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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Sep 24. 2022

소고기를 안 먹는 이유가 그리 단순하지 않은 이유

인도의 채식위주 식단에 대한 잡다한 지식들...

어느 나라를 방문하기 전에 알아야할 잡학 중에 가장 긴요한 잡학은 아마도 식사 문화와 관련된 지식들이 아닐까? 무엇을 먹는지, 어떻게 먹는지, 누구와 먹을 수 있고 누구와는 먹지 않는지, 언제 먹는지 등등.. 이런 잡학들 말이다. 인도에 오기 전에 알아두면 다양한 잡학을 이야기해 보자.


먹거리와 관련하여 가장 엄격한 규율을 가진 종교라면 단연코 유대교와 이슬람교를 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소, 양, 염소와 같이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만을 먹을 수 있고, 그나마 피를 제거한 이후에 율법에서 정하는 방식으로 요리한 것만을 먹을 수 있는 것이 ‘코셔’라고 불리는 유대교의 요리 방식이다. 어류의 경우에도 비늘이 있는 물고기만 허용된다. 그러다 보니 돼지고기, 비늘이 없는 장어류의 물고기, 조개나 낙지 같은 연체동물 등도 당연히 금기시된다. 이슬람교 역시 유대교와 비슷한 금기를 가지고 있다. 인도 특히 힌두교도들이 가진 가장 독특하면서도 잘 알려진 식문화는 바로 소고기를 섭취하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살펴보면 인도의 식사 문화와 관련하여 다양한 측면을 발견할 수 있다.




[# 1] 소를 죽이지도 않고 먹지도 않는다


첫째로, 인도에서 소를 죽이지 않고 먹지도 않는 것이 단순히 종교적 전통일까 아니면 법률로 금지된 범죄행위일까? 만약 법으로 금지되었다면, 인도에서 소를 도축하고 운반하고 판매하고 요리하고 먹는 행위 중에서 무엇이 금지되어 있을까? 소를 도축하는 행위는 대부분의 주에서 법으로 금지한 범죄행위이다. 그런데,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소의 도축, 운반, 판매 등과 관련된 법률이 주별로 워낙에 제각각이어서 정작 인도인들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소의 도축과 관련된 법률만 봐도 도무지 논리도 일관성도 없다. 어떤 주에서는 소의 도축이 전면 금지되어 있으나, 일부만 금지된 주도 있고, 놀랍게도 전혀 금지되지 않은 주들도 여러개 있다. 암소의 도축만 금지한 주, 특정한 나이에 속하는 소의 도축만 금지한 주들도 있다. 소고기를 보관하기만 해도 처벌받는 경우도 있지만 특정한 온도나 운송 조건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에만 처벌하는 경우도 있다.


지리적으로 살펴보면, 인도 북동부에 위치한 7개의 작은 주들을 제외하고 28개의 주중에서 대부분이 이미 자체적으로 소의 도축, 때로는 소를 요리하여 제공하는 행위까지 폭넓게 금지하고 있다. 때로는 우리나라 돈으로 몇만원에 불과한 벌금형에 처해지지만 구자라트를 포함하여 힌두교의 교세가 강한 구자라트주 같은 곳에서는 최대 종신형에 처해질 수 있는 중범죄이다.


한가지 주목할만한 점은 힌두교 근본주의적 성격이 뚜렷한 인도인민당(BJP) 출신의 나렌드라 모디가 총리로 선출된 2014년 이후 소를 보호하려는 조치들이 중앙정부 차원에서 검토 및 도입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2015년 5월 도축을 목적으로 가축시장에서 소는 물론이고 물소의 거래하는 것을 금지하는 중앙정부의 행정명령이 도입되었다. 겉으로는 동물보호라는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대부분 무슬림들이 종사하는 동물 도축업, 가공 및 수출업을 탄압함으로써 힌두교도들의 표를 결집하기 위한 정치적 책략이었다. 몇 달뒤 인도 연방대법원이 인도 정부의 조치를 위헌이라 판정하면서 중앙정부 차원에서의 소 도축 금지는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다.




[# 2] 극렬힌두교도들이 ‘소를 보호하기 위해’ 행동에 나서게 되면...


하지만, 웬만한 주에는 소의 도축과 운반, 판매 등을 금지하는 다양한 법률이 이미 존재하다 보니 여러 가지 ‘인도스러운’ 상황이 펼쳐진다. 우선, 소의 도축과 운반, 판매를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적발하는 이른바 ‘소 자경단(Cow Vigilante)’이 인도 전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인도의 경찰 인력이 소의 도축과 관련된 감시와 적발 업무에 적극적으로 나설 여력이 없기 때문에 시민들이 나선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순진한 오산이다. 이들은 때로는 각목과 같은 둔기로 무장하고 소를 운반하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 소를 운반하는 사람들을 소를 도축하려는 사람들로 간주하고 일단 공격하고 보는 것이다. 


