


2019년 9월 22일,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NRG 스타디움에 세계에서 가장 큰 두 개의 민주국가 수장이 손을 잡고 입장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였다. 행사 시작 한참 전부터 스타디움을 가득 채우고 있던 약 5만 명의 관중들은 ‘Howdy Modi(안녕하세요. 모디)’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얼굴 가득 미소를 띤 두 사람은 서로를 ‘진정한 친구’, ‘충직한 동료’라고 치켜세우며 듣기 좋은 소리로 가득 찬 열정적인 연설로 관중들을 흥분시켰다.


자, 그렇다면 이날 NRG 스타디움을 가득 채웠던 5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대충 짐작하셨겠지만 이들 대부분은 미국에 살고 있는 미국 국적의 인도 출신 교민들이었다.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재미교포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인도에서는 이들을 ‘인도 출신 해외 시민(Overseas Citizenship of India)’라고 부른다. 2018년 기준 인도 외무부의 집계에 따르면 전 세계에 약 1,870만 명이 흩어져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중에서 가장 많은 약 318만명 가량이 미국에 살고 있다. 그 뒤로 인도의 인접 국가들인 말레이시아(276만 명), 미얀마(200만 명), 스리랑카(160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정착한 나라에서 성실하고 근면하게 돈을 모아 탄탄한 기반을 마련했고 아주 특별한 이유가 아닌 이상 인도로 되돌아올 계획을 갖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헌법에 따라 이중 국적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인도 정부는 과거에는 이런 해외교포들을 인도 출신 시민(Persons of Indian Origin: PIO)라고 분류하여 15년짜리 장기 비자도 발급해주고, 인도에 입국하여 체류할 경우 체류 일자가 180일 이내면 체류증을 발급받아야 하는 의무도 면제해주는 등 나름 편의를 봐주고 있었다. 또한, 이들이 인도 국내에서 소득을 올릴 경우 내국인에 준하는 비교적 낮은 세금을 부과하는 등 경제활동도 수월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해외교포들의 경제력도 성장하고 이들의 정치적인 입김도 세지면서 이들 중 일부는 인도 정부에게 이중국적을 갖게 해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이들이 인도에 자본을 투자하고자 하는 관심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데에 주목했다. 인도 경제를 개발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총리에 당선한 모디 총리에게 해외교포들의 자본은 놓칠 수 없는 돈이었다. 인도 정부는 해외교포들에게 평생 동안 유효한 입국 비자를 발급해주고 체류증을 발급받아야 할 의무도 전면 폐지한 OCI 제도를 도입한 후 기존의 PIO 카드 소지자들에게는 별다른 절차 없이 OCI 자격을 자동으로 부여했다. 인도 정부 입장에서는 자본과 투자 의지를 가진 해외교포들을 인도로 끌어들일 수 있게 되었고, 해외교포들의 입장에서도 비록 이중국적은 얻지 못했지만 인도 국적자처럼 편하게 인도를 왕래하며 사업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 2] NRI... 원래는 해외에 거주하는 주재원을 이르는 말...


이와는 달리 인도 국적은 유지한 채 해외에 체류하면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비거주 인도인(Non Resident Indian: NRI)’이라고 불리는데, 인도 내에 ‘거주하고 있지 않은 인도인’이라는 뜻이다. OCI가 외국국적을 가진 재외동포라고 한다면 NRI는 인도 국적을 보유한 해외 주재원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하지만, 인도의 일반 국민들은 OCI와 NRI가 가진 차이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해외에 거주하는 인도인들을 그들의 국적과는 상관없이 NRI라고 통칭하기도 한다.


자, 이러한 NRI들은 어느 나라에 많이 주재하고 있을까? 인도 외무부의 자료에 따르면 UAE(342만 명), 사우디아라비아(259만 명), 미국(128만 명), 쿠웨이트(103만 명), 오만(78만 명), 카타르(75만 명) 등의 순서이다. 전 세계 NRI 인구가 약 1,345만명 가량인 점을 감안하면 전체 NRI의 약 64%인 약 856만명 가량이 중동의 다섯 개 나라에 모여 있다. 물론, NRI 중에도 미국이나 영국에 주재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 거주 국가에 상관없이 고소득 사무직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기는 하다. 하지만 통계에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해외 거주 NRI의 대부분은 중동의 건설현장에서 노동자로 근무하는 인도인들이다. 이들은 중동의 노동현장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을까?


인도 외무부의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9년까지의 5년 동안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카타르, 오만 및 UAE 등 중동의 다섯 개 나라에서 총 33,988명의 인도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하루 평균 무려 20명에 육박하는 인도인들이 머나먼 이국 땅에서 비참하고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 것인데, 고되고 혹독한 노동환경이 가장 큰 이유로 추정된다. 무더운 날씨, 위험한 작업환경, 이로 인해 누적되는 피로와 부상 등이 겹치면서 인도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실제로, 2018년 한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이들 중동 국가에서 사망하는 인도인들의 주요 사망원인은 심장마비 및 기타 심혈관계 질환, 자동차 사고, 추락사, 익사, 자살, 뇌졸중 및 기타 감염질환 등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임금을 체불하거나,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거나, 노동자들에게 비인격적인 대우를 하거나, 노동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의료보험도 제공하지 않아서 부상 또는 질병이 악화되는 경우도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중동 국가들이 경우 출국하려고 해도 출국 비자가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계약기간이 종료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용주들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출국비자 발급에 필요한 각종 서류를 발급해주지 않아서 반강제적으로 중동 국가에 발이 묶이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 3] 해외 노동자들이 무수히 죽어나가지만 개선되지 않는 상황


