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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Oct 01. 2022

인도 진출 기업에게 가장 큰 골칫덩어리... 바로 세금

인도의 예측불가능한 조세 정책 이야기...

[# 1] 인도에서 소득세를 내는 사람은 최상위 부유층이다??


우리나라 국세청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국민 약 2,700만 명이 자신의 소득을 신고하였다. 근로소득세를 납부한 월급생활자와 종합소득세를 납부한 자영업자를 합한 숫자이다. 세금 신고를 하였으나 소득이 낮아서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들(‘납세 미달 인원’이라고 불린다)을 제외하면 실제 세금 납부자의 숫자는 줄어들기는 한다. 그러나, 전체 인구(2020년 기준 5,178만 명) 중 53.2% 가량이 자신의 소득을 신고하였다.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경제활동에서 은퇴한 세대를 제외하면 사실상 모든 경제활동 인구의 소득 상황이 매우 투명하게 집계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자, 그렇다면 인구가 약 14억 명인 인도에서는 과연 몇 명이나 소득세를 납부하고 있을까? 매년 2월 초 정부의 예산안이 의회에 제출되고 4월 1일 새로운 회계연도가 시작되기 전까지 의회에서 예산 관련 논의가 진행될 때 매년 빼먹지 않고 나오는 질문이 바로 이 질문이다. ‘지금 인도에서는 몇 명이나 소득세를 내고 있어요?’ 2019-2020 회계연도 기준으로 그 숫자는 불과 81,322,263명에 불과하다. 14억 인구 중에서 고작 8천만 명이 소득세를 내고 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여기에는 개인뿐만 아니라 법인까지 포함된 숫자라는 것이다. 법인을 제외한 개인은 몇 명이나 소득세를 내고 있을까?


인도에는 매년 2월 1일 재무부 장관이 인도 의회에 직접 출석하여 정부 예산안을 설명하는 연설하는 전통이 있다. 통상의 경우 예산안을 포함하여 그해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설명하는데 2017년 2월에는 조금 특별한 내용이 연설에 포함되었다. 당시 재무장관이었던 아룬 자이틀리(Arun Jaitley)는 ‘2015-2016회계 연도 중 총 3,700만 명가량이 소득세 신고를 했는데 그나마 이중 990만 명의 소득이 면세한도(연소득 25만 루피) 이하였다.’라는 자료를 제시했다. 결론적으로 소득세를 단 한 푼이라도 내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2%에도 미치지 못하다는 것이다.


자이틀리 장관은 그러면서 ‘지난 5년간 1,250만 대의 차량이 판매되고 매년 2,000만 명이 해외여행을 떠나는 인도의 현실에 비추어 소득세 납부 규모는 터무니없이 낮다. 우리 인도는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사회(tax non-compliant society)'이다‘라고 진단했다. 자이틀리 장관의 연설과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각 국가별로 유권자 인구 대비 소득세 납세자 비율 역시 놀랄만한 수준이었다. 북유럽 국가의 경우 유권자의 90% 이상이 납세자였으나, 인도의 경우 유권자의 10%도 되지 않는 사람들만 세금을 내고 있었다.


왜 이렇게 제대로 세금을 내는 사람이 없을까? 일단 전체 노동인구의 10명 중 9명이 제대로 된 노동계약서도 없이 소위 ‘casual worker’이기 때문이다. 노동계약서가 없다 보니 언제든지 일감이 줄어들면 해고를 당하기 마련이고 사회보장보험은 물론이고 퇴직금도 없이 근무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 제대로 된 소득세 신고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자영업자들의 소득세 탈루는 규모도 제대로 추정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게다가 소득세 부과대상을 확대하여 세수기반을 넓힌다 해도 이를 추적해서 세금을 징수할 세무 공무원들의 수도 턱없이 부족하다. 한마디로 세금을 걷고 싶어도 걷을 수 있는 능력이 안 된다. 결국 세금을 징수하기 편한 부가가치세와 같은 간접세 그렇지 않으면 소수의 대기업으로부터 법인세를 받는 데에 점점 의존하게 된다.




[# 2] 세금을 소급해서 징수하겠습니다. 억울해도 참으세요...


