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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Sep 10. 2022

그나마 있는 정나미도 떨어지게 만드는 인도라는 나라

우리같은 주재원들은 그저 안타깝고 씁쓸한 뿐입니다..

인도는 사람들로 하여금 정나미 떨어지게 만드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여러 가지 면에서 그러하다. 그나마 겨우 인도라는 나라에 정이 들만하면 냅다 달려와 따귀를 때린다고나 할까? 방심하고 있다가는 여지없이 빈정 상하는 일을 겪어야 한다. 오늘도 그런 일을 겪은 하루였다.


지난 며칠간 뉴델리에 소재하는 다른 한국계 기관들과 함께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로 출장을 다녀왔다. 네팔에 소재하는 주네팔 대사관, 그리고 네팔 진출 한국기업들, 네팔의 상공회의소와도 쉴 틈 없이 면담하고 네팔투자청도 만나서 투자 확대 방안도 논의하는, 특별할 것이 없는 전형적인 해외 출장이었다. 엄청난 공해를 뿜어내는 삼륜차(릭샤)가 없다는 점만 제외하면 인도와 비슷해 보이는 카트만두의 시내에 며칠간 머물다 보니 외국에 있다는 느낌마저 옅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출장을 마치고 네팔을 떠나 인도로 다시 들어간다는 것은 네팔을 떠나기 전부터 실감할 수 있었다. 세관을 통과하고 시큐리티 체크를 모두 마치고 뉴델리로 돌아가는 에어인디아 비행기 앞에 서자 다시 한번 몸수색과 짐 수색이 시작되었다. 샘플링 검사도 아닌 전수검사였다. 네팔 당국이 이미 엑스레이 기계를 통해 샅샅이 뒤진 여행객들의 짐을 에어인디아 직원들이 일일이 다 풀어헤쳤다. 엑스레이 기계를 통과시키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풀어헤쳐서 육안으로 수색하는 것이었다. 여성이 들고 있는 짐도 예외가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여성의 짐은 여성이 검사하는 그런 배려도 찾아볼 수 없었다. 네팔의 항공보안 수준을 믿지 못하는 인도가 수작업이라는 전근대적인 방법을 통해서 밀수품이나 마약 등을 다시 한번 찾고 있나 보다..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엑스레이 기계로도 못 찾는 물건을 이 사람들은 맨 눈으로도 찾을 수 있나 보네. 인도 사람들 눈알이 엑스레이인가?"


땡볕에 활주로 한가운데에 사람들을 세워놓고 여행객들의 가방을 풀어헤치는 황당한 행태에 기분이 상한 우리 일행 중 한 분이 불쾌감을 참지 못하고 한국말로 한 마디를 내뱉자 우리 일행들은 터져나오는 허탈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인도에 도착하여 입국심사대 앞에 서자 또다른 황당한 일이 우리 일행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 앞에는 젊은 서양 여성이 한 명 서 있었다. 그런데, 우리 일행과 그 서양 여성 사이로 옷을 멀끔하게 차려입은 젊은 인도인 한 명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새치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인도인들의 새치기 습성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구글에 'Indian'과 'cut in line'을 쳐 넣으면 '인도인들은 왜 자꾸 새치기를 하냐?', '인도인들은 왜 차례를 안 지키냐?', '인도인들은 왜 자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미는가?'... 등의 질문과 이에 대한 답변이 줄줄이 꿰어져 나온다.)


서양 여성이 새치기한 인도 남성을 제지하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이 서양 여성도 인도인들의 새치기 습성에 질릴 대로 질린 사람인 듯했다. 우리 일행 중에 가장 앞에 서 있던 사람(영어를 제법 잘하는 사람이었다)도 합세해서 인도인에게 항의했지만 그 인도인은 들은척만척이었다. 더욱더 우스꽝스러운 것은 이 모든 것을 보고 있던 입국심사대의 공무원은 새치기한 인도인을 제지하거나 뒤로 보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 말쑥하고 부티나는 젊은 인도 청년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새치기에 성공했고 먼저 입국심사대를 통과했다.


"보아하니 사회 지도층 같은데, 그런 사람들부터 저따위로 행동하니 인도가 아직도 이 모양 이 꼴인 게 이해 간다. 에휴"

"새치기하는 사람 보니 인도에 돌아온 게 실감 나네요."

"그러게요. 네팔에서는 사람들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았던 거 같은데..."


밉살맞은 인도 청년이 입국 심사대를 먼저 빠져나간 지 채 1분도 되지 않아 또 다른 젊은 청년이 다시 새치기를 시도했다. 이번에도 역시 멀끔하다 못해 세련미가 풍기는 인도 청년이었다. 두말할 필요 없이 부잣집에서 곱게 자란 사회지도층/부유층이었다. 이번에는 우리 일행들이 모두 큰 목소리로 그 사람을 제지하기 시작했다. 우리 일행들의 단호한 태도에 이 인도인은 주춤하더니 슬금슬금 눈치를 보면서 줄의 맨 뒤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새치기하려던 인도인, 그것도 멀쩡하게 차려입은 부자 인도인을 줄의 맨 뒤로 보내 놓고 우리의 기분은 결코 통쾌하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우리 일행들은 다들 인도에 제법 오래 주재하고 있는 주재원들이었다. 인도라는 나라에 고운 정과 미운 정이 다 든 우리들로서는 화가 나거나 짜증스럽지도 않았다. 인도인들의 이러한 행동거지가 그저 씁쓸할 뿐이었다. 사회를 이끌어가는 사람들 조차 가장 기본적인 매너를 지키지 않는 나라, 인도보다 더 못 사는 네팔 국민들보다도 더 형편없는 매너를 가진 나라, 그런 나라에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러한 사회지도층들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 인도의 일반 국민들이 안쓰럽다는 느낌뿐이었다.


그나마 눈곱만큼 있던 정나미 마저 도착하는 순간 뚝 떨어지게 만드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도에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도착했고, 추석 분위기를 느낄래야 느낄 수 없지만 서로에게 좋은 추석이 되길 기원하면서 헤어졌다.


인도에서의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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