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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Oct 23. 2022

약탈적인 인도의 기업문화...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사회적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자본...

[# 1] 회의시간에 그들이 조용한 이유


일 년에 서너 번 대사관에서는 인도 내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체 관계자를 불러 모아 회의를 갖곤 한다. 한국 기업들이 인도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을 듣고 이를 인도 정부에 전달하여 해결하는 것이 대사관의 주요 업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보통 업종에 따라 10여 개의 기업들이 따로 모이게 되고 경제분야를 담당하는 외교관들도 같이 자리한다. 이러한 회의에서 오고 가는 대화들은 통상 일정한 패턴을 따르게 된다.


이런 회의는 산업 또는 경제분야를 담당하는 외교관이 새롭게 부임한 후 우리 기업들의 고충을 듣고 이를 인도 정부에 건의하여 시정해보려는 의욕이 넘쳐서 개최되게 마련이다. 회의가 시작되면 어떤 이야기라도 좋으니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달라고 기업체 담당자들에게 계속 권한다. 2년만 지나면 인도 같은 ‘냉탕’을 떠나 ‘온탕’으로 부임하게 될 외교관과는 달리 짧게는 4,5년 길게는 10년 넘게 인도에만 근무하면서 그야말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기업체 주재원들은 이런 회의에서 대개의 경우 말이 별로 없다.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대개의 경우 대사관에서는 행정 편의를 위해 동종업종의 기업들을 불러 모을 수밖에 없는데, 막상 그 자리에 모인 기업들 입장에서는 경쟁업체들과 한 자리에 모여있는 셈이다. 자신들의 영업 비밀을 손쉽게 털어놓기가 어렵다. 2년 후면 떠나게 될 외교관에게 아무리 자신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나 불합리한 처우를 이야기해봤자 그 사람의 임기인 2년 이내에 해결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얘기해 봤자 뭐하나?’라는 심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가 가장 오래 근무했거나 또는 성격이 좀 적극적인 사람 한 명이 물꼬를 트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조금씩 이야기가 진행된다. 참석한 기업체들의 발언이 한 바퀴쯤 돌고 나면 회의를 주재한 외교관들은 난감해지기 시작한다. 아무리 인도가 후진국이고 사업하기 어려운 나라라고는 하지만, 한국으로 보내야 할 ‘회의 결과 보고서’에 담기 곤란할 정도로 생생한 부패와 불합리한 사례가 차고도 넘치기 때문이다. 인도에 처음 진출한 기업들이 겪는 경험의 순서에 따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2] 이해하기도 적응하기도 힘든 인도의 사업 관행


우선, 인도라는 나라에 처음 진출하여 합작 파트너와 사업관계를 맺거나 또는 거래처와 계약을 하게 되면 온갖 독소 조항으로 가득 찬 계약서 초안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나라처럼 웬만한 거래에는 이른바 ‘표준거래 약관’ 또는 ‘표준 거래 계약서’가 존재하는 사회가 아니다. 계약서 조항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뜯어서 읽어보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서명했다가는 결정적인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꼼짝없이 손해를 감수하게 된다. 인도 진출 초기부터 좀 비싼 비용이 들더라도 실력이 좋은 현지 법무법인을 고용한 외국계 기업들은 이러한 독소조항들을 빠짐없이 발견할 수 있지만 이런 소소한 비용을 아끼려고 법률 검토를 제대로 안 한 기업은 나중에 큰 코를 다치게 된다.


계약서 협상이 다 끝나서 서명을 하려 해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다 합의해놓고 막판에 서명을 앞두고는 갑자기 더 낮은 가격을 요구하거나 이미 마무리된 쟁점을 다시 끄집어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럴 경우 난감해지는 것은 한국기업의 담당자이다. 계약서 협상 다 끝났다고 이미 한국에 있는 본점에 보고했고, 계약서에 서명하기 위해 본사의 고위급 임원이 이미 비행기를 타고 인도로 날아오고 있는데, 인도인들은 중요 쟁점을 다시 논의하자고 하는 것이다. 이제 비행기에서 내린 임원에게 깨질 일만 남은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인도인들이 막판에 요구하는 사항을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줄 수밖에 없게 된다. 인도인들은 이렇게 외국계 기업의 생리와 약점을 정확히 알고 이를 교묘하게 이용할 줄 안다.


공공부문에서 발주하는 토목건설 사업에서도 온갖 무협지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인도에서는 입찰의 단계가 2단계로 나뉘는데, 통상 기술경쟁력을 심사하는 1차 입찰과 가격을 심사하는 2차 입찰로 구성된다. 1차 입찰에서의 점수와 2차 입찰에서의 가격을 합리적으로 조합하여 최종 우선협상대상자를 선택하는 대부분의 나라와는 달리 인도에서는 최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시 1차 입찰을 통과한 기업 중에서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낸 기업을 무조건 뽑는 형태의 발주 형태도 많다. 한마디로 최소한의 기술 수준만 겨우 갖춘 기업이 1차 심사를 턱걸이로 통과한 후 2차 심사에서 헐값을 써내서 계약을 따낼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는 것이다. 이렇게 계약을 수주한 기업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인도 토종기업이고 이들이 발주처와의 짬짜미를 거쳐 계약금액을 차츰차츰 증액하는 방식으로 결국에는 자신들의 손익분기점까지 금액을 올리게 되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기업이 수주를 해서 계약서까지 서명했다고 해도 끝난 게 아니다. 사업 발주자의 빈번한 사양 변경과 이에 따른 설계 변경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대형 건설사업이든, 작은 가전제품을 하나 만드는 일이든 설계를 하나 바꾼다는 것은 그 뒤에 따라오는 생산라인 그리고 납품처까지 바꿔야 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한마디로 설계 변경 한건 한건이 모두 다 돈이 드는 일이다. 때로는 순수하게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때로는 발주처의 친분이 있는 특정 인도 기업을 사업에 하청업체로 참여시키기 위해 수시로 설계 변경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러한 설계 변경에 따른 생산원가 상승을 발주처에게 청구하여 받아낼 수 있을지 없을지는 순전히 기업의 능력에 달려있다. 여기에 업계를 가리지 않고 만연하는 뇌물 문화 또한 빠질 수 없다.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억대에 달하는 뇌물을 자연스럽게 요구하는 인도 공무원 또는 인도 내 납품 기업의 요구까지 직면하게 되면 이제는 웬만한 기업이라면 두 손 두발 다 드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 3] ‘사업은 곧 거짓말’이라는 가르침이 불러오는 ‘약탈적’ 사업환경


