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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Oct 18. 2022

다섯 개의 단어로 알아보는 인도 사회의 현재 모습

쓰다 보니 여섯 개네요...ㅎㅎ

인도라는 나라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머리를 스치는 단어를 꼽으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카스트 제도를 떠올릴 것이다. 카스트야 말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신분제도이면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회 시스템이니 이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당연하다. 여성 차별과 여성에 대한 각종 범죄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놀랄만 한 수준의 빈부격차, 사라지지 않는 각종 부정부패 또한 인도와 함께 연상되는 단어들이다. 카스트를 포함하여, 인도에서의 여성의 지위, 부정부패, 빈부 격차 등등.. 이런 심란한 단어 이외에 인도의 현재 사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조금은 가벼운(?) 단어를 다섯 개 정도 골라본다면 무엇이 있을까?




[# 1] ‘다양성 속의 통일성’


인도를 정의할 수 있는 첫 번째 단어로는 ‘다양성 속의 통일성(Diversity in unity)’이라는 개념일 것이다. 이 표현은 외국인들 뿐만 아니라 인도인들도 자신의 나라를 표현할 때 즐겨서 사용하는 표현인데, 원래는 인도의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가 인도의 독립 이전부터 사용해온 제법 뿌리가 깊은 표현이다. 도대체 인도에서는 무엇이 얼마나 다양하다는 걸까? 


우선 인종부터 매우 다양하다. 인도 인구 10명 중 7명은 소위 인도-아리안계 계통으로 코가 높고 눈이 깊으며 얼핏 보면 남유럽인과 비슷한 용모를 가졌다. 전체 인구 중 약 25%를 차지하는 드라비다인들은 피부색이 짙으며 주로 남인도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미얀마 등의 나라와 접경하고 있는 인도 북동부의 7개 주에는 동아시아인들과 비슷하게 생긴 몽골로이드들도 살고 있으며, 빙하시대에 아프리카에서 이주하여 현재 인도 남서부 케랄라주를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는 니그리토 종족, 인도양의 섬 지역에 주로 거주하는 프로토-오스트랄로이드 종족도 있다.


언어는 훨씬 더 다양하다. 2011년 인도 정부의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인도에는 각종 방언을 포함하여 무려 19,569개의 언어가 있는데, 100만 명 이상이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는 언어만 30개가 넘는다. 이 중에서 총 22개 언어가 인도 헌법상 공용어 지위를 인정받고 있으며 우리나라 인구인 5천만 명 이상이 모국어로 사용하는 언어도 7개가 넘는다. 북부와 중부에서 주로 사용되는 힌디어는 인도-아리안 어족이지만, 남부에서 주로 사용되는 타밀어, 텔루구어 등은 드라비디안 어족이고, 북동부에서는 티벳어족의 영향을 받은 소수종족 언어도 다양하게 분포한다. 전체 인구 중 약 57%가 힌디어를 구사할 수 있지만 힌디어가 모국어(제1언어)인 인구는 전체 인구 10명 중 4명 정도에 불과하다. 즉, 우리가 인도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힌디어마저 인구 절반 이하가 제1언어로 사용하고 있는 언어인 것이다.

 

수천 년간 갈등과 화해를 반복하면서 서남아시아 지역에서 생겨나서 서로 경쟁하는 종교들이 만들어낸 다양성 또한 인도가 가진 사회적 다양성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그리고, 언어적 종교적 다양성에서 파생된 각종 생활습관이나 문화는 책 몇 권을 써도 될 정도로 다양하니 이쯤 되면 인도야 말로 다양성의 끝판왕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 2] ‘인디아 vs 바라트 ’


인도를 이르는 영어인 ‘인디아’는 원래 인더스 강을 가리키는 산스크리트어 ‘신드(Sindhu)’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페르시아어로는 힌두(Hindu)로 발음이 바뀌었고 그리스어에서는 맨 앞의 H가 탈락하면서 현재 영어에서 쓰이는 India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 하지만, 인도인들은 자신의 나라를 ‘바라트(Bharat)’ 또는 힌두스탄(Hindustan)이라고 즐겨 부른다. 마치 우리가 Korea 대신 대한민국을 사용하고 일본인들이 Japan 대신에 '니뽄'이라는 말을 쓰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힌두스탄은 ‘힌두교도들(Hindu)의 나라(stan)’라는 뜻이다. 1947년 인도의 독립을 전후하여 인도 국명으로도 거론되기도 하였으나, 전체 인구의 약 20%를 차지하는 비힌두교도들의 정서를 감안하여 결국 인디아라는 영어식 이름이 국명으로 채택되었다. 통일성과 다양성 사이에서 다양성이 선택된 사례라고 하겠다.


바라트 또는 바라타(Bharata)라는 단어는 기원전 북인도 지역에서 가장 융성했던 부족의 이름으로 기원전 15세기에서부터 약 500년간에 걸쳐 만들어진 리그베다라는 서사시에도 등장한다. 이후 기원전 9세기경에 만들어진 마하바라타(Mahabharata)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왕도 바라타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굳이 비유하자면 ‘바라트’라는 단어는 우리나라의 ‘한(韓)’이라는 말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축구 국가대표 경기를 응원하러 경기장에 들어갔다가 ‘대한민국’이라는 외침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벅차오르듯이 인도인들에게도 그런 느낌을 주는 단어라고 하겠다.


