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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Sep 25. 2022

인도인들의 금 사랑, 그리고 그 비뚤어진 이면...

금값이 치솟으면 여아 낙태가 증가하는 끔찍하지만, 그러나 현실적인 이유

인도가 가장 많이 수입하는 물품은 무엇일까? 산유국도 아닌 14억의 인구 대국이 경제를 꾸려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엄청난 금액의 원유가 수입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로 많이 수입되는 품목은 무엇일까?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한 농산물일까? 아니면 제조업과 IT 산업을 뒷받침할 컴퓨터나 전기 기계장치일까? 둘 다 아니다. 이번 글에서는 인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수입되는 품목과 그것이 인도 경제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 1] 금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인도인들


인도의 10대 수입품 중 두 번째로 많이 수입되는 품목은 다름 아닌 귀금속이다. 2021년을 예로 들자면, 생산활동에 사용되는 전기기계(567억 달러)나 기계장치류(484억 달러) 수입액을 합친 금액에 육박하는 무려 883억 달러가 대표적인 사치품인 귀금속 수입에 사용되었는데, 이중 대부분은 금(558억 달러)과 다이아몬드(263억 달러)였다. 매년 수입되는 금의 규모는 무게 기준으로 약 800-850톤이다. 이러다 보니 인도 일반 가정에서 보유한 금의 총규모가 2만 5천 톤에 달할 것이라는 추정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2만 5천 톤이라는 규모가 잘 가늠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가 외환보유고 중 일부로서 보유하고 있는 금 현물이 약 100톤에 불과하다는 점을 상기하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금 1톤의 시세(‘22년 9월 기준)가 약 4,875만 달러 가량 되므로 인도 가정에서 보유한 금의 총 가격은 무려 1조 2,200억 달러(1,580조원) 정도가 된다. 왜 이리도 엄청난 양의 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일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인도인들이 귀금속 그중에서도 금을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이다. 물론, 인도인들 못지않게 중국인들도 금을 사랑하는 민족이라서 전 세계적으로 판매되는 금의 약 60%는 이 두 개 민족이 거래한다고 알려져 있다. 중국인, 인도인 그리고 중동 국가의 부유층들이 워낙에 금과 같은 귀금속을 좋아하기 때문에 중국의 설날, 주요 힌두교 축제일 그리고 라마단 이드(Eid al-Fitr, 라마단 금식일이 끝나는 축제일)를 전후해서는 전 세계 금값이 출렁인다는 속설이 생겨날 정도였다. 몇몇 경제학자들은 실제로 힌두교나 중국 설날을 전후해서 금값이 영향을 받는지를 통계적 방법론을 동원하여 계산하였고 실제로도 그러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기도 했다.


인도인들이 금을 구매할 때 보여주는 가장 큰 특징은 특정 시기에 금 구입이 몰린다는 것이다. 힌두 신화에 등장하는 락슈미(Lakshmi) 신은 부와 풍요의 신인데, 대다수의 힌두교도들은 ‘금 = 락슈미 신’이라고 동일시한다. 악샤이야 트리티야(Akshaya Tritiya, 5월에 있는 힌두교 봄축제) 또는 디왈리(Diwali, 11월에 있는 힌두교 빛의 축제)와 같은 대형 힌두 명절에 금을 사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하곤 한다. 그렇게 상서로운 시기에 금을 사거나 선물해야만 풍요가 깃든다는 다소 미신적인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 2] 화려한 것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도의 결혼식


금 이야기를 하게 되면 인도인들의 결혼식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매년 천만 건의 결혼식이 몬순이 끝나서 날씨가 선선해진 9월부터 연말까지의 기간에 집중되는데 그 규모가 500억 달러(65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년 230만쌍이 결혼하며 540억 달러(70조 원)를 쓰는 미국 결혼시장에 이어서 세계 2위의 규모이지만 인도의 경우 매년 25-30%씩 성장하고 있어서 세계 1위의 결혼시장이 될 날이 멀지 않았다.