BBC의 보도에 따르면 나렌드라 모디가 총리에 취임한 2014년 이후 이러한 린치 사건이 빈발하면서 수십명이 그야말로 백주 대낮에 맞아죽고 수백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지만 가해자들에 대한 제대로된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런일이 인도 전역에서 잊을만하면 일어나고 있지만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커녕 BJP의 고위당국자 중에서 이러한 행위에 우려를 표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만약 당신이 무슬림이고 여러 마리의 소를 운반하고 있었다면 이러한 무차별적 공격의 표적이 될 가능성은 훨씬 커진다. 소를 도축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시장에 내다 팔거나 경작용으로 매수해오는 길이었다 하더라도 제대로된 설명을 해볼 시간조차 없이 무작정 공격을 당하게 된다. 소 도축업자로 의심받는 순간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무슬림 뿐만 아니라 불가촉천민 또는 지정부족(Scheduled Tribe)도 동물 도축업에 종사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 이러한 불가촉천민이나 지정부족도 심심치 않게 공격을 받는다. ‘소를 보호한다’는 힌두교 근본주의적 종교 이데올로기가 인도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힌두교도들의 암묵적인 지지하에 폭력적 형태로 변질되면서 결국 무슬림과 하층민을 향한 백색테러가 빈발하는 것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폭력사태 이외에도 몇 가지 측면에서 좀더 우려스러운 점들이 발견된다. 첫째로, 단순히 소고기 뿐만 아니라 육류와 계란류 등 동물성 식단에 대한 반감이 눈에 띄게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힌두교에서는 상층 계급일수록 종교적인 이유로 인해 육류를 섭취하지 않는 채식주의자 인구가 늘어난다. 한마디로 힌두교에서 고기는 하층민들이나 먹는 음식인 것이다. 힌두교 근본주의 운동이 점점 힘을 얻어가면서 예전 같았으면 그냥 넘어갈만한 사소한 일들이 하나하나 시빗거리가 되어가고 있다. 2년마다 열리는 두르가(Durga)라는 힌두여신을 기리는 나바라트리(Navaratri) 축제일에 힌두교 사원 인근에 있는 ‘냄새나는 정육점’들이 9일 동안 영업을 하지 못하도록 행정명령을 발령하였다. 지성과 젊음이 중심이어야 할 대학교 역시 이러한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인도 유명대학 캠퍼스 한복판에서도 힌두교 근본주의 세력인 RSS를 추종하는 대학생들이 힌두교 라마신의 탄생을 축하하는 람 나바미(Ram Navami) 축제일에 학생식당 식단에 닭고기가 오른 것을 두고 거칠게 항의하다가 이를 제지하는 다른 학생들과 충돌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힌두교가 좀더 융성한 북인도뿐만 아니다. 인도 남부의 카르나타카 주에서는 2021년에 점심 메뉴에 계란을 포함시켰다가 작지 않은 소동이 벌어졌다. 다른 정당도 아니고 BJP가 주정부를 이끄는 남인도의 카르나타카에서 학생들의 단백질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고기도 아닌 계란을 제공하려다가 힌두교 및 자이나교 커뮤니티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산 것이다.


이렇게 고기는 물론이고 동물성 단백질마저 경원시되다보니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신세가 된 것은 물소 고기이다. 원래 인도에서 소의 섭취는 금기시되지만 물소(buffalo)의 섭취는 금지되지 않았다. 소고기보다 좀더 질기고 맛이 떨어져서 ‘소고기의 값싼 대용품’ 정도로 대접받는 물소 고기는 인도에서도 일부 소비되지만 주로 베트남을 포함한 동남아 지역, 일부 중동 국가들에 수출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물소를 도축하고 수출하는 국가는 독자 여러분도 짐작하셨겠지만 인도이다. 하지만,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소 보호 정책이 본격화되던 2014년을 전후하여 물소 도축 및 수출마저 덩달아 주춤하면서 물소 사육과 도축에 종사하던 수 많은 축산인들이 - 주로 무슬림과 불가촉 천민들 - 많은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 소 보호 정책이 사실상 종교 탄압이라는 비난이 계속되자 최근 인도 상무부는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인도의 2020-2021회계년도중 인도는 약 31억 7천만불 가량의 물소를 수출하면서 세계 제1의 물소 수출국가 지위를 지키고 있다고 보도자료를 내는 등 악화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나섰다. 같은 기간 동안 인도가 수출한 모든 농축수산물의 규모가 410억불인 것을 감안하면 물소 수출이 얼마나 큰 규모인지 알 수 있다.




[# 3] 채식과 육식에도 스며들여 있는 남녀 차별의 그림자


인도 중부 및 북부에 위치한 소위 힌디 벨트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채식 비율이 높고 동부와 남부로 갈수록 채식 인구는 급격하게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편한 진실이 하나 더 숨어있다. 2019년부터 2021까지 걸쳐 실시된 '국가 가족건강 서베이(National Family Health Survey)'에 따르면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에 채식주의자 비율이 크게 차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경향은 채식주의자 비율이 높은 지역에서도 예외없이 나타났는데, 예를 들어, 하리아나, 펀잡, 구자라트주의 경우 남성은 40-50% 가량이 채식주의자로 나타났지만 여성의 경우 60-8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 그렇다면, 대개의 경우 여성이 신앙심이 깊고 남성에 비해 적은 양의 칼로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여성에게서 채식주의자 비율이 높은 것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아도 되는걸까? 채식을 하는 인도 여성들도 우유는 물론이고 콩을 포함한 식물성 단백질을 꾸준히 섭취하고 있다는 것은 인도 정부의 조사에서도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인도인들이 단백질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농촌 지역에서 이러한 현상은 더 두드러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연령대별로는 임신 및 수유기 여성들이, 지역별로는 농촌지역에 거주하는 여성들이 채식을 통해 섭취하는 단백질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은 꾸준히 지적되고 있다.


잠시 스쳐가듯 살다가는 필자와 같은 외국인이 인도 농촌 지역에 사는 여성들이 어떠한 영양상태에 직면해 있는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리아나, 펀잡, 우타르 프라데시 등 인도의 주요 곡창지대에서는 여성들도 남성 못지않게 혹독한 노동 강도에 시달리곤 하는데, 이러한 지역에서 유독 여성들의 채식 비율이 높게 나타나는 것은 계속 마음에 걸린다. 혹시라도 수백년간 지속된 빈곤의 굴레 속에서 그나마 얼마 되지 않는 동물성 단백질을 남성에게 양보하고 정작 여성들은 신앙의 이름 아래 채식을 '선택'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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