조금만 더 확대해서 해석해보자면 인디아라는 단어는 여러 종교를 믿고 여러 언어를 말하는 다양성의 인도를 상징하는 단어라면 ‘바라트’라는 단어는 힌두교를 믿고 힌디어를 말하는 통일성의 인도를 상징하는 단어라고 보면 되겠다. 정치적으로 해석하자면 인디아라는 단어는 유복한 상위 카스트 계급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영국 유학 등을 통해 영어에도 능숙해진 인도의회당(Congress Party)과 좀 더 어울리는 단어라면 ‘바라트’라는 단어는 영어보다는 힌디어에 익숙하고 카스트 계급도 좀 낮은 소상공인들과 농민들을 지지계층으로 하는 인도인민당(BJP)와 좀 더 어울리는 단어라고나 할 수 있다.




[# 3] ‘마른 날’이라뇨? 도대체 무슨 소리죠?


힌두교의 입김이 점점 강해지는 현재의 인도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역을 꼽으라면 단연코 인도 서부의 구자라트주이다. 현 인도 총리인 나렌드라 모디의 정치적 기반이면서 힌두교의 영향력이 상당히 강력한 지역으로서, 우리나라로 치면 성리학의 본고장인 경상북도 같은 느낌의 지역이다. 구자라트 출신의 마하트마 간디는 금주를 강력하게 주장해왔고, 그의 목소리는 결국 인도 헌법 제47조에 ‘국가는 금주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으로 결실을 맺게 되었다. 실제로 인도의 28개 주중에서 하리아나를 포함하여 5개의 주가 한때 금주령을 시행했다가 현재는 폐지한 상태인데, 지금도 금주령을 시행 중인 주는 구자라트를 포함하여 총 4개이다. 이 중에서 구자라트가 가장 오랫동안 가장 강력하게 금주령을 시행해오고 있다. 그 때문에 구자라트는 ‘술을 마시지 않는 주(dry state)’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인도에 살다 보면 가끔 ‘마른 날(dry day)’라는 표현을 듣게 된다. 비가 오지 않는 건조한 날이라는 뜻이 아니다. 술을 팔지 않는 날이라는 뜻이다. 평생 동안 금주를 주장해온 간디의 탄생일(10월 2일)은 인도 독립 이래 수십 년간 술을 팔지 않는 ‘마른 날’로 지켜지고 있다. 이외에도 독립기념일(8월 15일)을 포함한 몇몇 국경일에도 알콜 판매는 금지되어 있다. 이런 전국적인 공휴일에는 구자라트와 같은 dry state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알콜 판매가 금지된다. 가끔은 선거를 앞둔 하루 이틀 동안의 기간에도 dry day가 선포되곤 한다. 인도가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이기는 하나 아직도 유권자들에게 푼돈 몇 푼과 각종 금품을 뿌려대는 행태가 특히 인도의 시골 지역에서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에게 술을 배포하는 정치인들이 늘어나면서 선거를 전후한 폭력사태가 증가하자 인도 정부는 선거를 전후한 며칠을 dry day로 선포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거의 전통으로 자리 잡혀서 선거를 전후한 며칠 동안 술 판매는 금지되곤 한다.


결론적으로, ‘dry’라는 단어에는 힌두교의 종교적 전통과 현대의 쾌락주의가 충돌하는 지금 인도의 모습이 담겨 있다고 하겠다. 또한, 눈앞에 닥친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따라 수시로 마음을 바꾸는 인도 유권자들의 변덕스러움 그리고 이러한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는 인도 정치인들의 부끄러운 모습도 같이 담겨 있다.



    

[# 4] 자립과 자조가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되면...


기왕에 마하트마 간디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에 대한 이야기로 이번 글을 마무리해보자. 인도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을 꼽아보라면 대부분의 사람은 간디를 떠올리고 그의 가장 대표적 이미지를 꼽아보라면 그가 인도식 소형 물레(Charkha)에 앉아 실을 뽑고 있는 모습일 것이다. 영국의 식민지 수탈에 맞선 가장 대표적인 저항운동을 꼽으라면 ‘스와데시(Swadeshi)’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스와(swa)는 ‘우리’ 또는 ‘자기 자신’이라는 의미이고 데시는 ‘나라’라는 뜻이라서 뜻을 풀이하자면 ‘우리의 나라’이다. 영국산 물품을 배격하고 국산품 애용을 주장한 이 운동은 영국 식민 시대에 꾸준하게 계속되었지만 인도 전역에서 가장 강력하게 조직화되고 세계인의 이목을 끌게 된 것은 간디가 이 운동을 주도하면서부터이다.


영국에서 수입된 공산품의 소비를 배격하고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만든 국산품을 애용하자는 운동으로서, 서양 제품을 불태우는 화형식, 서양 제품 판매점 앞 시위 등과 함께 직접 물레를 돌려서 자신들의 옷을 만들어 입는 운동도 상당한 반향을 얻었다. 인도는 1947년 독립을 쟁취했지만 독립 이전에 수십 년간 지속되어 온 ‘경제 자립’에 대한 꿈은 이후에도 인도 정부가 외국으로부터 물건을 수입하기보다는 자신들 스스로 제품을 생산하는 이른바 ‘수입대체산업’ 육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수입대체산업 육성 정책은 네루로부터 인디라 간디 총리에 이르기까지 약 30년이 넘게 지속된 계획경제 시스템 하에서 엄청난 비효율과 낮은 생산성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인들의 ‘자립’과 ‘자조’에 대한 믿음은 굳건하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인도의 제조업 부흥을 기치로 내건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정책을 내세워 추진 중인데, 그 뿌리 역시 스와데시 운동에 있다. 자신들의 손으로 제조업을 일으켜서 인도를 부강한 국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다만, 동인도회사의 착취와 뒤이은 대영제국의 무자비한 탄압에 대한 집단적 기억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는 인도에서 스와데시 운동이 남겨놓은 반외국인 정서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있다. 결국 인도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은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적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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