결혼식 장소 대여, 각종 장식, 화려한 예복, 수백 명에서 수천 명에게 제공되는 음식과 선물 등등... 화려한 것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게 인도의 결혼식이다 보니 잊을만하면 인도의 갑부들이 자식들 결혼식에 몇백만 달러에서 몇천만 달러를 아낌없이 썼다는 기사가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독립 이후 약 40여 년 동안에는 이런 과시적 소비를 부끄러워하는 금욕적 문화가 지배적이었지만, 인도 경제가 자유화된 1990년대 이후 급격하게 부를 축적한 대도시 거주 신흥 부호들을 중심으로 호화 결혼식이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면서 이제는 인도를 대표하는 하나의 문화현상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과시적 소비는 사회 상류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반적인 인도인들조차 평생 동안 모은 돈의  20% 가량에 해당하는 100 루피(1,700만원)에서 2,000 루피(3 4천만원) 불과 며칠 동안의 결혼 예식에 아낌없이 쏟아붇는다. 1인당 국민소득이  2,000달러(360만원) 불과한 인도의 소득 수준을 생각하면 깜짝 놀랄 수준의 지출이다. 게다가 코로나 사태가 잠잠해지면서 2022년의 결혼시장은 2021 대비 거의 두배나 성장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와있다.


이렇게 화려한 잔치에 금이 빠질 수 없다. 인도에서 팔리는 금의 약 절반은 결혼식 예물로 판매되는 것인데 여기에는 결혼식 비용을 거의 대부분을 신부 가족이 부담해야 하는 매매혼(賣買婚)의 풍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금값이 갑자기 오르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갑부들이야 금값이 얼마나 오르던 상관이 없겠지만, 딸을 가진 중산층 이하의 평범한 인도 가정에서는 경제적 부담이 훨씬 커지게 된다. 이렇다 보니 일반 인도 가정의 60% 가량이 딸을 결혼시키기 위해서 큰 금액의 빚을 지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딸의 부모가 평생 동안 이 빚에 시달리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 3] 금값이 너무 많이 오르게 된다면...


때때로 경제학자들은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 들으면 눈살을 찌푸릴만한 주제들도 집요하게 연구하여 발표하기도 한다. 2007년 개발경제학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세계적인 학술지에 흥미로운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매우 섬뜩한) 연구결과가 게재되었다. 남인도 지역을 중심으로 여성이 결혼 시 남성에게 주는 결혼 지참금과 결혼 이후 가정 폭력의 상관관계를 연구해본 결과 지참금을 많이 지불한 여성일수록 가정 폭력에 시달릴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었다. 신부가 거액의 결혼지참금을 가지고 오면 경제적 풍요를 기반으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여성의 입장에서도 발언권도 강해지게 될 테니 이런 연구 결과가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이 연구 보고서의 말미에 등장했다. 과거 카스트 상위계급에서만 발견되던 거액의 지참금이 이제는 모든 카스트와 모든 경제계층으로 확대되었고, 지참금 규모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면서 딸을 가진 가정의 부담이 더 커졌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아들 선호사상이 고착화되면서 여아를 대상으로 한 낙태 또는 여아 살해가 더 많아질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다. 다시 말해, 여자 아이를 키워서 결혼시키는 경제적 부담이 실제로 현실화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부모들이 극단적인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몇 년 후, 상상력도 풍부하고 통계 데이터를 꼼꼼하게 뒤지는 성실성마저 겸비한 몇몇 경제학자들이 딸을 결혼시키는 경제적 부담이 증가할 경우 여아 낙태와 여아 살해가 실제로 증가하는지를 통계적으로 검증했다. 그들은 인도인의 결혼 비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도 가격을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금 가격의 변동과 여아 낙태 또는 여아 사망률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최근 약 35년간을 조사한 결과 금 가격이 급격하게 오른 시기에는 인도에서의 여아 낙태와 여아 사망률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증가한 것을 발견하였다. 조금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금값이 갑자기 치솟은 시기를 전후하여 향후 가정경제에 부담이 될 여아를 선택적으로 낙태하거나 심지어 태어난 여아를 살해한 사례가 뚜렷하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 연구 결과 역시 개발경제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술지에 게재되었다. 그리고, 논문의 내용만큼이나 제목도 심상치 않았다. 논문 제목은 ‘금의 가격: 지참금과 죽음(The Price of Gold: Dowry and Death in India)’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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