때로는 인도의 과세 당국이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을 대상으로 법인세를 ‘너무 잘’ 징수해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를 살펴보자. 2007년을 전후한 시기에는 인도 이동통신 산업에 대한 해외직접투자가 급격하게 늘어난 시기였다. 영국에 본사를 둔 통신사인 보다폰(Vodafone) 역시 홍콩 소재 허치슨 왐포아가 보유한 인도 통신회사 허치슨 에사르(Hutchison Essar)의 지분 중 67%를 110억 달러에 매수하여 인도 진출에 나섰다. 보다폰의 입장에서는 지분의 직전 소유주가 홍콩 법인이었고 주식 매매 거래 또한 인도 영토 밖에서 이루어졌으므로 인도의 세금 부과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도 세무당국이 생각은 달랐다. 실제 거래의 목적물인 통신회사의 실체가 인도에 소재하고 있으므로 인도 세무 당국에게 과세할 권한이 있다고 맞받아쳤고, 결국 취득가액의 20%에 해당하는 막대한 세금을 부과했다. 5년간의 지루한 법정공방 끝에 2012년 인도 대법원은 보다폰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자, 인도 정부는 해외에서 이루어진 거래에 대해서도 소급 과세를 할 수 있는 새로운 법을 만들었다. 아예 대법원의 판결 결과를 뒤집는 새로운 법을 제정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인도 정부를 불쾌하게 한 ‘괘씸죄’를 저지른 보다폰을 콕 집어 겨냥한 조치였다. 아니나 다를까 인도 세무당국은 보다폰에게 당초 부과했던 790억 루피에 각종 이자 등을 더해 무려 1,980억 루피(약 4조 원 규모)를 새롭게 부과하였다. 해외투자자들은 물론 인도 내에서도 이러한 세금 소급적용은 자충수라는 지적이 많았다. 인도의 변덕스러운 조세 행정에 겁먹은 해외투자자들이 인도 진출을 꺼리게 되는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물론 보다폰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인도 정부를 상대로 국제중재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2020년 9월 승소 판결을 얻어냈다. 국제중재재판소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계속 보다폰에 대한 세금 추징을 시도해야 한다고 우익 정치인을 포함한 일부 인사들은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로 인해 해외 투자자금 유입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모디 정부는 결국 소급과세를 중단하는 입법에 나서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른다.


인도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선진국 기업들은 인도 과세당국이 조세 행정이라는 가면을 쓰고 사실상 외국계 대기업을 착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멀쩡하게 잘 영업하고 있는 외국계 은행만을 콕 집어서 세무조사를 한 후 엄청난 세금을 과세하거나 외국계 기업이 공장을 신축할 때에는 가만히 보고 있다가 공사가 다 끝난 후에 갑자기 신축 공장에 새롭게 들어선 공장 설비를 트집 잡아 막대한 세금을 추징하기도 한다. 로열티 수입에 대해서는 낮은 세율을 계속 적용해주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잠깐만 이제 보니 높은 세율 적용해야겠어. 그리고 소급해서 부과할래’라고 나오기도 한다. 한마디로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인도 조세당국은 왜 이렇게 예측 가능성이 낮고 약탈적인 행태를 보이는 걸까? 우선 만성적인 세수 부족에 시달리는 인도 정부의 입장에서는 자국 대기업 또는 외국계 기업으로부터 부족한 세수를 채우고 싶은 유혹을 떨쳐버리기 쉽지 않다. 법령의 해석에 있어서 매우 큰 재량권을 갖는 인도 공직사회의 특성 또한 이러한 분위기를 부추긴다. 게다가 인도 특유의 대기업과 해외기업에 대한 반감에 편승한 일부 정치인과 언론의 선동적 행태도 더해지면 그야말로 외국기업에 대한 마녀사냥이 시작되는 것이다.




[# 3] 인도 진출 기업들에게는 헤어 나오기 힘든 정글... 세금


세계은행(World Bank)이 세계 190개 나라를 대상으로 얼마나 사업을 하기 용이한가를 평가하는 Ease of Doing Business Index라는 것이 있다. ‘사업수행지수’라고 해석할 수 있겠는데, 사업체를 창업하여, 건설허가를 받고, 토지나 건물을 등기한 후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리고 세무당국에 세금을 내면서 사업을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폐업을 하는 사업 사이클 전체를 대상으로 얼마나 용이한지를 평가하는 지수이다. 2020년 기준 인도는 전 세계 190개 국가 중 63위를 차지하면서 그다지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기록했다.


건축허가를 받거나(190개 국가 중 27위) 생산활동에 꼭 필요한 전기를 끌어오거나(22위),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는 것(25위) 등의 행위는 세계 20위권의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분야에서 얼마나 낮은 순위를 기록했기에 최종 순위가 63위를 기록한 것일까? 창업 절차(136위) 및 자산이나 건물을 등기하는 절차(154위), 계약 불이행 시 이를 강제하는 것(163위) 등이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에 조세제도의 불투명으로 인한 세금납부의 어려움(115위)도 한몫을 했다. 인도의 조세 행정에 불만을 쏟아내는 외국계 기업들의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위이다. 게다가 2015년까지는 190개국 중에서 무려 160위권을 맴돌던 조세납부 환경이 그나마 한참 개선되어 115위까지 올라선 것이다. 한 마디로 인도에서 사업을 하게 되면 전기나 상하수도 심지어 자금과 같은 물리적인 자원을 동원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을 겪지 않지만 공무원들을 상대해야만 하는 창업 신고, 각종 등기 및 재판 절차 그리고 납세 등에 있어서는 상당한 어려움을 각오해야만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모디 정부가 들어서면서 조세 분야는 노동법 분야와 함께 가장 중요한 개혁 분야로 중점 추진된 분야이다. 실제로 각 주별로 각각 다른 세율로 부과되던 소비세도 오랜 진통 끝에 통일하여 2017년부터는 새로운 물품서비스세(Goods and Services Tax) 체계를 도입하는 등 조세분야 합리화를 위한 인도 정부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예측 불가능하고 돌발적인 인도의 조세행정 그리고 중앙정부의 지침과 지방정부의 실제 행정 조치가 따로 돌아가는 인도 특유의 환경에 외국계 기업이 적응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의 사상가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죽음과 세금, 이 두 가지는 인생에서 피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던데, 거기에 더해서 ‘인도에서는 세금을 얼마나 언제 내야 될지도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을 추가적으로 기억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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