이렇게 많은 자국민들이 부당한 대우와 혹독한 환경에서 다치거나 죽어가고 있지만 인도 정부의 대응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중동 국가에서 죽을 고생을 하고 있는 자국민들을 무시하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상황이 이 정도에 이르자 인도 내에서도 ‘돈 많고 정치적 영향력이 강한 선진국 거주 OCI들은 인도 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노동자 계층이 주류를 이루는 중동국가 거주 NRI들은 합당한 대우를 못 받고 있다’라는 비판이 제기될 정도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냉혹하고 무서운 정치적, 경제학적 배경이 숨어있다.


우선, 선진국에 거주하는 OCI나 NRI들은 대개의 경우 고등교육을 받고 고소득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이들은 대개의 경우 상위 카스트에 속하며 인도 기득권 세력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세계 유수의 IT 기업에서 CEO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도인들은 아주 대표적인 예라고 하겠다. 그렇다 보니 인도 정부 역시 이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반면, 중동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교육 수준이 낮고 카스트 계급도 낮은 사람들이다. 게다가 케랄라, 타밀나두, 카르나타가, 텔랑가나 등을 포함한 남부 몇몇 주 출신들이 중동 진출 노동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저소득층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인도 정부의 행태와 뿌리 깊은 인도 남부와 북부의 이념적, 정치적 대립 관계를 떠 올려보면 인도 정부가 중동 거주 노동자들의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수요자의 입장을 살펴보자.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중동 국가의 입장에서는 싼 값이 고용할 수 있는 노동자가 서남아 지역에 널려있다. 인도 노동자들이 불평을 제기한다면 더 이상 고용하지 않고 방글라데시나 스리랑카의 노동자들을 추가로 고용하면 될 뿐이다. 그렇다 보니 노동자의 사망 원인을 포함한 기초적인 조사가 제대로 이뤄질 리도 없고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는다. 한창나이인 20대와 30대가 대부분인 이들 노동자들의 절반이 ‘자연사’ 또는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에 대해서 많은 인권단체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중동의 정부들과 고용주들은  침묵하고 있다.


[# 4] 중동으로부터의 송금... 피 묻은 돈인가?


‘송금 경제’라는 말이 있다. 해외에 취업한 자국 노동자들이 본국으로 송금하는 돈이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나라들을 일컫는 말이다. 대부분의 저소득국이 이러한 나라에 해당하며 총 GDP 중 해외송금에 대한 의존도가 무려 20%가 넘는 나라도 2020년 기준 14개가량 된다. 국가대표적인 나라들로는 파키스탄(해외송금액이 총 GDP의 약 12%), 필리핀(9%), 이집트(8%), 멕시코(4%) 등이 있다. 하지만, 제법 경제 규모가 큰 나라 중에도 해외송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나라가 있는데, 필리핀(9.6%), 이집트(8.1%), 방글라데시(5.8%) 등이다.  

* 참고로, 세계은행 통계(2020년 기준)에 따르면 해외송금이 총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가 넘는 14개 국가는 통가(39%), 키르기즈(31.1%), 타지키스탄(26.9%), 레바논(25.6%), 사모아(25.3%), 소말리아(24.9%), 네팔(24.3%), 엘살바도르(24.1%), 아이티(23.8%), 온두라스(23.5%), 버뮤다(22.9%), 감비아(22.7%), 자메이카(22.2%), 레소토(20.9%) 등이다.


그렇다면, 총 해외송금액 규모로는 어느 나라가 세계 1위일까? 2021년 인도가 약 870억 달러를 해외에서 송금받으면서 중국과 멕시코(각각 530억 달러), 필리핀(360억 달러), 이집트(220억 달러)를 가볍게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2020년 이후 코로나 사태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인도 노동자의 중동 진출이 급감한 까닭에 인도로의 해외송금 중 중동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30%까지 떨어졌지만 그 이전에는 절반을 넘어서곤 했었다. 해외송금액(870억 달러)이 인도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를 넘어서고 있으니 중동취업 노동자들이 인도 경제의 1.5%라는 적지 않는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2018년 한 인권단체는 ‘중동 국가에서 1천만 달러의 해외송금이 이루어질 때마다 인도 노동자 한 명씩이 죽어가고 있다’면서 인도 정부의 관심을 촉구했다. 하지만, 냉정하고 무자비한 국제 노동시장의 현실 속에서 인도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인도 정부의 굼뜬 대응이 계속되는 동안, 몇 년치 월급을 털어서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중동에 취업하던 남인도 출신 노동자들은 중동이란 곳이 예전만큼 매력적인 노동시장이 아니라는 것을 서서히 깨달아가면서 발길을 딴 곳으로 돌리고 있다. 그러자 남인도 보다 경제적으로 더 열악한 중부 및 북부 출신 인도인들이 그 빈자리를 점차 채우고 있다. 결국 수요와 공급 그리고 가격이라는 시장의 논리가 자연스럽게 또 한편으로는 냉정하게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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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은 일부 편집을 거쳐 딴지일보에도 게재되었습니다.

https://www.ddanzi.com/ddanziNews/757073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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