“‘사업은 곧 거짓말(business is cheating)’이라고 가르치는 나라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나?” 필자가 몇 년전에 참석했던 대사관 회의에서 한 기업인 분이 허탈하게 내뱉은 말이다. 그렇다. 인도에서는 사업은 곧 거짓말이다라는 철학을 아주 어릴 때부터 가르친다. 이를 좀 듣기 좋게 표현하자면 내가 거래 상대방보다 더 우월한 정보를 가진 소위 ‘비대칭적 정보 상황’이라면 이를 최대한 활용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상대방이 인도에 처음 진입하여 전후좌우도 제대로 분간 못하는 외국계 기업이라면 이러한 태도를 가진 인도 기업인들에게 그야말로 최적의 사냥감이 되는 것이다.


인도를 흔히 대표적인 ‘저신뢰 사회’라고 부른다. 자신이 속한 가족, 마을, 씨족 집단, 카스트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끈끈한 유대감과 신뢰를 갖지만 이러한 범주를 벗어난 타인들은 믿지 못하는 사회라는 뜻이다. 그렇다 보니 자신의 씨족 집단이나 마을, 카스트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선뜻 신용으로 돈도 빌려주고 사업도 동업하지만 그렇지 않은 외부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약탈적’인 행태를 서슴없이 보여준다. 그렇다 보니 사회 전체적으로는 타인에 대한 신뢰가 매우 낮은 양상을 갖게 된다. 대도시에서 멀쩡하게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인도인들마저 이러한 행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많다. 자신의 직속상관, 카스트, 마을, 언어 집단, 종교집단에 대한 충성심 앞에서는 조직의 규율이나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규범조차 무력해진다. 이렇게 되면, 서양인들과 우리처럼 근대화의 과정을 겪은 동아시아인들이 생각하는 서구적 관료적 사회의 특징들 즉, 분업화와 전문화, 책임과 권한의 명확화, 청렴결백, 능력과 연공서열에 따른 공정한 인사 평가 등이 인도에서는 맥을 못 추는 것이다.




[# 4] 사회적 신뢰...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보이지 않는 자본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1995년에 저술한 그의 대표작 ‘Trust:The Social Virtues and the Creation of Prosperity'에서 한 나라의 복지 수준과 국가경쟁력은 그 나라가 가진 ‘사회적 신뢰’의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다시 말해서 시민 개개인이 자신의 친족과 마을 사람, 그리고 같은 언어를 쓰는 부족을 뛰어넘은 타인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가 그 나라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좀 더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타인을 신뢰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적 장치가 갖춰져 있고 이러한 제도를 기반으로 계약을 맺고, 경제활동을 하고, 계약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법적 조치를 취할 때 그 결과가 예측 가능한지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식민지 인도와 비교해서 전혀 나을 게 없었던 우리나라는 과거의 식민지배국이었던 일본의 1인당 GDP를 조만간 따라잡을 것으로 전망되는 반면, 인도의 경우 영국을 언제 따라잡을 수 있을지는 커녕 도무지 따라잡는 것이 가능할지 조차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우리나라도 불과 100여 년 전에는 자신이 속한 가족만을 신뢰할 수밖에 없는 씨족 중심의 저신뢰사회였을 것이다. 하지만, 약 1세기에 걸쳐 폭풍처럼 진행된 식민지 경험과 끔찍한 전쟁 그리고 근대화의 경험 끝에 이제는 카페나 도서관에 자리를 맡기 위해 노트북이나 핸드폰을 올려놓아도 훔쳐가는 사람이 없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특이한 나라가 되었다.


땅 넓이에 있어서나, 경제 규모에 있어서나, 인구 규모에 있어서나 비슷한 구석이 거의 없이 두 나라가 수십 년에 걸쳐서 서로 다른 발전 궤적을 걸어온 원인을 한 두 개의 문장으로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두 사회가 쌓아올린 사회적 신뢰의 수준이 꽤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미래에도 내가 아닌 타인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 그렇게 생면부지의 사람을 믿고 생활할 수 있는 사회가 유지될지가 우리나라는 물론 인도의 미래를 결정짓게 되지는 않을까? 인도의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때로는 부정적인 예측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혹시라도 누군가가 나에게 인도가 언제 제대로된 성장궤도에 들어설 수 있을지를 물어본다면 나는 조심스럽게 ‘인도가 다른 사람을 믿기 시작하는 신뢰사회로 진입해야만’ 비로소 제대로된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그 신뢰야말로 그 나라를 제대로 발전시키는 가장 큰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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